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만필

“들불”공연 관람의 이색 체험.

- 김융희

여느 해 같았으면 벌써 농사에 메달렸어야 할 때 임에도, 이상기온으로 아직 꽁꽁 언 땅을 건드릴 수가 없다. 요즘처럼 내 일상의 기복이 심한 때면 어쩜 다행이다. 지난 12일 저녁엔 광화문 광장에서 ‘텐트마당연합공연’ “들불”을 관람했고, 다음 날인 13일에는 국립극장 달오름에서 오페라를 관람했다. 14일에도 중요 준비모임이 있고, 다음 날인 주일에도 계속 관계된 행사가 있다. 그런데 익숙하지도 않는 일, 원고 작성이 촉박하다. 다만 믿는 구석이란, 꺼리를 하나 미리 생각해둔 것이 있어 시간 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자판앞에서 도대체가 생각을 끄집어내어 표현 할 수가 없다. 나의 꽉 막힌 의식은, 생각들을 온통 지난 12일에 있었던 공연 ‘들불’이 내 의식에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것이다.

“들불”은 동아시아의 도쿄-서울-광주를 잇는 한일연합 텐트마당극으로, 도쿄를 거점으로 한 텐트극단 ‘야전의 달’, ‘독화성’과, 광주의 마당극단 ‘신명’의 첫 공동작 작품이다. 각지를 떠돌며 20m에 6m 높이의 300여 명을 수용할 텐트를 세우고, 빈 마당이라면 어디서든 춤추고 꽹과리 치며 연기를 했던 이들이 텐트와 마당을 합침으로 아직 세상에 한 번도 없었던 새로운 양식의 연극을 만들어, 지난 4월 6-7일에 광주 자유공원에서, 그리고 4월 11-12일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서 있었다. 이번 서울 공연은 달팽이공방, 수유너머N,수유너머R, 장애인극단 판, 리슨투더시티, 공공미술단단의 공동주최이다. 진즉부터 익히 들어왔었고, 주위의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공연을 기다리는 나의 마음은 무척 설레었다.

‘들불’공연은 배우와 스텝, 주최자들이 스스로 의상을 만들고, 연기 연습은 물론, 망치를 들고 무대를 만들며, 나누어 먹을 밥을 짖는, 모두가 참여해 모두의 힘으로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공연을 만든다. 육체노동 뿐만 아니라,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는 것도 여기 모인 ‘사람들의 힘’만의 스스로 마련된다. 돈과 상관없이 한번 텐트를 치고서 같은 극을 다시하는 법이 없는, 오직 한 번의 정말로 만들고 싶은 연극을 만들어 공연을 하는 그들은, 프로가 아니면서 앙그라이자 마이너의 자율주의자들(autonomist)이다.

확트인 광장의 허술한 텐트에서 공연이 있는 날 저녁은 세찬 바람에 너무 추운 날씨였다. 그나마 꽉찬 관객의 체온으로 견딜 수 있겠다싶던 기대가 공연이 진행되면서 완전히 풀렸다. 거의 세 시간의 공연이 줄곧 의문과 긴장의 연속이었다. 너무도 진지한 내용에 변화무쌍의 박진감 넘친 배우들의 열연은 바깥 추위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말도 다르고 충분한 연습도 없이 벌이는 공연이 어떻게 그처럼 일사불란 잘 호응할 수 있는지… 관객인 나는 지켜보면서 대사도 줄거리도 잘 모른다. 마치 도깨비들의 놀음같았다. 그러나 모르지만 어쩐지 오랫적부터 쭉 함께 했던 것처럼 느껴진 친밀감에, 무엇인가를 열망하는 간절함과 이질적인 만남의 감흥만은 선명했다. 그리고 무엇인지는 몰겠으나 마음에 잡힌 느낌은 분명했다.

<들불>을 설명하기란 어렵다. 대사와 노랫말의 번역을 도왔던 신지영씨는 말한다. “그러치만 세상에서 가장 낮고 장엄한 소리와, 가장 크고 높은 소리가, 완전한 환상이 완전한 리얼리티와, 대화와 독백이, 두 도깨비가 만나 완전히 새로운 것이 되는 순간을 경험할 것이라고” 공연은 회전무대와 지하, 공중에서 튀어나온 배우들의 수많은 인물들 이야기, 목소리들로 가득 체워지고, 춤과 노래와 함께 관객들에게 각인된다.

후구시마 원자력발전소에서 쓰고 버려지는 비정규직 노동자, 봉쇄된 팔레스타인의 주민, 80년 5월 광주에서 사라진 사람들, 무너진 칠레 광산 지하 700m에 갇힌 광부, 김밥천국에서 김밥마는 아르바이트 여자, 노가다, 이주노동자. 들불 야학 사람들, 일본군에 의해 남양군도로 끌려 갔으나 ‘고려독립청년단’을 조직해 일제와 싸웠던 이들… 우리의 이전에 존재했으며, 현재에도 있고, 미래에도 이어질 사건들과 그것에 관한 기억들. 그들은 한번도 같은 장소에서 만나본 일이 없으나, 텐트마당이라는 현실도 아니고 허구도 아닌 공간을 통해 조우한다.

1년 전, 30년 전, 60년 전에 층층이 쌓인 기억속에, 모든 장소에 쌓여있는 흔적들, 순간들이 하나의 장소 안에서 만난다. 등장인물들은 쓰레기 더미나 잔해 더미에서 하늘에서 땅에서 툭툭 등장해 여기저기서 목소리를 내거나 모습을 들어내면서 서로가 조우한다. 이것이 하층이 하층과 연결되고 네트워크를 맺어가는 법이다. 아직 형태가 없지만 이미 시작되고 있는 신비한 불꽃축제에 모인 관객들은 숨막히는 긴장속에서 장장 세 시간을 보낸다. 이번 공연을 앞두고 연출을 맡은 이케우치와의 인터뷰중 “원전사건을 신체화한다”는 말에 나는 공연을 꼭 봐야했다.

들불에 참가한 ‘야전의 달’극단은 지난 2011년 9월 쓰나미 피해가 가장 큰 지역에서 <마지막 장면은 ‘행운의 점패 뽑기 상점’의 비구니가 행운을 상징하는 붉은 공을 뽑아들고, 피해주민들이 대부분인 관객들을 향해 “오메데또 고자이마스!(축하합니다)”라고 외치는> 공연을 했다. 대재앙의 공포를 겪은 관객들을 향해 ‘축하합니다’라고? 재해지에서 공연을 했던 사쿠라이씨를 만나 왜 ‘축하합니다’라고 말했는지를 물었던 윤여일씨의 전언이다.

“재해지에서 우리는 인간의 생존과 근대 자본주의가 대결하는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싸울 대상을 만났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오메데또 고마이다스! “일본으로 와라.일본은 소비사회이고 대중문화 사회로서 현대에서 전형적인 장소였다. 그게 부서지고 있다. 모두들 동요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은 세계사가 새롭게 쓰여질 장소가 되고 있다. 너는 쓰는 인간으로서 그것을 봐라. 와서 그것을 겪어라. 그리고 사상적 전환점으로 삼아라. 거기서 같이 몰락하자.” 이것이 사쿠라이씨의 말이다. 공연을 통하면 원전 사건과 같은 근본문제가 신체화된다.

이보다 어떤 실증적 진실의 증언은 있을 수 없다. 쓰나미에 의한 후쿠시마 원전사고, 현대 문명 몰락의 재앙 현장에서 그의 몰락에의 초대처럼, ‘들불’공연의 강열함은 계속 나의 의식에 들불로 남을 것 같다. 들불을 보았던 다음날 오페라 공연은 소꿉놀이 같은 의식의 변이로 혼란스럽다. 들불은 연극인가, 나는 퍼포먼스를 떠올리며 관극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들불 공연은 나에게 길이 기억될 것이다. 미리 정해 둔 꺼리를 두고, 새로 쓴 ‘들불’ 관극 이야기의 할 말은 많은데 제한된 지면으로, 건드린 변죽이 애매하여 죄송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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