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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의 환상과 성장신화의 해체로

- 니시 료타(西亮太) 히토츠바시 대학원 언어사회연구과 박사후기과정

 아메리카와 소련은 제 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제각기 핵개발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은폐해 왔다. 이 개발은“병기”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이와 동시에 “핵을 통한 평화”라는 캠페인을 진행해 왔다. 이러한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많은 연구에 의해서 밝혀지고 있다. 특히 전쟁 시 핵무기에 의해 피폭을 당했던 유일한 국가인 일본에 이토록 원자력 발전소가 난립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캠페인의 성공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캠페인에서 실제로 진행되었던 것은 “병기”를 “원자력 발전소”로 전환함으로써, “공격적인 사용”을 배제한다는 미명 하에 원자력을 “크린clean한 성장을 가져다 주는 것”으로 바꿔 치기 했던 담론상의 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원자력 발전이 지닌 물질 그 자체의 위험성을, 원자력 발전을 병기로 사용하는 문제로 바꿔 치기하고, 다시금 병기로 사용하는 것을 그만둠으로써, “원자력”의 위험성을 퇴치할 수 있는 것으로 위치 지었던 것이다. 이 과정을 역으로 추적해 보면, “원자력”의 “물질matter=문제 자체”를 사상(捨象)시키고 그 자리에 “사용가치use-values”로서의 의미를 부여하는 체계가 작동하고 있었음이 명확해진다. 냉전체제 하에서 구가되었던 “이중적 외교태도(double-dealing) ”1)는 시종일관 사용가치로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이루어져 왔던 것이다. 이 점을 생각해 보면, 원자력 발전이 지닌 물질 그 차제의 위험성을 그 교묘한 말로 그럴듯하게 속여왔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지진에 동반해 일어난 원자력 발전 사고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던 것은, 바로 이 “물질matter・문제”로서의 원자력이었다.
 이때 “물질=문제 자체”란 방사성 물질(radioactive material)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원자 “력power”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점은 매우 중요하다. “힘”이라는 것은 여태까지 뉴턴적 물리학에 의해 정의되었던 과학기술을 그 외부로 유도하는 힘이었다. 또한 환경파괴의 폐해를 동반하지 않는 “크린clean 에너지” 프론티어를 통해서 경제를 이끌어가는 힘 그 자체였다. 물론 실제로 발전원리 그 자체는 종래의 화력발전과 마찬가지로 “비등형 에너지를 추출하는 구조”에서 크게 진보하지 않았다. 정말이지 크린clean하지 않다는 것은 명백하다. 따라서 여기서 분석해야 할 것은 어째서 이 외부=프론티어로 유도하는 “힘” 그 자체에 계속해서 지기만 해 왔는가 하는 것이리라.
“힘”이 침체상태로부터 돌파구를 만들고 과학 혹은 경제구조 상의 플론티어적 상상을 창출하기 위해서 요청된 연금술이었다면, 여기에 표현되어 있는 것은 “성장”에 대한 동경이 아닐까?
 내 전공인 문학・문학비평은 “성장”이 경제•국가•개인의 존재 형식와 함께 변화한 것이며 소설이라는 형식 속에서 연면(連綿)・연속(連続)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영미권 소설에서는 “교양소설(Bildungsroman)이라고 불리는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1829)』로 시작하여,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1847)』에 이르는 성장이야기 장르가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대표하는 포스트콜로니얼 연구・비평의 맥락에서 보면, 이러한 개인의 성장 이야기 뒷면에는 스스로를 보이지 않게(不可視化) 하면서도 경제성장을 희구하는(식민지 획득과 그 보존) 제국이 있다고 지적할 수 있다. 완전하지는 않다고는 해도 말이다. 사이드의 『문화와 제국주의Culture and Imperialism(1993)』는 그 적절한 예일 것이다.

 앞서 논했던 것처럼 이번 원전 사고에서는 “원자력” 자체가 지닌 위험성이 드러났으며, 그것은 “성장”이라는 이름 하에 은폐되어 있었던 폭력성과 위험성이 폭로된 것이었다. 보다 기묘한 것은, 원전 사고를 불러일으킨 이번의 “재난(지진과 쓰나미)”만 보더라도, 그것이 사실상 (원전사고와 마찬가지로) “성장”이라는 이름 하에 만들어져 온 일본의 구조적 폭력을 폭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은 내 자신에 대한 질책과 반성을 포함하여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나는 전력의 최대 소비지인 도쿄에 산다. 그럼에도 전력의 생산지=공급지가 “토호쿠(東北)”라는 것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이 문제는 전력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근현대사에서 도호쿠를 비롯한 “지방”에 음식이나 노동력의 생산자 혹은 제공자로서의 위치를 부여했던 것은, 틀림없이 일본의 중심이라고 자부하는 수도권・도쿄였다. 정확히 말해, “성장”을 지상명제로 하는 일본이 구조적으로 필요로 했던 것이 “생산자”이자 착취의 대상으로서의 “토호쿠東北=지방田舎”이었다.(도시와 지방의 구조적 관계에 대해서는R. Williams, The Country and The City(1973)가 유용한 참고가 된다.)
이 구조적 폭력에서 무엇보다 다루기 어려운 점은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에 있는 항상적인 폭력행위를 잊어 버린다는 데 있다. 앞서도 말했듯이 단적으로 나는 이번에 지진이 일어날 때까지, 전력의 생산지이며 그 리스크를 한 몸에 짊어지고 있던 곳이 “도호쿠”임을 잊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전력뿐만 아니라 많은 업종에서 정체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나서야, 이러한 구조를 겨우 생각해내거나 느끼게 되었던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도쿄”에 살면서 “도호쿠”에서 생산된 전력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이러한 구조에 무의식적으로 의존함으로써야 비로소 가능해지는 행위, 이른바 “정치적 선택행위”였다는 것을. 이 구조적 폭력구조 위에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던 것이 “일상”이었다. 이러한 “일상” 자체가 거의 지각이 불가능한 형태로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던 “정치적 선택”이었다.

 이번의 지진과 원전 사고라는 위기적 상황은 무관심하게 의존하고 있었던 구조적 폭력을 명백히 드러냈다. 그것은 “성장”에 대한 동경에 의해 요구되어, ”성장” 의해 감추어져 왔다. 좀더 생각해 보면, 현재의 위기상황은 지금까지의 “일상” 그 자체가 낳은 폭력이었음이 명백해진 것이다. 평화로운 일상이 갑자기 예상할 수 없었던 위기에 빠진 것이 아니다. 지진과 쓰나미에 의한 물적 인적 피해는 2개월 이상 경과한 지금에도 전부 파악할 수 없으며, 필시 잃은 것 전부를 최종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서의 회복・부흥이 된다면, 사고정지에 빠질 정도로 엄청난 양의 문제가 이미 산적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까지의 폭력적인 착취 구조 속에서 편안하게 살아왔던 나에게는, 그리고 이 구조를 보고 만 나에게는, 그 구조를 비판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나타날지 모르는 미래를 구상할 의무가 있다. 위기적 순간critical moment을 비평적 순간critical moment으로 전환하는 것. 그것이 나의 책임이다.

1) “이중적 외교태도”라고 번역한 말의 원문은 “二枚舌”로, 직역하지면 “두개의 혀”라는 뜻으로 “한입으로 두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글 전체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단어로 “이중적 외교태도”라고 번역한다. 필자의 설명을 붙인다.
“이 단어는 일본의 역사교육에서는 유명한 단어로 “한입으로 두말하는 외교”라는 말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것은 구체적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 종반에 영국이 행했던 팔레스타인에 대한 정책을 지시하는 말이다. 한편으로는 아랍측에게 팔레스타인 해방을 약속하면서(후세인과 맥마흔 서간), 다른 한편으로는 유대인쪽에 건국의 땅으로서 팔레스타인을 제공할 것을 약속(밸푸어 선언)했던, 영국의 상반되고 모순된 외교정책을 지칭해서 “한입으로 두말하는 외교”라고 불렀다. 한편, “한입으로 두말하는 외교”는 “double-dealing diplomacy”의 번역어로 여겨지고 있다. 이 글에서는 “핵”을 둘러싸고 공적으로는 “평화이용”을 선언하면서, 그 뒷편에서는 비밀리에 “ 핵병기에 의한 군비확장”을 하고 있음을 “한입으로 두말한다”라고 표현했다.”

응답 1개

  1. 낙타말하길

    글 청탁 후일담: ^^ 니시 씨는 후쿠시마에서 음악연주회를 했던 자신의 경험을 써 줄 예정이었요. 공부도 하지만 음악도 하시거든요. 그런데 자신의 경험을 쓰기 보다는 진지하게 그 문제를 생각해 보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곳에 사시는 분들이 지닌 무게감 때문이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 글이 단단해서 어려운 부분도 있었는데, 덕분에 어떤 긴장감을 느끼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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