여강만필

우리 집 가목 – “돌배나무”

- 김융희

삼사십 년 전 이야기이다. 지방 여행을 다녀보면 나무밑에 푯말이 화려하게 새워져 있었다. 그런데 그 푯말에 나무이름과 함께 알 수 없는 생소한 단어가 함께 쓰여 있었다. ‘노거수’ ‘도목’ ‘군목’ ‘시목’등 가는 곳마다 눈에 보이는 푯말인데도, 쓰여있는 말을 도대체가 알 수 없어 답답했다. 사전을 찾아보아도 없는 단어였다. 시골의 동네 앞에서도 더러 볼 수 있어 일부러 주민들에게 물어도 보았지만, 몰겠다는 응답이었다. 한문이라도 병기했으면 글자 풀이라도 해 보겠는데, 철저하게 한글 전용어라 한동안 마음고생을 했다.

내용을 알게 된 것은 한참 이후였다. 노거수(老巨樹)는 ‘늙은 큰 나무’이다. 고목을 예우해 만든 말인 것 같다. 도를 상징하는 대표나무가 ‘도목(道木)’이요, 군을 상징하는 ‘郡木(군목)’, 市(시)에서 지정한 나무가 市木인 것이다. 누구의 짖(아이디어)인지는 몰겠으나 사전에도 없는 억지말을 만들어서 전국 곳곳에 버젖이 세운 짖이 정부의 공공기관에서 시행되고 있었다니, 말재간의 지나친 말장난이요 가소로운 일이다. 오래된 이야기로 별 의미가 없겠다싶지만, 나는 지금도 단순한 가소로움이 아닌 우려스러운 의식의 문제로 생각하고 있다.

문제가 있다고 했지만, 그들의 짖을 따라 우리집을 상징하는 대표나무로 “돌배나무”를 지정하여 늘 가목으로 자랑하고 있다. 우리집을 대표하는 가목은 家木이 아닌 “嘉木”인 것이다. 家木(가목)과 同音(동음)인 한자의 嘉木(가목)은 ‘아름답고 진귀한 나무’란 뜻이다. 말 그데로 ‘돌배나무’는 대부분이 산에 혼재해 있어 특별히 눈에 띄이지 않는 야생목으로 아름다운 나무라고 하긴 좀 어색하지만, 흔치 않는 진귀한 나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수령이 거의 백 년에 가까운 우리집의 돌배나무는, 매우 아름다운 그야말로 “嘉木”이다.

해마다 봄이 오면 우리 집에 맨 먼저 꽃소식을 전해 준 것은 물론 우리집 돌배나무이다.
지금 그 가목에 꽃망울이 맺혀 화려한 꽃을 피우고 있다. 개나리 진달래는 없지만, 벚나무는 여럿이요, 지천으로 널려있는 민들레, 냉이, 닭쌈꽃, 엉겅퀴, 개망초…. 봄을 알리는 봄꽃들은 우리집에 많다. 그런데 아직도 꽃소식은 돌배꽃이 맨 먼저이다. 진즉부터 산수유를 심고 싶었지만, 우리집 돌배나무의 비위를 건드릴까 싶어 지금까지 망설이고 있다. 아마 개나리, 진달래를 아직도 심지 않았음도 같은 뜻일 게다. 조금 늦은 철죽, 함박, 목단은 있지만, 먼저 핀 목련은 없다. 거의 수령이 비슷한 배나무도 두 그루가 있지만, 개화가 보름쯤 늦다.

돌배나무꽃은 엷은 분홍을 띈 볼륨이 있는 흰꽃이 4월 중순에 핀다. 곧 이어 푸른 새싹이 돋으면서 꽃과 함께해 더욱 화사하면서 생동감이 넘친다. 너무 많이 무리져 꽃을 피워 멀리서 보면 마치 커다란 하얀 풍선이 공중에 떠있는 것 같다. 꽃술도 많고 향기로워서 개화때면 모여든 벌떼들로 100m도 넘는 거리까지 윙윙거리는 벌소리로 시끄러울 정도이다.
그런데 금년에는 아직 벌이 보이질 않는다. 늦도록 기온이 낮아 활동이 늦어진가 싶었지만, 몇 년 전부터 벌들 모습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 같아 걱정이다. 오월이 가까운데 나는 아직도 나비와 벌을 보지 못했다. 벌이 많아야 열매도 많이 열릴 텐데…..

열매는 처음엔 초록이 차차 록색에서 누르스름해지며 팔월이면 익어서 떨어진다. 익어 떨어진 돌배열매는 시고 맛이 없어 먹을 수 없다. 주워서 술을 담그면 과일중 가장 향기로운 매실주 보다 향이 짙은 돌배주를 담글 수 있다. 나무는 가지가 많고 가시가 있어 오르지 못한다. 떨어진 열매를 줍느데, 떨어지면서 상처가 나며 금방 줍지 않으면 홀로 발효되면서 발산된 향내로 사방 멀리에서도 취하게 된다. 꽃이 사라지면 벌들이 발효된 열매에 계속 날아들고 붙어있어, 4월의 개화기부터 돌배가 익는 8월까지 돌배나무는 늘 풍요롭다.

백년 역사의 우리집 돌배나무는 년륜만큼 영욕을 함께 해온 듯 싶다. 오랜 옛적의 화전민들 지역인 이곳에서 돌배나무는 야생목으로 자라면서 꽃피고 열매 맺으며 살았을 것이다. 1950년까지는 38선 이북으로 공산치하에서, 625전쟁 때는 격전지인 전장에서 수난을 당했고, 1960년 중반기엔 이웃했던 화전민들이 쫒겨난 것도 목격했다. 이후 군사시설이 진행되면서 발밑에 도로가 만들어지고, 곧이어 바로 뿌리가 아스팔트에 덮이는 가장 슬픈 학대를 당했다. 그래도 잘려나가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동안 아스팔트와 오폐물 잔해로 몰골이 처량했고, 만신창이로 망가져 도저히 꽃도 피울 수가 없었다.

나와의 해후는 이제 5년째이다. 오폐물과 돌맹이를 치우고 죽은 가지를 처서 햇빛과 숨통을 터주었고 거름을 주면서 활기를 띄기 시작한 나무는, 이듬해 정말 휘드러지게 만개한 화려한 꽃이 장관이었다. 모여든 벌들의 웅웅거리는 소리와 꽃이 피워낸 향기로 100m도 넘게 떨어진 안방에서도 나는 행복했다. 이후 꽃은 여전한데 벌들이 점점 줄고 있다. 올해는 아직도 벌의 모습을 보질 못했으니…. 그러나 벌들이 곧 올 것을 믿는다. 내가 그토록 우려한 생태계의 변화이지만, 이렇게 급속한 변화는 없을 것이요, 기후변화에 의한 일시적 현상으로 이해하고 싶기 때문이다.

오늘은 꽃향기와 벌소리 대신, 그쪽 켠에서 계속 전기톱소리가 들렸다. 그쪽 어느 곳에서 공사가 있겠지싶어 대수롭게 생각했다. 그런데 한참 있다가 나가 보았더니 꽃이 달린 가지들이 잘려 동산처럼 쌓여있다. 알고보니 한전에서 지나가는 전선을 보호하기 위해 가지치기를 했다고 한다. 다 자란 나무로 새 순도 날리 없는 꽃가지 사이를 통과한 전선에 과연 어떤 방해가 있다고 남의 나무에 사전 동의도 없는 작업으로, 이처럼 사정없이 잘라버렸는지를 이해 할 수 없다.

이런 수난 방지를 위해 집안으로 옮겨줄까, 생각도 했지만 만만찮은 경비에 고목의 생존율을 감안할 때, 그건 아니란 판단을 내린 것도 후회가 된다. 그러나 한 번 짤린 가지를 어쩧랴? 제발 우리집 돌배나무가 이제 다시는 고통이 없었으면 싶다. 그리고 벌떼들도 다시 모여들어 옛처럼 풍성함이 끊임없이 계속되었으면 싶다. 이래 저래 참 속상하다. “이 환장할 봄날에” – 박규리 시인이 보내준 2006년 “봄날에 드립니다”란 싸인이 적힌 시집이다. 금년은 ‘이 환장할 봄날’이 아니라 ‘이 지랄같은 봄날’이 되어 짜증스럽다. 화창한 날씨에 환장할 봄날의 자연을 기대한다.

돌배가 노랗게 익어 떨어질 8월이 기다려진다. 진동하는 향기 맡으며 열매를 주어담는 일도 즐거운 일이지만, 주운 돌배를 나누어 담고 포장을 해 가까운 이들에게 보낼 것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들떠 설렌다. 우리 집의 가주(家酒)는 막걸리와 돌배주인 “우백선”이다. 가주(家酒)로 쓰기 위해 돌배주를 듬뿍 담그는 일도 중요한 행사이다. 열매가 많이 열려야 생각난 모든이들에게 빠짐없이 보낼 수 있을텐데… 수확기에는 꼭 필요하신 분에게 어떤 조건도 관계도 없이 나누어 줘야겠다는 생각도 한다. 그런분께서는 연락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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