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격이 있는 G20?, “그래, 제발 국격을 좀 높이자!”

- 이진경

G20이 2주일 정도 앞으로 다가왔다. 가끔씩 지나치는 눈에 걸리는 슬로건 같은 문구가 반복해서 눈에 띈다: “G20을 계기로 국격을 높이자!” ‘국격’? 생소한 말이지만, 나는 한자를 꽤나 배운 세대인지라 그 정도는 알아먹을 수 있다. ‘나라의 격’이란 말이렷다! 백번 타당한 말이다. 나도 ‘격조’ 께나 따지는 편인지라, 격을 높여야 한다는 말은 천 번 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말을 보는 순간 웃음이 터져나왔던 것은 정말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격’이나 ‘격조’ 같은, 어쩌면 보수적일 수도 있는 말을 근자에 자주 떠올렸던 것은 신문을 보거나 뉴스를 볼 때마다 더없이 천한 분들의 모습을 끝도 없이 보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장관이나 총리 청문회를 할 때면 위장전입에서 시작하여 부동산투기나 뇌물수수, 논문표절 등등 별의별 불법행위의 퍼레이드를 보여주는 정부 고위관리들, 딸내미나 자식들 특채를 위해 조직적 개입을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시험 규정까지 몇 번을 바꾸는 정부조직, 그 정도 비리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그렇게 비리를 들먹이면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찾을 수 없다면서 모든 비판을 무시하며 ‘무조건 전진’을 외치는, 사실은 그 자신이 그런 비리로 점철된 경력을 갖고 있는 대통령, 거기다가 몇 번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토목공사를 이름을 바꾸며 뒤통수를 치고 거짓말을 하면서 집요하게 밀어붙이는 정부… 이해관계가 정책에 대한 생각을 아무리 접어줘도 볼 때마다 어쩜 이리 천하고 한심한가 한숨을 쉬게 하는 분들이 지금 이명박 정부 아닌가! 이해관계가 노선, 생각이 달라도 격조가 있어서 비판을 하면서도 어떤 경탄이나 존경심을 갖게 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명박 정부는 정반대로 입장이나 이해관계는 달라도 좋으니 최소한의 격조는 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래서 어울리지도 않게 농반진반으로 ‘격조’를 찾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정부가 이제 ‘격조’를, ‘격’을 높이자고 말한다. 그래, 제발 나라의 격을 좀 올리자! 이렇게 외치고 싶지만, 그 이전에 먼저 터져나오는 웃음 때문에 채 하지 못한다. 천하의 바람둥이가 “성문화의 격조를 높이자”면서 문란한 성문화를 비난하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하긴, 이건 빈번히 보게 되는 실제상황이기는 하다. 뇌물수수로 고발된 검사가, 그나마 사건 당사자들에게 수사란 이름으로 면죄부를 주고는, 다른 이들의 뇌물수수를 비난하며 수사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나라의 현실이니 말이다.

아직도 자신들이 ‘격조’ 있는 정부라고 믿고 있는 걸까? 아마 그건 아닐 것이다. 자기들이 한 짓이 있는데, 아무리 눈치가 없고 둔하다고 해도 그 정도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들이 그런 말을 하면 남들이 웃을 거라는 걸 몰랐던 걸까? 그랬을 것이다. 아니, 남들이 웃을 거라고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거 생각하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을 터이니 말이다. 더구나 누구나 그 정도의 자존심은 있지 않은가? 그래서 덕분에 우리는 3년 내내 웃어야 했다. 언제나 그들은 진지하고 엄숙한 표정으로 말하고 행동한다. 그런데 그걸 보는 우리는, 어떤 해석을 덧붙이지 않아도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정말 어이없는 언행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이 진지하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타고난 코미디언이라고 생각한다. 웃길 의도 없이 매번 사람을 웃기는 코미디언! 어떤 수식이나 과장도 필요 없다. 그저 그들의 진지한 말이나 행동을 있는 그대로 보고 듣는 것만으로 국민 전체를 웃기기에 충분했다. 이는 이명박 집권 이후 가장 웃기는 프로그램이 있는 그대로 찍어서 잠시 보여주는 <돌발영상>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만으로 쉽게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G20이니 국격을 높이자”는 말을 했던 것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격’이란 단어가 무얼 뜻하는지 몰랐다고야 할 수 없을 게다. 자신들이 격이 있다고 생각했다고도 믿기 어렵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외국의 ‘정상’들이 몰려오는 대규모 이벤트니까, 남의 나라 신문에 나라 이름과 대통령 이름이 대문짝 만하게 나올 멋진 행사니까, 국제적으로 멋들어지게 폼을 한 번 잡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이상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게 다 였을 것이다. 이미 88올림픽이나 2002 월드컵의 선례도 있지 않은가! 그러고 보면 G20이란 대표적인 세계 정상들이 모여 하는 정치월드컵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국격을 높이기 위해 하는 짓도 그런 때와 비슷하다. 노점상이나 노숙자 등 눈에 거슬리는 ‘것’들을 마치 쓰레기 치우듯 청소해버린다. 외국인, 특히 동남아에서 온 검붉은 얼굴의 사람들, 혹은 이슬람계열 국가의 외국인들 또한 청소하고 제거해 버린다. 테러의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뿐만 아니라 체류자격을 상실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 다시 말해 ‘불법체류자들’을 체포하고 추방하는 강도 높은 청소를 실시한다. ‘국격’이 그 나라 도로의 청결도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평양시내 거리처럼 거리를 ‘쓸데없는 사람 없는’ 깨끗한 거리로 만들면 국격이 지고하게 올라갈 거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다. G20 회의를 할 장소 일대에는 특별법으로 계엄적인 상황을 만들어 집회나 시위는커녕 사람들이 무리지어 지나가는 것조차 금지할 거라고 한다. 그래도 혹시 멀리서라도 시위를 벌일까 싶어 이른바 ‘지랄탄’이라고 불리는 다연발 최루탄에다 음향대포까지 도입하겠다고 난리를 쳤다. 자기들이 귀 먹은 것으론 만족할 수 없어, 시위자는 물론 그 근처에 있는 사람 모두의 귀를 대포 같은 소리로 틀어막아 주겠다는 것이다. 어떤 불화나 이견도 드러나지 않도록 입에다 물리학적 귀마개와 화학적 재갈을 채워주겠다는 것이다. 그래, 그것은 이제 청결한 거리에 정숙함을 더해줄 것이다. 공무원이나 경찰만이 제지 없이 지나다니고, 누구도 입과 귀를 꽉 틀어막은 채 사는 조용한(!) 도시, 그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격이 높은 도시인 것이다! 격에 대한 생각이 이보다 더 천할 수 있을까?

여기다 대고 무얼 설득하려 한단 말인가? 다만 그들의 레드 콤플렉스를 ‘전제하고’ 하나 물어보고 싶다: 당신들의 그런 기준에 따르면 이견들이 외쳐지고 소란스런 투쟁이 있는 프랑스의 파리에 비해 조용하고 깨끗한 거리만 있고 3대 세습이 이루어져도 어떤 이견도 드러나지 않는 북한의 평양이 훨씬 더 국격이 높은 것 아닌가? “국격을 높이자”는 말로 당신들이 만들려는 나라가 그런 나라 아닌가? 그런 거라면 당신들의 법에 따라 적을 고무·찬양하는 이적행위로 처벌해야 할 불온한 생각 아닌가?

자기 집 마당을 더럽힐까 나그네마저 쫓아내는 놀부 같은 부잣집 주인과 아이들의 울음소리와 싸움소리가 끊이지 않지만 그래도 나그네를 끌어들여 얘기를 들어주고 부랑자나 거지마저 불러들여 밥을 나누어 먹는 소박한 주인 가운데, 어느 쪽이 더 격이 높은 것일까? 사실 이거야 해보나 마나 한 질문일 게다. 초등학생도, 대학생도, 지식인도 노동자도 이 질문에 잘못 대답하긴 어렵다.

“국격을 높이자!” 그래, 정말 그래야 한다. 정말 국격 좀 높여야 한다. 그러려면 돈만 알고 돈을 좀 더 벌기 위해선 자신이 ‘국법’을 행사하는 처지임에도 국법을 앞서 어기며 불법행위를 하는 그런 분들을 국가에서 쫓아내야 하지 않을까? 건설회사 사장들을 위해, 혹은 건설경기를 활성화하기 위해 나라의 핏줄 같은 물줄기 전체를 흙탕물의 공사판으로 만들어버리는 천하디 천한 이권의 경제학을 집어던져야 하지 않을까? 외국인이나 이른바 ‘불법체류자’는 물론 이견을 갖고 있는 국민들 전체를 적으로 간주하여 추하디 추한 무기로 입과 귀를 틀어막으려는 천하기 짝이 없는 넘들을 국가에서 솎아내어 내다버려야 하지 않을까? 격을 높이자면서 그저 외양과 폼으로 밖에는 격을 생각하지 못하는 더 없이 천박한 격의 관념이야말로 청소해버려야 하지 않을까? 반대로 그 모든 이견에 귀를 열고 들어주면서, 이견을 가진 자들이 모여 함께 토론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비록 해결할 순 없을 지라도 억울하고 불만스런 얘기들을 들어주고 고통을 쓰다듬어주며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는 조건을 찾아주는 것이야말로 격조 있는 국가의 형상 아닐까?

정말 격조 있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현실에 장치해 놓은 수많은 불편함만 없다면 어디다 갖다 보리고 싶은 생각이 드는 그런 국적이 아니라, 이주노동자를 생각하고 농민을 생각하고 오랜 시간을 투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생각해도 부끄럽지 않고 자랑할 수 있는 그런 국적을 갖고 싶다. “국격을 높이자!” 그래, 정말 진심으로 부탁하고 싶다. 국격 좀 높이자.

응답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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