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투명한 스펙타클을 구축하라

- 박은선(리슨투더시티)

‘스펙터클은 지배체제의 것이지만 퍼포먼스는 역사적으로 민중의 영역이었다.’
– 고소 이와사부로, 유체도시를 구축하라

오큐파이 서울을 해오던 젊은이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 노동 안 하는자들, 주부들, 어린이들, 10대, 대학생 디자이너, 예술가들은 새로운 총파업을 준비 중이다. 대부분 작업장도 없고, 고용주도 없는, 심지어 백수인 이들은 메이데이를 조직화된 노동자의 총파업의 날이 아니라 모두의 축제날, 우리 삶의 흐름을 멈추는 날로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주류 정치권과 언론에서 주목을 받기 힘든 성소수자문제, 내성천과 가리왕산을 비롯한 환경문제, 성노동자문제, 장애인 차별문제등을 가시화시키기 위한 직접행동이기도 하지만 중요한 점은 이러한 요구사항을 초월해 공통적으로 그냥 숨조차 편히 쉬기 힘든 이 사회 구조에 잠시라도 ‘정지’를 요구하는 것이다.

도시를 멈추고

도시를 밖에서 보자. 서울 안에 있으면 서울이 얼마나 잔인한 곳인지 깨닫지 못한다. 서울 곳곳 건설현장의 고운 모래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 모래는 강바닥을 긁어 강의 생명을 앗아간 4대강 현장에서 왔을 가능성이 높다. 아파트 입구의 커다란 소나무는 어느 시골 마을의 산을 통째로 깎아 뽑아온 것일 테고, 그 주변을 장식한 큰 바위는 그 산을 깎을 때 나온 돌일 것이다. 서울 밖으로 조금만 나가면 성한 곳이 없다. 산과 강이 맨살을 드러내고 있다. 도시의 인공의 자연을 위해 진짜 자연은 사라져갔다. 삼성사옥의 커다란 LED판넬이 번쩍이고 신제품을 광고한다. 저 반짝이는 패널을 만들기 위해 온양과 수원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건강과 생명을 내놓았을 테다. 전광판과 네온을 밝히기 위한 전기를 위해 수십 개의 발전소가 세워졌고 대도시의 전기 소비를 위해 밀양에 고압선이 지나간다. 도시라는 환상에 홀려, 도시의 시스템이 만든 시간에 맞춰 질주하는 동안 사실 우리의 실체가 부숴지고 있는 것도 느끼지 못한다.

벤야민은 “모든 시대는 다음 시대를 꿈꾸며, 꿈꾸기는 깨어남을 추동한다”고 언급한다. 꿈이라는 것을 깨달으려면, 사람들은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 총파업은 우리 삶의 속도를 가중시키는 것이 아니라 현대 자본의 집약체이자 물리적인 신체인 도시를 중지시켜 도시가 만들어낸 환상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모두의 총파업에서는 도시를 멈추고, 거리로 나간다. 도시의 혈관인 거리를 점거하는 것이다.

거리로 나가자

총파업은 불안한, 불완전한 삶을 사는 자들이 대기업과 국가가 제시한 환상이 아닌 자신들의 온전한 삶을 상상하는 것이다. 상상하기는 도시가 만들어낸 환상을 부수는 가장 중요한 기술이다. 총파업의 가장 중요한 약속은 자신만의 표현 도구를 가져와 다함께 퍼레이드를 하며 명동 거리를 점거하는 부분으로, 서울 한복판―물질적 진보와 새로운 유행이 자신을 소란스럽게 드러내는 스펙타클의 거리를 축제의 공간으로 만들 예정이다.

미디어 이론가인 스테판 던콤은 스펙터클의 가능성을 민중의 측면에서 바라본다. 그에게 스펙터클은 꿈꾸고 몽상하는 힘으로 이것을 ‘몽상의 정치 Dreampolitik’이라 부른다. 권력과 자본의 전유물이 된 스펙터클을 민중이 되찾아 ‘반권력적인 스펙터클’을 생산해야 한다고 한다. 이것은 벤야민이 말한 ‘신화’를 이기는 ‘동화’와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총파업에 참여하는 시민들은 ‘반권력적인 스펙터클’을 만들기 위해 분주한데 그들은 자신들만의 퍼포먼스 방법을 회의에서 쏟아냈다. 이제 예술가와 비예술가의 구분은 전혀 의미가 없다는 것을 확신한다. 시민들은 미술전공이 아니지만 기발한 포스터를 올리고 있고, 인디뮤지션 ‘무키무키만만수’와 ‘야마가타 트윅스터’가 공연을 준비하고 그 외 많은 개인 참가자들이 음악을 준비할 예정이다.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에서는 기본소득 받아서 왕처럼 쓰라는 의미로 참가자들에게 왕관을 씌어줄 것이고, 두물머리 밭전위원회에서는 분필로 온 거리에 그림을 그릴 계획이다. 심지어 이동식 생태 화장실도 등장할 예정인데, 대학 내 공터에서 텃밭을 가꾸는 이 사람들은 생태화장실에서 오줌을 받아 비료로 쓰겠다고 한다.

모두의 총파업은 세 가지를 금지한다. 일하지 않기, 소비하지 않기, 학교가지 않기. 그 중 가장 힘든 것이 사실 ‘소비 하지 않기’기술이 아닐까 싶다. 수백 명이 하루라도 소비를 멈추는 순간 도시가 은폐하려 했던 것들, 그리고 도시에 살기 위해 스스로가 가리려 했던 것들이 드러나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벤야민은 “마르크스는 계급 없는 사회라는 개념을 통해 메시아적 시간에 대한 생각을 세속화하였다”고 비판한다. 민중의 혁명은 역사발전의 정점이 아니라 파열되는 순간 이다. 투명한 스펙터클을 만드는 것 그 순간이 짧을 지라도 자신의 감각을 바꾸기 위해 일을 멈추고 거리로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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