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의 뒷골목

매카시즘, 빨갱이 사냥의 원조—메이데이에 다시 미국을 생각한다

- Beilang(동아시아사상사연구자, 뉴욕이타카)

1.

이따금 미국은 근대국가의 외형과 시스템을 갖췄지만 중세적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나라 같다는 생각을 한다. 아직도 진화론보다 천국과 지옥의 존재 그리고 성모 마리아의 처녀잉태를 믿는 나라, 정교한 정치체제를 가지고 있지만 제대로 된 진보정당 하나 없는 나라, 전국민보험 같은 기본 사회보장 정책도 가지고 있지 못한 세계 최강대국. 미국을 좀 아는 사람들은 왜 미국은 외형과는 달리 왜 이렇게 보수적인가가라는 질문을 던지곤 한다.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좀 단순하지만 매카시즘과 매카시즘을 기억하는 방식에서 그 단초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매카시즘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전후 세계 질서가 미국 대 소련의 냉전구도로 틀이 잡혀가며 미국이 이 한 축을 대표하는 초강대국으로 등장해서 소련과 대립하던 1940년대 말에서 50년대 말까지 있었던 극단적인 반공산주의 운동을 일컫는다. 구체적으로는 위스칸신주 상원위원이었던 죠지프 매카시(1947-57 재임)가 1950년 2월 국무부에 공산주의자, 소련 스파이들이 득실거린다는 주장에서 시작해서 연설과 의회 청문회 활동 그리고 FBI의 협조를 통해 공포를 조성하며 벌어진 일련의 공산주의자 색출운동과 이에 상응하는 사회문화적 제반 활동을 지칭한다. 공무원들을 시작으로 할리우드의 작가, 제작자, 연예인들, 교사와 교수 그리고 노조관련자 등 사회 각 분야의 인사들에게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라며 의회 청문회에 불러내어 겁박하고 FBI는 사찰과 감시, 체포를 통해 박해를 가하며 사회 전체에 극단적 반공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근 10년을 이어진 이런 빨갱이 척결운동은 매카시에 대한 비판이 설득을 얻기 시작하고 그의 몰락과 함께 운동의 극단성에 피곤해진 사람들의 외면으로 세를 잃고 빨갱이 몰이는 끝을 맺는다.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매카시즘에 대한 이런 기본적 이해에는 심각한 결함이 내포되어 있다. 그런데 이는 단순히 역사적 사건 하나에 대한 오해로 끝나지 않고 미국 근대사 전체가 심각하게 왜곡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역사의 일부가 하나의 사건으로 인식되고 따로 이름 붙여지는 것 자체가 역사를 왜곡할 소지가 크다. 미국 역사를 관통하는 도도한 반공주의 흐름을 어느 정점만을 그것도 개인의 이름을 따라 명명하는 것은 그 인물을 그 흐름 전체의 대표로 내세우고 그 인물의 흥망에 따라 운동의 성쇠를 규정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따라서 매카시라는 한 개인에 초점을 맞춘 채 비판적인 학자들은 그를 무식한 알코올중독자에 사기꾼 모사꾼이라는 비난을 퍼부으며 문제를 비껴가고 옹호자들은 그런 비난에 과장과 왜곡이 있으며 실제로 그가 국무성을 비롯한 국가기관에 공산주의자, 소련 스파이들이 있었음을 입증하기 위해 온갖 자료를 들이댄다. 이런 오도된 미시적 관점은 이런 광기를 만들어낸 역사적 배경과 그런 광신주의가 낳은 유산 등을 역사의 망각 속으로 밀어 넣게 된다.

2.

미국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와 억압은 20세기 초 일차 대전(1914-18) 그리고 볼셰빅 혁명(1917)이 미국 내 노동운동과 맞물리면서 시작된다. 전시에 동결된 임금의 인상을 요구하며 3.1운동과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시애틀 총파업과 이어진 아나키스트의 우편폭탄 테러는 보수세력 들로 하여금 사회주의와 아나키즘이 사회의 기반을 흔든다는 공포를 심어주었고, 이는 대규모 불법 체포와 구금 그리고 유럽의 사회주의자 아나키스트들의 대규모 추방으로 이어지는데 이 일련의 사건을 “제일차 빨갱이 공포”(The First Red Scare)라고 부른다.

미국역사에서 특별한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이 시기는 국가로서의 미국이 그 정체성을 놓고 투쟁이 벌어진 초기의 사례로서 주목받아 마땅하다. 당시 벌써 엄청난 부를 축적한 소수의 재벌 세력을 중심으로 한 보수세력이 노동계와 사회운동, 아나키즘 세력을 향해 쓴 말이 “미국(인)답지 않은”(un-American)이라는 말이었다. 아마 이 단어가 미국에서 정치적 담론의 일부로 들어온 최초의 사례로 여겨지는데 이 속에는 자신들의 자본주의적 가치가 ‘America’를 대표하고 대변하며 정의할 수 있다는 오만이 그대로 담겨있다. 후에 매카시의 빨갱이 사냥의 전초부대 역학을 한 기구의 이름이 ‘하원 미국(인)답지 않은 행위 위원회’(House Un-American Activities Committee)였다. 특정 정치세력이 규정하는 정체성에 부합하는 규범이 양심과 윤리 그리고 법을 뛰어넘는 상위의 권위가 될 때 이는 필히 폭력을 동반하게 된다.

1930년대에는 대공황으로 인해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 회의가 생겨나고 사회주의 색채를 가진 뉴딜 정책이 펼쳐지며 공산주의, 사회주의 운동은 노동운동과 연계하며 상당한 세를 얻게 된다. 이 시기는 자본주의가 비판받고 노동운동에 우호적인 주요 법률들이 제정되며 혁명이 공공연히 얘기되던 때로 미국 정치사에서 아주 역동적인 시기였다. 이차대전에서 미국과 소련이 연합하면서 탄압을 피한 진보세력은 세를 유지하지만 결국 사회주의 세력은 내분에 시달리게 되고 공산주의 세력은 초기의 반대를 접고 루즈벨트의 뉴딜정책을 지지하게 되면서 이들은 독자적인 정치세력이 되지는 못하였다. 이들의 일부가 민주당에 편입됨으로써 주류에 편입되게 되고 이로 인해 민주당이 보수당에서 상대적으로 진보적 정당으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된다. 급진세력, 진보세력이 미국 주류 정치에서 독자적 세를 만들지 못하고 이후 미국의 주류 정치는 두 보수당이 지배하게 된다. 그나마 남아있던 진보세력은 종전 후 냉전 구도가 만들어 지고 1949년 중국 공산화와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인해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와 그리고 미국 자신이 불러온 핵전쟁에 대한 공포가 커지면서 매카시즘으로 대표되는 빨갱이 사냥에 의해 괴멸하게 된다.

3.

매카시즘은 미국 내의 급진적 세력은 물론 진보적 세력마저 없애버렸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기억마저도 역사에서 지워버렸다. 1960년대 70년대의 민권운동이 진보의 정신을 되살리고 미국을 야만과 죄악에서 어느 정도 구해내기는 했지만 그조차도 체제 내에서 법적인 권리, 즉 동등한 시민권을 요구하는 운동이었지 체제 자체를 문제시하는 운동으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매카시즘이 미국 내에서 진보세력의 씨를 말려버렸고 이후에도 미국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기억하지 못하는 역사적 망각은 정치적 상상력마저 제한해버린 것이다. 진보적 세력과 함께 사라진 공공성에 대한 인식과 공공 영역은 이후 대책 없이 진행된 사회의 자본화, 정치의 자본화에 제대로 대항할 수 있는 힘을 키울 공간의 부재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맥카시즘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피해를 입었는지는 명확치 않다. 투옥된 사람이 만 명에 이른다는 주장도 있으나 대체로는 이보다는 작은 숫자라고 알려지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직장에서 쫓겨나고 투옥되는 등 수난을 겪었지만 정작 매카시즘의 가장 큰 피해는 그것이 끝나고 발생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매카시의 죽음과 함께 광신적 반공주의도 끝났다고 착각하는 동안 매카시즘으로 인해 탄탄한 입지를 굳힌 권력의 관행과 학계와 언론계 연예계의 보수세력은 이후 지속적으로 미국을 보수의 틀 속에 가두는 역할을 성실히 수행한다. FBI의 불법 사찰은 공공연한 관행이 되어 이후 민권운동, 노동운동, 반대 정치세력을 사찰하고, 군부는 거짓 위협을 만들어 월남을 침공한다. 할리우드 빨갱이 사냥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레이건은 후에 대통령까지 되는 영광을 누리며 보수세력의 염원인 신자유주의의 정책들을 과감하게 밀어붙이고 학계와 언론계에 뿌리를 내린 세력 들은 부침은 있었지만 후진을 키워가며 꾸준히 활동하다 9-11 이후 부시정권을 자신들의 야만적 패권주의로 몰고 간 것은 우리가 아는 바대로다.

매카시즘 같은 광기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극단적으로 타락하지 않은 것은 미국인들이 무슨 대단한 민주적 가치를 신봉했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이 가지고 독특한 시스템 덕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미국은 국가의 성립 자체가 연방주의와 지역주의 세력 사이의 타협에 의한 만큼 각 주와 또 주 안에서도 더 작은 지역들이 상당한 자치권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중앙권력이 자신들의 뜻대로 전국을 장악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이는 토크빌의 미국 민주주의 토대 분석과 상통한다.) 미국 역사에서 지역주의는 주로 인종차별 같은 보수주의의 토대가 되어왔고 대체로 중앙의 연방법원과 연방정부가 진보적 역할을 해왔지만 이 경우는 지역주의가 중앙의 야만을 제어한 드문 예로 보인다.

예를 들어 미국 경찰은 국립이 아닌 주, 카운티, 시 그리고 작은 마을까지 층층이 이어지는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자체적으로 비용을 조달하고 수반을 선거로 뽑는 시스템이기에 FBI가 무슨 수를 써도 이들을 통제하며 전국을 대상으로 반대자들을 색출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역 경찰이 중앙에서 파견된 FBI요원과 갈등하며 그들을 물 먹이는 것은 할리우드 범죄영화의 단골 소재다.) 그리고 각 주와 더 작은 지역 단위들은 연방에서 일방적으로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에 대해 자신들의 고유한 권리를 침해한다는 근본적인 반감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부시 행정부의 교육 개혁책이나 오바마의 전국민 건강보험안에 대한 강한 반발에는 다른 이유도 있지만 이러한 반감이 상당 부분 작용하고 있다. )

이런 역사적 우연이 미국의 민주주의 질서를 지켰다는 해석을 받아들인다면 미국은 민주주의를 구현한 모범국가로서보다는 그 엄청난 풍요와 국력, 민주적 외형에도 불구하고 극단적 반공주의 같은 배제의 선악이분법을 벗어나지 못하고 진보적 가치를 제도화하는데 실패한 예로서 더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매카시즘의 가장 큰 피해자가 정작 미국인들이 아닌 한국인들이었다는 사실은 이런 해석을 뒷받침하는 하나의 근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전쟁에서 미군이 민간인 학살 등 잔인한 행위를 서슴없이 해대고 한국군과 경찰의 패악질을 묵인 방조한 이면에도 인종적 편견과 함께 매카시즘의 그림자가 드리어 있다. 미국이 공산권 봉쇄정책을 냉전외교의 기본원리로 채택하면서 그 봉쇄의 첨병이 된 남한의 독재정권들은 한반도에서 매카시즘에 입각한 미국의 반공정책의 연장으로 작동해왔다. 미국이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반공주의 독재를 적극 지지한 것은 자신들이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더러운 일들을 떠넘김으로써 자신들의 손에는 피를 묻히지 않고 세계를 향해 인권과 민주적 가치를 수호하는 선의 세력으로 남을 수 있었던 역겨운 위선의 극치였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반공주의는 미국의 빨갱이 사냥 외주 시스템의 하청업체였다. 현재까지도 진행형인 빨갱이 타령은 냉전이 끝난 이후에도 매카시즘의 망령이 아직도 생생히 한반도에 살아있음을 증언하는 것이리라. 나는 한국이 미국에 빚진 것이 아니라 한국의 민중들이 그들의 피와 땀으로 눈물로 미국 민주주의의 외형이나마 지켜주었으며 따라서 그들이 한국에 큰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 광신주의의 망령을 떨쳐 버리는 것은 우리의 몫으로 남았다.

4.

현재의 미국은 매카시가 설쳐대던 50년대보다 훨씬 더 위태로워 보인다. 9-11 이후 중앙권력이 대규모 무작위 도청과 마구잡이 체포를 정당화하는 법을 통과시키고 지역 경찰조직들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드러난 것처럼 뉴욕경찰이 자신의 관할을 넘어서 다른 주에서 사찰을 하고 FBI가 뉴욕경찰청 내에 자신의 사무실을 버젓이 내는 것 등은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들이었다.) 독재를 아주 효율적으로 만드는 중앙집권적 감시와 통제체제가 미국에서 구축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도 매카시즘을 역사적 망각에서 끄집어 내 과거형이 아닌 현재형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매카시즘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의 흐름이고 그 흐름을 지속시킨 구조이며 그 일부가 잘못된 이름으로 지칭되고 있는 것이다.

우린 과거의 비극을 그 비극이 만들어낸 고통과 희생으로만 회상하고 평가하는데 익숙하다. 그러나 미국의 매카시즘이 되었든 아니면 그 연장선의 남한의 독재였든 역사적 비극의 비극성에는 그 비극으로 인해 잃어버린 가능성들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낭비된 온갖 자원들이 제대로 배치되었을 때 일어날 수 있었던 온갖 가능성들, 잃어버린 생명들이 보여줄 수 있었을 다양한 가능성들, 주눅 들고 겁먹은 영혼들이 자유롭게 펼쳐 보여줄 수 있었을 멋진 상상력들… 그리고 이 모든 가능성들이 어우러져 보여주고 이루어질 수 있었던 또 다른 상상력과 새로운 세상의 가능성들. 우린 이 모두를 잃어버린 것이다. 우리의 꿈도 더불어.

지금 이 잃어버린 것을 되찾으려는 새로운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뉴욕에서 시작되어 각지로 퍼져나간 ‘점거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이 운동은 새로운 삶의 형태를 꿈꾸며 자본주의라는 역사의 괴물에 근본적 도전을 던지고 있다. 이 운동은 이제까지의 꿈과는 다른 꾸자고, 새로운 역사의 흐름을 만들자고 부추기고 있다. 19세기 말 노동자들이 꾸었을 희미한 꿈들, 20세기의 초 아나키스트들이 꾸었던 “불온한” 꿈들을 다시 새롭게 꾸어보자고 권유한다. 먼저 간 이 들의 꿈이 서린 메이데이 그리고 총파업도 이런 다른 꿈을 꾸려는 이들에 의해 새로운 의미를 띄게 되었다. 이 새로운 흐름은 아마도 많은 이들의 헌신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리고 그 헌신은 매카시즘과 같은 역사의 길고 긴 어두움을 걷어내고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여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꼭 그렇게 되기를!

응답 1개

  1. 보스코프스키말하길

    미국에 (제대로된) 진보정당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지역적으로 산재하는 등 전국적 진보정당을 찾기 힘들 뿐입니다. 녹색당은 그런대로 규모가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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