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노블리스 오블리제? 노블리스 테러!

- 데모스

대한민국이 정말 민주공화국이 맞는가? 돌아가는 꼴을 보면 귀족정 자본주의가 아닌가 싶다. 지난 29일 MBC 시사매거진 2580-믿기지 않는 구타사건 ‘방망이 한 대에 100만원’ 다들 봤는가? Might and Main이라는 SK 계열 물류회사의 전대표 최철원(SK 최태원 회장의 사촌동생)이 회사 이름에 걸맞게 유홍준이라는 화물노동자에게 야구방망이로 ‘주류(main)의 힘(might)’을 과시했다. 있는 힘껏 13대를 때리고 쿨하게 ‘매값’이라며 2천만원을 줬다. 그것도 모자라 입에 두루마리 화장지를 물리고 주먹질을 해댔고, 나중에 항의 전화한 노동자에게 “일종의 파이터 머니 아니냐” “돈 받고 왜 딴소리냐” “2천만원어치 못 때렸다”며 되레 큰소리 쳤다.

최철원사장이 ‘매값’까지 치르며 유씨를 줘 패고 싶었던 이유는 뭐였나? 유씨는 화물연대 조합 활동을 해온 노동자였다. 자기가 지입차주로 소속돼 있는 회사가 M&M에 합병되면서 화물연대 활동을 해왔다는 이유로 새로운 계약체결을 거절당했다. 소속회사의 다른 운송노동자들은 M&M의 강권에 못 이겨 화물연대를 탈퇴했지만 유씨는 그러지 않았다. SK 본사에 가서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고독한 싸움을 계속햇다. 하지만 SK는 오히려 유씨에게 7,000만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고, 싸움에 지친 유씨는 생활비라도 마련하기 위해, 자기가 몰던 탱크로리 차량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합의를 하자는 회사 측의 제안을 받으러 본사에 갔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결국, 최철원사장의 심사는 ‘합의는 하지만, 주제넘게 나한테 개긴 놈에 대한 분풀이는 해야겠다’는 것이었다. 최철원 사장의 눈에 유홍준은 자본가와의 계약주체인 노동자가 아니라 자기 신분도 모르고 설친 노예로 보인 게 아닐까?

이와 같은 ‘신분혐오폭력’은 전에도 기사화된 적 있다. 가까이는 지난 해 7월에 있었던 황산테러사건으로, 전자장비업체 대표 이모(29)씨가 똘마니들을 시켜 전직 (여)사원 박씨(27)의 얼굴에 황산을 뿌린 사건이다. 2007년 7월 퇴사한 뒤 박씨가 투자금과 체불임금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내는 바람에 4천만원 배상 판결을 받은 것에 앙심을 품고 박씨의 물리적 생명과 사회적 삶을 파괴한 황산테러를 자행한 것이다. 그때의 이사장 마음도 최철원의 마음과 똑같았을 것이다. ‘감히 네까짓 게 나한테 손해배상을 청구해!’ 그들의 마음속에 ‘천한’ 노동자가 귀족 신분인 자본가에게 대드는 꼴은 법을 떠나 참을 수 없는 신분모욕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올해 10월 14일 대법원은 이사장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살인미수죄는 인정되지 않은 형량이다.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2007년 한화 김승연 회장 폭행사건도 같은 맥락에 있다. 김회장은 룸살롱에서 시비를 걸다 얻어맞은 둘째 아들 김모(22)씨의 복수를 하기 위해 아들은 물론 보디가드 및 경호원 40여명과 청담동 사건 현장에 들어가 아들을 때린 술집종업원을 채어맨에 태우고 야산으로 끌고가 폭행을 가했다. 김회장은 아들을 때리는 데 가담한 또 다른 종업원을 찾아 룸살롱으로 가서 흠씬 때린 뒤 보험용인지 위로용인지 폭탄주를 쐈다. 최철원의 2천만원에 비하면 저렴한 매값이었다. 실로, 내가 지금 조선시대 양반사회를 살고 있나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사건들이다. 머슴들을 데리고 가서 양반 자제를 때린 상놈을 치도곤 낼 수 있고, 흥부처럼 가난한 상놈은 돈만 주면 엄한 매도 맞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신분사회를 살아가고 있다는 이 아찔한 자괴감.

전부터 그랬지만, 이런 마당에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들먹이는 사람들 입을 막고 싶다. ‘귀족의 의무’라니? 언제부터 대기업회장이, 선출직 공무원이(대통령과 국회의원), 대학교 총장이, 심지어 서울대 대학생이(서울대 텝스블로그에는 “Teps Generation 1기는 텝스 홍보대사로서 텝스와 아이텝스의 인지도를 높이고 대학 동아리, 지역사회와의 연계를 통해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시행하고…”라고 적혀 있다) ‘귀족’이 되었단 말인가?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 아닌가? 민주공화국에 ‘귀족’ 신분이 존재한다는 말인가? 헌법을 부정하는 이런 통념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그것은 공화국의 법을 이용하면서도 그것과는 다른 법으로 세상을 지배하고 싶은 자본가들의 귀족주의에서 온 것이다.

신자유주의 체제 속에서 자본가들은 법적 평등과 노동가치론 대신 새로운 신분질서를 꿈꾸고 있다. 노동으로 획득된 계층이 아니라 상속되는 계급을, 노동의 자본화가 아니라 ‘지대’의 자본화를, 노동생산성의 향상이 아니라 ‘소유권’의 증권화를 통한 금리의 증가를 기획한다. 노동정책에 있어서도 이용하되 책임은 안지는 유연한 간접고용을 늘이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신분적으로 차별하여 노동자들을 분열시킨다. 귀족들은 귀족끼리만 살고, 배우고, 어울리고, 결혼하지 절대로 ‘평민’이나 ‘천민’과는 섞이지 않으려 한다. 자신을 ‘귀족’으로 여기는 자본가들이 지배하는 사회, 그 ‘귀족’을 꿈꾸는 평민들이 다수인 사회, 귀족정 자본주의를 꿈꾸는 신자유주의에서 이런 반-공화주의적 폭력행위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사태가 이렇다면 ‘민주주의’, 즉 돈도 권세도 없는 ‘데모스’(demos)들의 통치(democracy)를 위해 천민들은 동학난 때처럼 반란의 몽둥이를 들어야 하는가?

응답 1개

  1. […] This post was mentioned on Twitter by lizom, 진보 뉴스. 진보 뉴스 said: [수유너머] 노블리스 오블리제? 노블리스 테러!: 대한민국이 정말 민주공화국이 맞는가? 돌아가는 꼴을 보면 귀족정 자본주의가 아닌가 싶다. 지난 29일 MBC 시사매… http://bit.ly/hMSlHR http://suyunomo.jinbo.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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