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4대강 순례길을 다녀와서

- 기픈옹달(수유너머 R)

4대강 순례길을 다녀와서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던 봄날의 오후, 흐르는 강물에 발을 담그고 걸었다. 발을 내딛을 때마다 강바닥에선 금빛모래가루가 흩날렸다. 강물 안에는 송사리들이 이리저리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산의 푸르름이 와 닿아 비친 연초록 빛의 강의 표면은 복잡했다. 깊이 숨을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옷이 물에 흠뻑 젖은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강 옆을 지나다녔고, 한 임신부는 남편의 손을 잡고 ‘뿅뿅다리’에 서서 지나가는 물뱀을 신기하게 바라보고있다. 문득, 내가 마주한 이 모든 것이 4대강 공사로 허트려질 것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4대강 사업’을 통해 낙동강은 정부에서 이름 붙인 ‘경제의 강’으로 뒤바뀌고 있었다. 낙동강 어귀 곳곳에는 벌써 보들이 설치되었고, 산에는 자전거 도로가 닦여져 있었다. 생태공원과 박물관도 한창 건설되고 있었다. 상주보 현장에 도착했을 때 공사는 ‘이제 시작’이 아니라 한참 ‘진행된’ 상태였다. 이미 크레인들이 강 이곳저곳을 파헤쳐 놓은 뒤였다. 강 곳곳에는 말뚝이 박혀 있었고 낙동강 상류지역은 뒤집혀진 강바닥에서 생겨난 모래로 뿌연 색을 띄었다. 파괴의 공사현장 한 복판에는 “우리가 꿈꾸는 강의 이름은 행복입니다.” 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우리가 꿈꾸는 강’이라는 표현도 거슬렸지만, 그 이름이 ‘행복’이라는 데는 소름이 돋았다. ‘우리가 꿈꾸는 강의 이름은 행복입니다’는 말이 곧 ‘누군가의 꿈이 모두의 행복이 되어야한다.’라고 들렸다.

상주보 공사현장을 지나 청룡사전망대로 향했다. 청룡사전망대로 향하는 산길 옆으로는 나무들이 쓰러져 있었고 길은 반듯이 포장되어 있었다. 이 산 속에 2차선은 될 듯한 길을 밀어낸 연유가 궁금했던 차에 이곳이 ‘자전거도로입니다.’ 라고 안내하시는 분의 이야기를 들었다. 산을 바리깡 밀듯이 낸 도로는 보통의 자전거로는 올라갈 수 없는 급경사로 이루어져 있었다. 누가 이 급경사의 자전거 도로에 자전거를 타러 올까? 이런 시멘트 도로는 산악자전거동호회 회원들마저 외면하지 않을까 싶었다.

청룡사 전망대에서 버드나무들이 잔뜩 고꾸라져 있는 생태공원 공사현장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버드나무들을 뿌리 뽑은 자리에 생태공원을 들여놓을 생각을 했을까? 자연 생태를 파괴하고 거기에 인공 생태공원을 만든다니 헛헛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수십년간 산을 지켜오던 나무들을 송두리째 뽑은 자리에 공원을 세워놓고 그것에 ‘생태공원’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뻔뻔함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생태계를 파괴하고 지은 공원 안에 파괴하기 전의 생물들과 사진을 모셔두고 관람하겠다는 것은 또 무슨 발상인가?

이는 사바나의 초원을 누비는 사자를 동물원 우리 안에 가둬두고 그 동물원의 이름을 ‘사바나’라고 부르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생태 안에 생태공원을 짓겠다는 사람은 그렇게도 자기가 생각하는 ‘생태’만이 ‘생태’ 라고 부르고 싶은 건가. 느낄 수 있는 자연보다는 자기가 알고 있는 자연을 각인시키고 싶은 건가. 파괴로 우뚝 세워진 박물관을 들어갔다가 나온 관람객들이 무엇을 보고, 어떠한 생각을 하게 될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점심을 먹고 나서 비룡산에 올라 회룡포를 바라봤다. ‘옴’ 자 모양의 강물이 마을을 휘감고 있었다.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회룡포와 이어지는 내성천을 거슬러 올라갔다. 산의 푸르름이 강물의 푸르름과 하나로 어우러진 그 곳에서 모래와 돌을 밟으며 강물을 따라 걸었다. 유난히 모래사장에 모래가 많이 쌓여 있었다. 내성천의 모래는 강물을 따라 흘러 부산 해운대 모래사장을 이룬다고 한다. 하지만 보를 쌓고 제방을 쌓아 이 흐름을 막으면 모래는 흐르지 못하고 퇴적한다. 보가 설치된 이후로 자연히 흐르던 모래가 이곳에 쌓여가고 있다. 누군가는 이렇게 쌓인 모래를 가져다 팔고 있다.

강물의 흐름은 막히고 고여 저수지가 되어간다. 서울의 어느 곳에는 시멘트 바닥을 파헤쳐 강물을 흐르게 하는 것처럼 연출하는 ‘쇼’를 보여주더니 실제로 흐르는 낙동강의 강물은 보로 막아버렸다. 전국이 동물원과 저수지로 탈바꿈 되어간다. 모래와 자갈을 밟으며 한참을 강을 따라 걷는 동안 헛웃음이 멎고 화가 인다.

답사 길의 마지막 지역으로 병산서원에 도착했다. 가이드 하는 분께서는 서원 근처에서 역시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이곳의 공사들은 ‘4대강 삽질사업’과는 별도로 진행되고 있는 것들이라고 했다. ‘4대강 사업’이 시작되면서 여기저기서 정체도 모르는 공사들이 산발적으로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4대강 사업’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확연히 드러나는 현장이었다. 부디 ‘4대강을 살린다’는 말을 ‘삽질’에 갖다 붙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병산서원에서 바라보는 산과 강은 병산습지의 한적함, 고요함이 함께 어우러져 당대 학자들이 즐겼던 멋을 느낄 수 있게 하였다. 그 멋은 나에게는 잠시나마 산과 강이 함께하는 풍류의 즐거움을 주었다. 이제 4대강 삽질이 완공되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산과 강, 습지가 주는 고요함 대신에 인공적으로 쏘아 댄 조명 속의 ‘명품 보’를 사진에 담느라 바쁠 것이다. 그것을 문명의 발전이라며 숭고함을 느끼고 있을 관광객을 생각하니 가슴 깊은 곳에서 화가 치민다.

우리는 앞으로 무엇을 보고 느끼며 살아가게 될까? 나는 계속되는 이러한 ‘뻘짓’들에 화를 억누를 수가 없다. 다시금 서울로 돌아온 나는 아직까지도 그 ‘화’ 안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나에게 생겨난 이 ‘화’는 삽질이 끝나는 날 까지 내 마음 속에서 꺼지지 않을 것 같다. 그때까지 나는 꺼지지 않는 이 ‘화’ 를 전하고 또 전할 것이다.

– 박카스(수유너머 R)

응답 1개

  1. sros23말하길

    넵, 화를 전하고 또 전하자구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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