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연대의 쾌락’ – 홍대투쟁을 응원해줘

- 오하나(수유너머N)

나는 학생이 아니다. 프리랜서다. 그렇다, 백수다. 백수라서 좋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좋은 건 궁금한 현장에 열 일 제치고 달려 나갈 자유가 있다는 점이다. 지난 1월 나는 「‘유령 체험’, 청소 노동자로 하루나기」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전날 밤 도시락을 싸고, 새벽에 출근해 대학 교정을 쓸고 닦는 ‘유령’되기. 화장실에서 마주쳐도, 복도에서 마주쳐도 얼굴 한 번 기억되지 못하는 ‘유령’되기. 확 끌렸다. 심지어 이 프로그램은 일하고 싶은 학교도 선택할 수 있었다. 졸업식도 안 가고, 앨범도 찾아가지 않은 나였지만, 오랜만에 이 몸을 만년 빚더미로 만든 모교나 찾아나 가볼까 하는 마음에 얼른 신청했다. 몇 달 전부터 계획됐던 프로그램은, 설날이 지나 집단 해고 된 홍대 미화ㆍ경비 노조의 복직 투쟁과 함께 투쟁장 1일 결합 프로그램으로 대체 됐다. 하루로 바뀌든, 사흘로 바뀌든 상관없던 나였기에 급박한 일정 조정에도 끄떡 없이 참여했다. 백수를 선택한 삶의 메리트를 톡톡히 누리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한편 ‘작업터의 구애 없는 자유’란, 생산수단을 좀체 갖지 못한 무산자의 자유이기도 했다. 한 마디로 난 내 몸과 수중의 돈을 마음대로 처분할 자유, 결국엔 “슈퍼에서 더 싼 떨이 야채만을 살 자유”밖에 갖지 못하다는 얘기다. 더 가난해질 수 있는 자유, 비정규직의 씁쓸한 자유. 그래서일까? 이번 홍대 미화ㆍ경비 노조 투쟁이 남 일 같지 않았다. 궁금했다. 거듭된 재계약으로 언제든 해지 위험을 안고 사는 미화 노동자들은 어떤 마음으로 일하는지 알고 싶었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러 오는 이들도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2박 3일 게다가 주중에, 청소하러, ‘아주머니’들과 말 한 번 섞어보려고 참여할 인간이면 보통 백수가 아닐 터. 아무리 백수이기를 선택 ‘당한’ 자일지라도 친구 삼을만한 자들임이 틀림없었다. 20일 당일 아침 세미나를 마치고 홍대 현장에 가보니 모인 이들 중 태반이 대학생이었다. 그렇다. 누구보다 시간이 많고, 어디에든 접속할 수 있는 백수, 그 족속의 태반은 대학생이었던 것이다! 공통점을 나눠가진 우리는 대학 엠티에라도 온 듯, 한 무리를 이뤄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노동 현장 교육 후 이어지는 프로그램은 미화 노조 조합원, 우리 ‘청소 아주머니’와의 대화였다. 휘갈겨 쓴 글씨로 이것저것 들리는 대로 수첩에 이야기를 적어 내려갔다. (다음 글에 함께 나눈 이야기를 정리해보았다.) 저녁은 점거한 행정실 복도에 돗자리를 깔아 한 줄로 밥을 배급 받고 양반다리로 앉아 먹었다. 학생들이 왔다고 고기 무국을 해주셨다. 우린 ‘청소 아주머니’, ‘경비 아저씨’ 사이에 들어가 플라스틱 국그릇, 플라스틱 숟가락으로 국밥을 떠먹었다. 아직 어색했던지라 별다른 말도 섞지 못한 채 묵묵히 입에 밥만 우겨넣었다. 다 먹은 식기들을 미리 정한 설거지 조에게 건네주고 넉넉하게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철야조만 남고 다른 조합원 분들은 귀가하는 시간이었다.

늦게 온 박은선(수유너머N 연구원, 미술가)이 선배 티를 낸다고 지갑을 열었다. ‘아이스크림’을 사준다며 같은 조 대학생 윤구와 혜미를 교정 밖 슈퍼로 유인한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이를 더 반긴 건 박은선과 나였다. 슈퍼 매대 앞에서 멀뚱하니 서 있다가 새우깡도 겨우 고른 ‘대학생’들. 사줄 때 얻어먹고, 있을 때 먹어둬야 되는데, 이거 아직 한 번도 굶주려본 적 없는 거 아니야 당신들? 동질감에 금이 갔다. (농담이다.) 사실 이들은 시종 발랄하게 나와 박은선을 챙겨줬다. 저녁엔 김미례 감독의 <외박> 상영회가 있었고, 영상을 본 후 감독과 배급사 빨간거북, 미화노조 여러 분을 모시고 이랜드 투쟁과 지금 홍대 농성 이야기를 넘나들며 했다. 그때 오간 이야기는 다음 수유너머N 게시판에 남긴 윤구(Rozi. 철학과를 다니며, 정치경제학을 공부하며, 골드 리트리버를 격하게 닮았음)의 글에 잘 나타나 있다.

“사실 내가 캠프를 간다고 해서, 내가 농성을 며칠 더한다고 해서 무언가 엄청나게 달라질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 다만 만일 계급이란 게 존재한다면, 언제나 이렇게 비대칭인 우리 사이의 분할을 전제로 한 것일 테기에 그것을 뛰어넘는 동일성과 매개를 통한 교통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든 어디서든 그것을 찾을 수 있다면 찾아보자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농성장에서, 그러한 분할들이 완전하게 사라지지는 않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호칭의 문제랄까요. (…) 어머님, 아버님 안녕하십니까, 하고. /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가족 이데올로기는 여기에도 남아서, 내밀하게 느껴졌습니다.”

밤 열한시를 넘기며 어느새 ‘외부세력’이란 이름으로 똘똘 묶인 우린 밤새 본관 로비에 둘러 앉아 이야기했다. 이 투쟁이 왜 정당하며, 어떻게 더 많은 이들이 결합할 수 있는지, 어떤 마음가짐이어야 하는지. 어쩜 그리 말들을 잘하는지 나는 완전히 기가 죽었다. 이야기는 멀리 전라도 광주에서 온 교사 두 분의 자기소개를 시작으로 각자의 소개로 이어졌다. 편의점 알바, 주차 알바 온갖 알바 인생을 섭렵했다는 이의 사투리가 기억에 남는다. 아직 대학교 입학도 하지 않은 11학번도 있었고, 지방대라 송구스럽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이도 있었다. 학생회 소속의 투쟁가들도 있었고, 학회 모임으로 그룹 지어 찾아온 이들도 있었다. 예대생이라 소개한 어떤 이는 말하다 말고, 자기 생각을 즉흥곡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물론 삑사리와 함께 금방 내 빼 야유를 들었다. 그래도 시종 비실비실 웃는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건, 생전 처음 만난 이들에게 자신을 정성으로 소개하던 이 시간이었다. 내가 왜 이 싸움에 참여하는지를 말하려다보니 저마다 어떤 이름과 관심사로 살아왔는지를 말해야했다. 늦은 밤이라 그랬을까? 내밀하고 내밀한 이야기들을 꺼내놓았다. 중학 교사, 대학 강사, 홍대 졸업생, 장돌뱅이 알바생, 연구자, 직업 운동조직가, 학교를 떠나지 않는 운동권 ‘삼촌’,… 소속으로 치자면 대학생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소개를 들을수록 그 정체성으로 다 묶을 수 없는 이들이 거기 있었다. 다음날 일찍 투쟁장을 청소하고 나니, 식사조에서 김치국에 밥을 말아 배급을 시작하고 있었다. 어제 저녁 고깃국 식단에 비육식인 나와 은선의 숟가락질을 보며 안타까워하시던 미화 조합원 분의 마음 씀이라 멋대로 생각했다. 고마웠다. 교문 앞 아침 선전을 마치고 우린 헤어졌다.

불행히도 홍대 미화ㆍ경비 노조의 복직 투쟁은 한 달을 넘겨 지금도 진행 중이다. 매일 아침과 저녁 홍대 정문 앞에는 복직을 투쟁하는 조합원들이 있고, 누군가의 어머니, 아버지가 있고, 계단을 청소하던 ‘청소 아주머니’가 있고, 건물 입구를 잠가버리던 ‘경비 아저씨’가 있다. 계약이 해지 된 노동자가 있고, 온갖 ‘외부 세력’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을 비켜가며, 강의 시간에 늦지 않으려는 진짜 ‘대학생’들이 북새통을 이룬다. 이들 중 어느 누구를 볼 것인지는 현장에 간 당신의 눈에 맡기겠다.

<유령체험단과 조합원 간담회>(1월 20일, 15:00~17:50)

출근시간 아침 여덟 시. 착 가라앉은 조용한 교정, ‘대기실’이라 불리는 휴게실에서 유니폼을 갈아입어. 작업을 시작하며 가장 먼저 향하는 곳은 화장실. 일찌감치 물청소를 마쳐야 학생들이 오기 전 바닥 물기도 마르지. 비오는 날의 화장실 타일 바닥을 기억하는지? 아무리 닦아내봤자 청소한 티도 안 나. 그러면 곧바로 근무 태만. 우리를 관리감독하는 조장에게 찍히기 십상이고. 학생들, 바닥에 물기 흘리지 마요. 신발자국 남아요.

다음으로 향하는 곳은 각층 강의실. 책상 위, 책상 서랍 안, 바닥, 창틀에 멀뚱하니 놓여있는 쓰레기를 걷기 시작하지. 여기서도 물기 있는 것들이 문제예요. 패트병 속 음료는 모아서 따로 버리고, 과자 봉지, 휴지조각 등등을 싹싹 긁어 쓰레기 봉지에 밀어 넣어. 의자 밑에 떨어진 장갑 한 짝은 책상 앞 눈에 잘 띄는 곳에 남겨 두고. 다음은 복도 청소. 대걸레는 딴딴한 바닥에 팡팡 내리 쳐야 돼. 가끔 학생들 대걸레 빤다고 애쓰는 걸 보면 귀여워. 그래갖고 때가 빠지나 몰라. 머리 린스 헹굼질도 아니고. 그럼 내가 얼른 가서 손에 고무장갑 끼고 박박 문질러주지. 학생들 힘이 그리 약해갖고 쓰나?

이 모든 작업들, 그리 어려운 건 아냐. 다만 늘상 시간이 모자란 게 흠이라면 흠. 어쩔 땐 여름에도 등이 다 젖도록 뛰어다니게 돼. 그래야 제 시간에 마치니까. 아침 일곱 시에도 나오지, 자발적으로다가. 그래야 건물 2~3층을 혼자 다 청소할 수 있거든. 같이 일하는 사람은 없냐고? 무슨 말을, 혼자 다 해. 외롭지 않냐고? 하, 그럴 새가 어디 있나, 학생들 등교하기 전에 청소 해놔야지. 그러고 보면 대학 건물 넓은 건 좋은데, 청소할 땐 아주 미쳐.

일하다 보면 점심때가 와요. 우리한테 지급된 식대가 한 달 9000원이라는 기사는 보았을 거야. 그 돈으로 학생 식당 가냐고 묻지 마요. 창고겸 ‘대기실’이라 불리는 휴게실에 모여. (쉬는 데가 아니라는 거지, 언제든 튀어나갈 준비하며 모여 있으란 거지.) 아무튼 동료들과 모여서 그날그날 전기솥에 밥을 안쳐 먹지. 그래서 열한시 쯤 우리는 돌아가면서 그 근처 지나는 사람이 미리 취사 버튼을 누르게 규칙을 만들기도 했어. 우습지? 그나마 예전에는 학교 안에서 나오는 폐지들 모아다 쌀도 사고 반찬도 해먹었어. 헌데 몇 푼 한다고 그걸 학교에서 금지했어. 하루 300원 식대를 주기 시작한 거지. 그래도 쌀은 줘서 점심시간이면 ‘대기실’에 네다섯 명 쯤 모여 밥을 해먹어. 이때 돼서야 다른 층 일하는 사람 얼굴 한 번 보는 거야. 각자 조금씩 싸온 반찬을 나눠먹으면서.

‘대기실’ 얘기가 나왔으니 좀 더 해볼까?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밑 삼각형 창고, 그곳 맞아. 가끔 문 열려 있을 때 봤을 거야. 열어놓으면 김치 냄새 난다고 다들 싫어해. 교수님도 슬쩍슬쩍 보고. 그러니 여름에 푹푹 찔 때 말고는 답답해도 닫아놔. 내가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줄까? ‘대기실’에 곰팡이 좀 핀 거 정도는 양반이야. 저어기 운동장 쪽 ‘대기실’은 여름이면 물이 차. 그럼 열심히 퍼 올려야 해. 쥐도 있어요. 그래도 하루 종일 왔다갔다 서서 움직이다 보니 ‘대기실’에라도 앉을 수 있어 다행이야. ‘대기실’이 없는 것보단 낫다는 얘기야. 그래도 좀 깨끗한 데서 밥도 먹고 좀 쉬고 싶기도 해.

남부끄럽지만 이런 얘기 늘어놓으면, 아니, 그냥 청소 일한다 그러기만 해도 사람들 하나 같이 고된 일로 봐. 안쓰러워한단 얘기야. 다른 일 찾아보지 그 힘든 일을 왜 하냐고. 한 달 죽어라 일해도 75만 원짜리, 짤린 김에 돈 좀 더 주는 데나, 편한 직장 알아보라고. 속도 없는 얘기지. 어렵기로 치자면 슈퍼 계산원이나 음식점이 고돼. 난 그런 거 못해. 나는 이 일을 계속할 생각이야. 내가 선택한 직업이니까. 슈퍼 계산원 일, 식당 일 하면 확실히 보수는 더 받을지 몰라. 하지만 하루 종일 사람과 부딪혀야 해요. 사장 눈치 보랴 손님 눈치 보랴. 계산원 일도 만만찮아. 한 곳에 붙박혀 서비스도 잘 해야 하고, 교육도 무진장 받는다더라. 무엇보다 그런 일들은 언제 짤릴지 알 수가 없잖아. 우리같이 나이든 사람들은 오래 있을 데가 필요해. 청소 일은 내가 늙어서 못할 때까지 할 수 있거든. 여기 일하는 사람 저 엄마, 저 엄마 다 8년, 10년, 저 엄마는 13년. 대부분이 홍익대에서 몇 년 동안 주욱 일해 온 사람들이야. 이 일이 다른 건 다 빠져도 오래 일할 수 있어 좋아. 일할 때 마주치는 사람도 자식뻘, 손주뻘되는 학생들이니 맘이 편하고. 우리들 홍대로 보낸 인력회사(파견업체)가 ‘향우’, ‘인광’인데, 거기서 이력서 낼 때 이런 거 다 고려해 온 거야. 또 물어볼 거 있으면 물어봐. 얘기해줄게. 여기 초코파이도 있고 귤도 있으니까 목 멕히지 않게 먹으면서 궁금한 거 물어봐 어여.

퇴근하고 뭐하냐고? 집에 가야지. 여섯 시에 끝나면 얼른 버스 타고 돌아가야지. 기운 좀 남았으면 장에 들르고. 살림을 해야 하니까. 장 본 걸로 가족들 저녁 차려주고 청소, 빨래 이것저것 다 하다보면 열두시가 될 때도 있어. 그럼 얼른 자야 해. 다음날 또 출근해야하니까. 가장 마음 아픈 건, 일하는 동안 늘 내가 아침 일찍이라 자식들 아침밥 한번 제대로 못 챙겨줬다는 거야. 여기 아줌마들 다 공감하네. 그래도 난 최근 아들이 결혼해 짐짝 같은 마음이 쑥 내려갔어. 지 혼자 다 밥해먹으면서 컸지만, 이젠 부인이 생겼으니까. 잘 해 먹겠지.

자식들은 우리 이러고 투쟁하는 거 어떻게 보냐고? 졸업반이라 투쟁 막 이런 거 하면 자기 취직에 지장 있다고 돌아오라고, 돌아오라고 해. 응원하는 자식들도 있고. 그래도 우리가 그나마 이렇게라도 벌어왔으니까 맛있는 반찬 더 해 먹고, 학비도 내고 가정 잘 건사해서 살아온 거 아냐? 그리고 나이 들어 돈 없으면 대접을 못 받어. 누가 찾아와도 뭐 하나 챙겨줘야 맘이 편하지. 내가 일할 수 있어 내 주머니에 돈 있고, 그걸로 손주 손녀 용돈이라도 쥐어주면 보람 있지. 사는 느낌이지. 홍대에서 돈 되는 일은 안하고 투쟁한다 그러니까 당장 뭐 먹고 살지 사람들이 걱정들 해. 그 염려 마시라. 그간 없는 월급에 각종 보험으로 돈이 빠져나갔는데, 그 중 고용보험에서 돈을 준다더라. 실업수당인가 뭔가, 다행이지. 게다가 평소 임금보다 더 준다던데? 80만 원 정도. 나라에서 주는 거니까 최저임금이다 뭐다 해서 합법적으로 쳐서, 평소 우리 임금보다 더 주게 생긴 거지. 이거 좋아해야 해, 말아야 해?

노조란 것도, 만든다 했을 때 기분이 좀 이상했지. 빨간 조끼 입고 막 “투쟁!”이러는 거 생전 안하던 짓이었으니 좀 (낯)설었겠어. 그래도 만들자 그랬을 때 우린 대부분 와아 하고 다 모였어. 경비 아저씨들은 처음엔 미적미적 했지만, 나중에 합세했고. 홍대 미화ㆍ경비 노조 만들고, 연대 (미화노조)아줌마 오고, 이대(미화노조)에서 오고. 해서 이야기 하다 보니 나 받던 월급이며, 애경사 때 7일 말고 3일밖에 못 쉬던 게 억울했어. 그렇게 만나다 보니까 그간 밥먹을 때만 잠깐 잠깐 보던 아줌마들 이름도 제대로 알게 되고. 재미도 있고. 노래자랑 해서 분회장도 뽑고. (깔깔깔)

여기 투쟁에 도와주러 온 학생들, 애써서 번 돈 가정이며 자식들 다 퍼주지 말라고 말들 하잖아? 이제 우리를 위해 쓰라는 거지. 그래 마음은 고맙지만, 걱정 마. 엄마들 돈 없다 그러면서 궁하면 주머니서 돈 나오지? 여기 아줌마들 또 다 웃네. 맞아, 우리도 우리를 위해 쓴다 이거야. 주말이면 산에도 가고, 계모임이다 교회 모임이다, 결혼식이다 해서 사람들도 만나. 그럼 내가 번 돈으로 맛있는 음식점 들어가 먹고 싶은 것 같이 먹기도 하고, 머리도 하고, 삔도 사고… 그러니까 학교한테 우리 그냥 일하게 해달라는 거야. 여지껏 몇 십 년 동안 쭈욱 일해 왔잖아. 학교 깨끗하게 해서 학생들 공부도 열심히 할 수 있었고. 대체인력으로 돈 팍팍 쓸 돈 남아도는 학교가, 우리 도로 일하게 해달라는 게 그게 그리 어려워? 답답하지.

이런.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학생들 저녁 먹어야지. 오늘은 정문 앞 선전전 안 한다더라. 어서 줄 서서 국이랑 먹어. 응? 또 하고 싶은 말 없냐구? 그래, 학생들, 깨끗한 데서 공부해야지. 좋잖아? 이렇게 도와주러 와준 거 정말 고마워. 어떻게 감사를 해야 할지. 또 하고 싶은 말? 어휴, 그래, 학생들 부탁인데, 짬뽕 국물은 변기에 버려줘.

참여한 조합원: 이옥자(8년), 임정복(13년), 박경순(5년), 한정금(8개월), 두운순(10년), 이예진(근속년수 ??년)

응답 5개

  1. 이경말하길

    잘 읽었습니다 ^^
    설날 전 주였던가, 흑석동 친구들과 홍대 집회장에 들렀어요.
    그때 고민하면서 라면이랑 커피믹스 등등을 샀는데,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선물 꾸러미들이
    저희가 사온 조그마한 봉지를 너무 작게 만들어서 웃었던 기억이 나네요.
    다행히 마무리가 되었지만, 아직도 개선해야 될 부분은 많은 것 같아요. 식사비 같은 부분 등등..

  2. 디온말하길

    노래자랑 해서 분회장 뽑으셨군요.. 호호. 다들 아시겠지만, 저도 오늘 협상 타결소식 들었습니다. 전원고용승계에 임금인상, 노조인정 등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넘 기쁩니다.

  3. 유령백수말하길

    홍대 투쟁, 응원합니다!! 힘내세요!!

  4. 러자말하길

    아 재미있어요~ 장기화 되어서 너무 안타깝습니다.. 개학이 얼마 안남았는데 일어 더 커져서 전국 청소노동자에게 노동조합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5. […] This post was mentioned on Twitter by 서수보, Soobo Seo, 진보 뉴스. 진보 뉴스 said: [수유너머] ‘연대의 쾌락’ – 홍대투쟁을 응원해줘: 나는 학생이 아니다. 프리랜서다. 그렇다, 백수다. 백수라서 좋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좋은 건 … http://bit.ly/eErNgc http://suyunomo.jinbo.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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