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이명박 대통령께서는 하필 이익이라는 말씀을 하십니까?”

- 신현기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이달 첫째주에도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11주 연속 1위를 기록했다. 철학서적이 이렇게 오랫동안 돌풍을 일으키는 건 매우 특이한 경우다. ‘문화현상’이라고 할 만하다. 지난 여름, 이명박 대통령이 휴가지에 챙겨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욱 탄력을 받긴 했지만, 돌풍은 그 이전부터 시작됐다. 이 책의 초판이 나온 것이 지난 5월 17일, 그리고 한 달 남짓 여만에 12쇄를 찍었다. 1쇄만 다 팔려도 성공이라는 지금의 인문사회과학분야 출판시장을 감안할 때, 이 정도면 거의 ‘대박났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베스트셀러 순위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중앙지 책 코너에 「정의란 무엇인가」가 소개된 것은 지난 5월 29일이었다. 조선일보는 책 코너 1면 톱에 ‘하버드 최고 인기강의 샌델교수, 정의(正義)를 정의(定義)하다’는 제목을 달았다. 동아일보와 경향신문도 역시 책 코너 1면 톱에서 각각 ‘정의는 ’무엇을 어떻게‘ 심판할 수 있을까’, ‘’소통‘으로 푼 ’정의‘의 딜레마’라는 제목을 뽑았다. 중앙일보와 한겨레신문은 각각 책 코너 4면 톱과 3면 톱으로 이 책을 소개했다. 제목은 ‘남의 불행으로 돈 버는 것, 어디까지 용납될까’(중앙일보), ‘정의가 충돌할 때…’공동선‘을 고민하라’(한겨레신문)이었다.

돌이켜보면, 「정의란 무엇인가」를 책 코너 1면 톱으로 올린 신문들은 서평이 독자의 수요를 자극해 베스트셀러를 만든다는 자기실현적 속성을 감안하더라도, 감식안(鑑識眼)이 제법 정확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마케팅포인트를 가장 정확하게 짚어낸 것은 조선일보였다. 이 책을 출판한 김영사는 ‘하버드대 20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라는 점을 마케팅포인트로 잡았고, 조선일보는 바로 이 점을 강조하는 제목을 뽑았다. 대학서열에 민감한 우리 사회에서 서울대라고만 해도 눈길이 갔을텐데, 세계적 명문 하버드대의 최고 강의라는 문구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뒤적거렸겠는가.

그러나 이 책의 돌풍을 학벌주의를 파고든 출판사의 마케팅전략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석연치 않다. 입소문에 입소문이 더해져 바람이 돌풍으로 변할 만큼 「정의란 무엇인가」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무엇’이 있어 보인다. 그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마음까지 움직여 지난 8․15경축사에서 처음 등장한 ‘공정사회론’의 근거가 됐다는 주장도 있지만, 청와대의 대답은 ‘노(no)’였다. 청와대의 공식입장은 ‘공정사회론’의 저작권이 임태희 비서실장에게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의란 무엇인가」의 돌풍과 ‘공정사회론’은 각각 다른 뿌리에서 자라났다. 그럼에도 이 둘은 어느 순간 오버랩되면서 사회정의 또는 공정사회에 대한 우리 사회의 잠재된 열망을 일깨웠다.

이러한 열망의 근원을 작금의 불의(不義)한 사회에서 찾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이 가설은 너무 포괄적이어서 틀렸다고 하기도, 맞다고 하기도 힘들다. 더 직접적 원인은 이명박정부의 등장에서 찾아야 한다. 이명박정부 들어 우리사회가 더 불공정해졌다고 말하는게 아니다. 이명박정부 이후 가장 도드라진 특징을 꼽으라면, ‘이로운 것’이 ‘정당한 것’으로 등치되는 가치전도가 노골화됐다는 점이다. 이명박정부는 효율성과 경제성장을 최고 가치로 삼았다. 정치는 비효율적인 것으로 폄하되면서 가치의 추구라는 정치의 본령은 사라졌다. ‘비즈니스 프랜들리’라면서 대놓고 대기업을 편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의 마음 속에 ‘물불 가리지 말고, 기회를 잡자’, ‘강자가 되고, 떼돈을 벌자’는 강박적 욕망이 솟구쳤다. ‘실용주의’라는 깃발을 높이 내건 이명박정부는 합리적(合利的)인 것을 합리적(合理的)인 것으로 바꿔치기했고, 합리적(合理的)인 것은 비합리적(非合利的)이므로 평가절하됐다.

이런 사회의 운명에 대해 맹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맹자가 양혜왕을 알현할 때다. 왕이 “선생께서 천리가 멀다 않고 오셨으니 장차 이 나라에 이익을 가져다주려는 것이겠지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맹자가 이렇게 답한다. “왕께서는 하필 이익이라는 말씀을 하십니까? 그저 인의만 얘기하셔야 합니다. 왕께서 ‘어떻게 해야 우리나라에 이익이 될까?’라고 말씀하시면, 대부(大夫)들은 ‘어떻게 해야 우리 가문에 이익이 될까?’라고 말할 것이며, 사(士)와 서민들은 ‘어떻게 해야 내 몸에 이익이 될까?’라고 말할 것입니다” 우리가 자주 쓰는 ‘하필(何必)이면~’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실용주의’의 깃발 아래 이로움이 최고 가치로 숭배되고, 대통령이 제일 앞자리에서 이로움만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문득 합리적(合理的)인 것 중에서 합리적(合利的)인 것으로 환원되지 않고 남은 것에 대한 감각, 우리 삶에서 고귀한 것을 잃어버렸다는 자각이 생겨난다. 예컨대 「정의란 무엇인가」가 처음 서점 매대에 진열될 즈음인 지난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 1주기 추모제에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까. 그것은 그가 우리 정치사에서 드물게 가치추구형 정치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매몰차게 노무현을 버렸던 많은 사람들이 그의 가치추구 행위에 향수를 느꼈고, 그가 추구한 가치가 사회정의 혹은 공정사회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참여정부때는 비록 레토릭의 차원이었지만, 정의가 넘쳐났다. 말의 성찬에 염증을 느꼈던 많은 사람들이 “정의가 밥 먹여 주냐?”고 했다. 그랬던 이들이 이제 “사람이 밥만 먹고 사냐?”고 자문하고 있다. 그리고 그 답을 찾는 한 방편으로 「정의가 무엇인가」를 들춰보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다음 관심사는 이명박정부가 새롭게 선보인 ‘공정사회’라는 정치상품의 운명에 관한 것이다. ‘공정사회’가 입에 발린 정치적 수사라는 말이 아니다. 대통령이 전과자라고 해서 공정사회에 대한 그의 진정성까지 의심할 필요는 없다. 그렇더라도 ‘사람이 밥만 먹고 사냐’고 묻기 시작한 국민들과 공정사회가 복지와 분배로 연결될까 잔뜩 경계하는 보수세력 사이에서 공정사회의 운명이 그다지 순탄해 보이지 않는다.

응답 2개

  1. 퐁티말하길

    좋은 글 잘봤습니다. 특히 맹자얘기가 남는군요. ~

  2. […] This post was mentioned on Twitter by Hyungee Shin, Progress_News. Progress_News said: [수유너머] “이명박 대통령께서는 하필 이익이라는 말씀을 하십니까?”: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이달 첫째주에도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11주 연속 1… http://bit.ly/9O9YkC http://suyunomo.jinbo.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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