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꼼

<더킹> 무려 삼중으로 반동적인 드라마라니!

- 황진미

<더킹-투하츠>은 입헌군주제하의 남한 왕(이승기)과 북한장교 김항아(하지원)의 로맨스를 그린 드라마이다. 연기자들의 매력과 시각효과 등 흥행요소가 충분함에도 시청률은 고전중이다. <더킹>의 시청률고전에 대해선 여러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그와 별개로 드라마의 ‘정치적 반동성’을 짚지 않을 수 없다. <더킹>은 삼중으로 반동적이다.

첫째, <더킹>은 입헌군주제를 전제하면서도 숙고가 없다. 입헌군주제는 <궁>,<마이프린세스>에도 등장했지만, 왕실로맨스만 다루었을 뿐 왕의 정치행위는 없었다. 반면 <더킹>의 왕은 초반엔 ‘상징적 역할만 하는 꼭두각시’로 묘사됐지만, 갈수록 외교와 국방에 대한 통치권을 갖는 것으로 그려진다. 왕은 총리를 소환하고, 의회의 법률안을 거부할 수도 있다. 입헌군주제의 왕이 아닌, 흡사 이원집정부제의 대통령의 역할이다. 이런 막강한 권력을 선출이 아닌 세습으로 위임하는 정치체를 ‘왕국’이라 부른다. 드라마엔 “대~한민국”이 키워드로 나오지만 ‘대한왕국’이다. 언제부터 왕국이었을까. <더킹>은 “대한민국이 입헌군주국으로 바뀌고 4대째”라는 말과 “독립운동을 한 대군에 의해 1945년 입헌군주제가 선포됐다”는 모순된 말이 나온다. 1945년부터 입헌군주국이었다면, 그 전의 대한민국은 언제를 말하는가. 대한민국임시정부시절인가? 사실 왕정운동은 3.1운동 이전까지 지지를 받았지만, 민중봉기였던 3·1운동에 의해 급격히 힘을 잃었고, 그 결과 공화정인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것이다. 1945년의 왕정복고는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공화정의 가치를 전면 부정하는 상상이다. 물론 상상은 자유이다. 그러나 이처럼 반민주적, 반민중적, 반체제적 상상을 통해 얻는 것이 뭘까. 재벌3세로도 채우지 못한 세습특권층을 향한 낭만적 판타지가 아닌가.

둘째, <더킹>의 로맨스는 반여성적이다. 드라마초반, 최고의 군인이면서도 여성성을 과장하며 남자의 사랑을 갈구하는 김항아의 이중성은 간간이 웃음을 유발했다. 그러나 중반이후 군인의 정체성은 약화된다. 김항아는 자신을 “한 사내를 마음속깊이 둔 한 여성”이라 말한다. 철부지이자 ‘나쁜 남자’인 왕은 신분적·성적 권력을 활용하여 번번이 그녀를 우롱한다. 북한최상류층출신이자 장교였던 그녀는 남한에 와 왕의 이상형인 “예쁘고 백치미 있는” 여자이자, 말투를 교정하고 음식을 배우는 다문화며느리가 되어야하는 미션을 부여받고 분투하다 결국 “북한 년”소리를 듣고 쫓겨나고, 유산으로 상처받는다. 이런 뻔한 반여성적 구도도 구리지만, 더 끔찍한 건 북한을 여성으로 타자화하는 방식이다. ‘그녀=북한’을 내쳤다 품었다를 반복하는 남한 왕과의 동일시를 통해 남성적 우월감을 느끼려는 남한사회의 무의식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셋째, <더킹>은 남북갈등이 ‘클럽M’으로 상징되는 다국적 군산복합체의 농간에 의한 것으로 설명한다. 전쟁을 원하는 세력이 글로벌자본이며, 이들이 각국의 정치, 언론, 대학 등을 움직인다는 거시적 통찰은 옳다. 그러나 이를 괴상한 인격체로 형상화하는 건 퇴행적이다. <더킹>은 남북이 화합하여, 제3세력에 맞선다는 구도를 취할 것이다. 그러나 내부의 분열을 직시하지 못하고, 외부를 악마화하여 내부갈등을 무마하려는 민족주의적 선악구도도 구리긴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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