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어떻게 컨텐츠의 선순환을 만들 수 있을까?

- 정군(그린비출판사)

어떤 이미지가 저작권이 있는 이미지인가?

얼마 전, 그린비에 이미지 저작권 관리 회사에서 보낸 우편물 한 통이 도착했다. 우편물의 내용은 그린비 홈페이지와 블로그에서 자신들이 저작권을 보호하고 있는 이미지 5컷이 무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확인하였고, 명백한 불법 행위니 정상적인 저작권 사용료의 10배를 배상하라는 것이었다. 그린비는 물론 저작권 사용료를 낼 용의가 있었다. 하지만, 정상적인 이미지 사용료의 10배라니, 어이가 없었다.(액수로는 810만원)

그런데 그린비는 그 이미지들을 어떻게 사용하게 된 것일까? 이 과정을 보면 웹 컨텐츠 환경에서 ‘저작권법’이 얼마나 애매하게 작동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린비 홈페이지와 블로그에 올라오는 포스트(블로그에 올라오는 게시물 단위)에 사용되는 이미지들은 대부분 구글 이미지 검색을 이용해서 찾아낸 것들이다. 글과 잘 어울리는 이미지를 이용해서 잘 구성된 하나의 포스트를 만드는 것이 그린비 블로그 담당자의 주된 일인데, 이 과정에서 필요한 이미지들 전부를 블로그 담당자가 직접 찍고, 그리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문제는 그러한 과정에서 찾아낸 이미지들이 저작권이 있는 이미지인지, 없는 이미지인지를 확인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이미지 저작권이 살아 있는 이미지들의 경우, 저작권 관리를 전담하는 회사의 워터마크가 찍혀있는데 워터마크가 찍혀있지 않은 이미지들의 경우에는 저작권의 유무를 일일이 확인할 수 없다.(일단, 어디가서 확인을 해야 할지도 막막한 형국이다.)

그린비 블로그

지금도 그 이미지 저작권 관리 회사에서 보낸 내용증명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은 구글이나 네이버 검색 등을 통해 쉽게 찾을 수 있다. 물론 워터마크도 찍혀있지 않은 상태로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것도 올라간지 1년이나 지난 이미지들에 대하여 정상 사용료의 10배를 물라는 통지를 받았을 때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물론 10배를 물지도 않았고, 형사고발을 당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이를 계기로 ‘저작권’과 관련된 문제를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얻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었다.

컨텐츠의 풍요와 개인의 권리

‘저작권’이라는 ‘권리’에 어떤 이해관계가 걸려있는지 생각해 보기 위해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해 보자. 첫번째로는 특정한 저작물에 대한 배타적, 독점적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이미 만들어져 있는 무수한 창작물들을 공공이 자유롭게, 공짜로 향유하고, 그것들을 이용해서 배치와 맥락이 다른 새로운 창작물들을 만들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창작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재생산할 수 있는 기반이 흔들릴 가능성이 아주 높다. 두번째는 특정한 저작물의 배타적, 독점적 권리를 철저하게, 그것도 아주 철저하게 보호해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은 애초에 창작물들에 제한적인 접근만이 가능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저작권’과 관련된 문제는 늘 공공의 향유권과 개인의 권리 사이에서 어느 지점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성격이 갈린다. 이 사이(공공과 개인의 사이)에서 과연 어떤 지점에 더욱 중점을 찍어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더불어 ‘그린비’의 존립기반 자체가 ‘저작권’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출판’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 빈곤의 악순환

그렇다면, 어떤 조건이 컨텐츠를 제작, 공급하는 쪽과 향유하는 쪽의 이해를 적정하게 맞출 수 있는 조건일까? 정상 사용료의 10배 배상을 요구한 이미지 저작권 관리 회사와 그린비의 관계 속에서 문제를 다시 살펴보면 하나의 악순환이 보인다. 10배 보상이 아니라 정상 사용료를 내고 이미지를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이미지 다섯 컷에 81만원을 지불하는 것은 과하다. 다시 말해 ‘적정한 가격’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과연 이 정도의 가격을 지불하고 그 이미지들을 사용하느니 차라리 저작권이 없는 다른 이미지들을 사용하는 편이 낫다. 어떤 이용자가 그 가격을 주고 이미지를 구입해서 블로그 포스트용 이미지로 사용할까? 아마 저작권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 가격이 컷당 10만원에 육박하는 가격이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결코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그 이미지 저작권사는 가격 책정에 실패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린비는 그 이미지들을 홈페이지와 블로그에 사용했다. 저작권이 있는 이미지인지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용하게 하고, 추후에 다른 방법으로 사용료를 징수하는 편이 매출과 수익에 더 긍정적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각 이미지에 책정되어 있는 가격을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이 아니었다면, 이용자와의 소통에 실패한 것이 아닐까? 컨텐츠의 가격을 매우 비싸게 책정하고, 이용자와의 소통에 실패했다는 것은 컨텐츠의 세계 전체를 메마르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이런 상황은 적정한 가격을 지불하고 이미지를 사용함으로써 제3의 컨텐츠(창작물)을 만들려는 이용자의 활동을 위축시키고, 이는 이용자의 활동을 통해 적정 이윤을 확보하려고 하는 공급자로 하여금 1차 컨텐츠의 가격을 더욱 높이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1차 컨텐츠의 가격은 점점 높아지고, 그 컨텐츠를 이용해서 만드는 2차 컨텐츠들의 질과 양은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악순환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번 일의 경우엔 이용자의 입장에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린비는 출판 컨텐츠를 공급하는 공급자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그린비에게도 매우 중요한 화두일 수밖에 없다. 그 화두는 어떻게 컨텐츠의 선순환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로 집약된다.

– 선순환을 어떻게 만들까?

사실 현재의 조건, 자본주의 가치사슬 속에서 모든 것이 ‘상품’이 되고 마는 이 조건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창작자의 삶을 재생산 하는데 문제가 되지 않으면서도 이용자의 입장에서 가장 부담을 덜 느낄 수 있는 적정 수준의 임계점을 찾는 것일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공들여서 만든 컨텐츠가 많이 팔리는 편이 유리하다. 일례로 그린비는 어떤 책이 5천부 팔리는 것보다, 만부 팔리는 것을 더 좋아한다. 단순히 출판사의 초과이윤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될 경우 컨텐츠를 더욱 낮은 가격으로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점에 내보내는 광고나, 이벤트 등 그린비의 모든 프로모션은 그런 관점에서 이루어진다. ‘어떻게 하면 너 낮은 가격으로 컨텐츠를 공급하고,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을까?’ 이 질문이 그린비 프로모션(판매촉진)의 문제의식을 집약해서 보여준다.

그리고, 저자의 작업에서 나오는 하나의 결과물(가령 책)을 얼마나 다양한 방식과 가격으로 공급할 수 있을지에 관해서도 고민한다. 첫째는 횡적 다양성의 확보이다. 비교적 높은 가격의 책, 유/무료 강의, 그 책을 통해 함께 공부하는 독자 세미나 모임까지, 특정한 ‘상품’의 이용을 횡적으로 다양하게 펼쳐놓는 것이다. 독자는 이 중에 가장 좋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두번째는 종적 다양성의 확보이다. 예를 들어 곧 출간될 [루쉰 전집]의 경우 양장본과 무선제본을 함께 출간한다. 같은 내용의 것을 다양한 가격대에서 고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종적 다양성 속에서 공급자와 이용자가 서로 만족할 수 있는 중점을 찾는 것이 그린비가 자신의 활동을 재생산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점은 말할 것도 없다. 싸고, 쉽게, 보다 많이 공급할 수록 그린비는 자신의 활동(컨텐츠 제작 활동)을 재생산하기에 좋은 조건을 얻게 될 것이고, 그러한 조건에서 보다 다양한 활동들을 구성할수록 독자들은 보다 재미있게 컨텐츠에 접근 할 수 있게 될테니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그린비가 제공하는 싸고 질좋은 컨텐츠들을 통해 공부한 독자들이 다양한 컨텐츠를 만들어 내고, 그것이 다시 그린비의 활동의 토대가 될 수 있다면, (현실을 감안해서 보자면) 그보다 좋은 조건이 또 있을까? 결국 문제는 어떻게 적정한 가격을 찾아내고, 공정하게 이용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 수 있느냐로 돌아온다.

사회적 컨텐츠 플랫폼

“밤 하늘을 밝히는 별들과 같이 컨텐츠들이 모여서 이루는 플랫폼을 상상해 본다”

다시 이미지 이용과 관련된 문제로 돌아와 보자. 지금은 특정 이미지의 저작권 유무를 알아보기 위해 이미지 판매 사이트 전체를 개별적으로 모조리 뒤져야 한다. 그렇게 하더라도 검색 조건의 제약 때문에 완벽함을 보장할 수 없다. 또 그렇게 구입한 이미지를 자신의 사이트를 통해 공개했을 때, 그것을 퍼가서 ‘불법’, ‘무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도 없다. 그렇게 퍼가서 사용하는 이미지를 또 다른 누군가가 퍼가서 사용한다면, ‘불법’, ‘무단’의 계열이 무한대로 늘어나는 결과가 된다.(사실 지금이 그런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문제는 창작활동을 ‘불법’으로 만드는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닐까?

사실 저작권료의 적정한 수준을 찾는 것은 기본이고, 상황의 변화에 따라 매번 다시 생각해 봐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인터넷에서의 이미지 사용과 관련된 예를 들자면, ‘저작권’이 있는 이미지들을 통합적으로 빠르게(포털, 검색 사이트의 이미지 검색 속도만큼) 검색할 수 있는 경로가 필요하고, 거기에서 찾은 이미지들을 적정한 가격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어떤 ‘권리’가 있고 그 권리를 충분히 지켜주고 싶은 의사가 있다면, 그렇게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줘야 하는 것이다. 창작물, 컨텐츠가 삶의 모든 부분에 결부되어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어떤 사기업의 문제도, 개인의 문제도 아니다. 차라리 사회의 문제라고 봐야한다. 따라서 그러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로서 공공의 ‘저작권 플랫폼’이 필요한 것이다. 더불어 그러한 ‘플랫폼’이 단지 이미지 이용에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작성한 짧은 글부터 연구자들의 전문적인 글, 완성도 높은 저작 등 텍스트 컨텐츠들까지를 포괄할 수 있는 것이라면, 유튜브 동영상부터 방송국에서 제작한 양질의 영상들까지를 포괄할 수 있는 것이라면 컨텐츠 세계가 훨씬 더 풍요롭게 되지 않을까? 그러한 사회적 ‘플랫폼’의 필요가 현재의 ‘저작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온갖 문제들의 ‘한계점’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바로 그곳이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창작자, 이용자이면서 창작자인 사람들

그 ‘출발점’에서 다시, ‘창작’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세상의 모든 것은 이미 있었던 것들이다. 모든 사진은 이미 있는 것을 찍은 것이다. 모든 음악은 이미 있는 소리들 속에서 만들어진다. 모든 글은 이미 있는 글들 속에서 만들어 진다. 모든 창작은 이미 있는 것들 속에서 ‘새롭게’ 다시 태어난다. 결국 창작이나 저작은 그렇게 이미 있는 것들을 재조합하고, 다른 배치로 구성해서 다른 맥락을 같는 작품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작품은 온갖 다른 것들에 기대어 있는 것이다. 그러할진대 그 작품이 ‘나만의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권리를 갖는 작품이라고 자신있게 주장할 수 있을까? 차라리 그 작품의 작품성이 가장 잘 실현되는 방법은 최대한 많이 이용당해서 그것이 가진 잠재성이 완연하게 드러나는 것이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한 자유로운 이용이 가능한 조건이 창작자에게도 더 좋은 조건인 것은 아닐까? 그런 조건 속에서도 얼마든지 자신의 삶을 재생산할 수 있다면, 그게 최선인 것은 아닐까? 저작권에 대해 공공연히 이야기 할 수 있는 공적인 장(場)에서 이러한 질문들이 오가고, 더불어 거기서 그때마다의 답들이 내려질 수 있다면, 우리는 위축과 불안(재생산의 위협에 대한 불안)의 제로섬 게임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결국 ‘자본주의’를 다시 생각해야만 하는 것이다. 사회적인 컨텐츠 플랫폼이 그러한 고민의 시작이길 바란다.

몽상적이지만, 가장 좋은 조건을 상상해 보고 싶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이 그러한 능력을 가지지 못한 무수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기꺼이 선물로 주고, 그 선물을 받은 무수한 사람들이 그들에게 풍요로운 삶을 선물할 수 있는 조건이 되었으면 좋겠다. 옆집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에게 그림을 선물 받고,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는 그러한 관계가 사회적으로 확대될 수 있기를 바란다. 책을 내고, 강의를 기획하고, 블로그를 운영하는 그린비가 공부하고 싶어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린비의 활동을 선물로 주고, 그들이 그린비에게 ‘재생산’을 선물로 주는 그런 관계가 저자와 독자와 출판사 사이에서 생겨나길 바란다.

그 어떤 제약적인 법도 우정의 연대를 넘어설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우정의 연대는 제약적인 법들이 만들어 놓은 메마른 땅을 옥토로 바꾸어 놓을 수 있을 것이다.

응답 1개

  1. […] This post was mentioned on Twitter by 김지혜, 진보 뉴스. 진보 뉴스 said: [수유너머] 어떻게 컨텐츠의 선순환을 만들 수 있을까?: 어떤 이미지가 저작권이 있는 이미지인가? 얼마 전, 그린비에 이미지 저작권 관리 회사에서 보낸 우편물 한 통… http://bit.ly/hwFcH0 http://suyunomo.jinbo.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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