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제네바 주민투표와 홍대미화원 농성

- 맹찬형(연합뉴스 제네바 특파원)

지난 2010년 11월28일 제네바 시민들은 ‘대형 슈퍼마켓 개점 시간 1 시간 연장하자’는 발의안을 놓고 주민투표를 실시했다. 결과는 반대 56.2%, 찬성 43.8%로 부결됐다. 우파정당들이 주도한 이 발의안은 미그로(Migros), 쿱(Coop) 등 대형 슈퍼마켓의 평일 폐점시간을 오후 7시에서 오후 8시로, 토요일은 오후 6시에서 7시로 각각 1시간 연장하고, 크리스마스 연휴 전 2주를 비롯해 연중 3주는 소비자 편의를 고려해 일요일에도 개점하자는 내용이었다.

제네바 지역 대형 슈퍼마켓들은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오전 8시~오후 7시, 목요일과 금요일은 오전 8시~오후7시30분까지 개점하고, 일요일은 쉰다. 슈퍼마켓들이 너무 일찍 문을 닫아서 소비자들의 불편이 크다는 것이 발의안 제출의 주된 이유였다. 나 역시 소비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른 폐점 시간에 불편을 느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제네바 주민들은 자신들이 1시간 더 여유있게 장을 볼 권리보다는 노동자들이 현행대로 7시에 퇴근해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쪽에 손을 들어줬다.

대형 슈퍼마켓 개점 시간 연장을 내용으로 하는 주민투표 발의안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8년에 현재의 마트 개점시간이 정착된 이후 2002년에 한번 연장 시도가 있었는데 그 때도 역시 부결됐다. 제네바 주민들의 선택에는 프랑스어권 특유의 똘레랑스 문화가 담겨있다. 뿐만 아니라 생산과 소비가 독립된 행위가 아니라 일관된 경제순환의 두 측면에 불과하고, 소비자와 노동자의 관계 또한 수시로 변화하는 동태적 관계라는 통찰이 들어있다고 믿는다.

노동조합과 진보정당이 앞장선 마트 개점 시간 연장 반대 운동이 일단 성공했지만, 힘겨루기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 보수정당들이 성탄 연휴 등 소비자들의 구매 수요가 많은 기간에 한해 개점시간을 연장하는 안을 따로 떼서 내년 6월에 재차 주민투표에 붙이는 방안을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 또 한 번 주민들의 현명한 선택이 있을 것으로 믿는다.

작년 11월 말에 있었던 제네바 주민투표를 두 달 가까이 지난 시점에서 굳이 거론하는 이유는 우선, 이 투표가 있기 직전에 수유너무 위클리에 기고했던 `유럽의 소비…윤리적이며 전략적인’이라는 제목의 글을 완결 짓고자 하는 의미가 있다. 둘째, 2011년 새해 벽두부터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홍익대 미화.경비.시설 노동자들의 농성과 이에 대한 시민들의 뜨거운 지지가 두 달 전의 제네바 주민투표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홍익대 당국은 노조 결성을 시도한다는 이유로 용역업체 변경이라는 편법을 통해 170여 명의 노동자들을 차가운 겨울바람이 부는 길거리로 내몰았다. 일언반구 설명도 없이 청소장비를 넣어둔 창고의 열쇠 비밀번호를 바꾼 게 해고통보였다. 미화 노동자들은 월급 75만 원에 하루 300원의 식비를 받고 일했다고 한다.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차마 고개를 들기 힘들 정도로 민망하고 무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분들이 1월 3일부터 해고에 항의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는 홍익대 본관에는 `아무 상관도 없는’ 시민과 학생들이 찾아와 빵과 라면 등 후원물품을 전달하고 후원 계좌를 통해 성금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홍대 재학생 중에도 서포터즈가 생겼다는 소식도 들린다. 평소 개념찬 언행을 보여줬던 영화배우 김여진씨도 직접 김치 등 밑반찬을 들고 농성장을 방문했고, 트위터 글을 통해 지지를 보냈다.

`아무도 다른 이를 돌보지 말라’는 것이 신자유주의의 철학이다. 이 철학의 목적은 한 배를 탄 사회 구성원들의 연대감을 부정하고 모든 이를 개인의 틀 속에 고립시켜 무한 생존경쟁의 틀로 몰아넣는 데 있으며, 파편이 된 개인들 속에서 노동 유연성과 자본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있다.

숨 막힐 것 같은 신자유주의의 철학을 부수는 간단한 방법은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것’이다. 제네바 시민들이 대형 슈퍼마켓 노동자들의 권리를 존중한 것처럼, 평범한 시민과 학생들이 홍익대 미화 노동자들을 감싸안은 것처럼 서로를 챙겨야 한다. 롯데마트의 `통큰치킨’ 판매 중단을 이끈 골목 치킨집의 반란과 이를 지지한 시민들에게서 나타났고, 홍익대에서 확인된 것처럼 한국 땅에서 거대한 의식의 전환은 이미 시작됐다.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 될 것이다.

또 유권자로서의 헌법적 권리를 십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언필칭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고 있다는 대한민국에서 법과 제도의 보호 밖에서 함부로 방치되는 이웃이 없도록 촘촘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라는 정치적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

제네바 주민투표 다음날 오후 아내가 부탁한 야채니 우유 등을 사러 간 미그로 슈퍼마켓 직원들의 표정은 평소보다 훨씬 밝고 활기차 보였다. 자신들의 권리를 존중해준 시민, 즉 소비자들에게서 따뜻한 연대감을 확인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연대는 참 따뜻하다.

응답 4개

  1. 어깨꿈말하길

    연대는 참 따뜻하다…

    멋집니다…

  2. […] This post was mentioned on Twitter by lee yong geun, 진보 뉴스. 진보 뉴스 said: [수유너머] 제네바 마트시간 연장 주민투표와 홍대미화원 농성: 지난 2010년 11월28일 제네바 시민들은 ‘대형 슈퍼마켓 개점 시간 1 시간 연장하자’는 발의안을… http://bit.ly/gddFWt http://suyunomo.jinbo.net […]

  3. 헤스티아말하길

    슈퍼마켓 폐점시간이 평일 7시군요. 불편할 것 같은데 적응하기 나름이겠죠. 매우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4. 애니원말하길

    와~ 놀랍군요. 제네바 주민들 얘길 들으니 먼나라 딴나라 세상이네요. 우리도 그런 날이 와야할 텐데요. 좋은 얘기 잘 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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