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3.11−Passages”

- 야마우치 아케미(히토츠바시 대학원)

<균열>

 3월 11일. 아직은 그 날의 사건을 말로 하기 어렵다. 나는 둘도 없는 친구 몇 명을 잃었다. 여전히 행방불명인 친척들… 그리운 고향은 쓰나미에 삼켜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거대한 쓰나미가 지나간 뒤, 그곳에 펼쳐져 있었던 것은 산더미처럼 쌓인 잔해들과 상처를 입은 사람들, 그리고 “일본”이라는 나라가 은폐해 왔던 무참한 역사, 그것에 드러난 균열이었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도쿄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던 나는 고향의 참사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쓰나미가 있던 다음날, 텔레비전에 방영된 하늘에서 찍은 고향 거리는, 바다에 삼켜져 늪지대가 되어 있었다. 눈을 의심했다. 그곳에 있어야 할 동사무소도, 병원도, 우체국도, 은행도, 도서관도, 경찰서도, 소방서도, 대략 모든 것이 잔해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도쿄로부터 내 고향으로 통하는 길은 원자력 발전소 폭발로 완전히 두절되었다.
 전화로 가족과 연락이 닿았던 것은 1주일 후였다. 내 가족은 모두 무사했다. 그렇다곤 해도 고향의 참상은 너무나 심각했다. 사망자 수가 너무 많아서 내 가족이 살아남았다는 것을 소리내서 기뻐할 상황이 아니었다.
지진이 일어난 뒤 2주가 지나 집에 돌아가자, 자가용은 영구차가 되어 있었다. 일본에서는 죽은 자를 화장한 뒤 묻지만, 죽은 자의 수가 너무나 많아서 인근 거리나 현 밖의 화장터까지 희생자를 운반해야만 했다. 화장터로부터 연기가 그치지 않자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계속 태웠다가는 화장터 가마가 망가져 버리겠어”

<피를 흘리는 바다>

 고향에 돌아가 있던 중, 불가사의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 거대한 쓰나미가 오기 2시간 전, 산리쿠(三陸) 바다에 잠수하고 있던 다이버가 있었다. 양식 시렁을 수리하기 위해서 바다 밑에 들어가 일을 하고 있었다. 바다 속에서 (문득) 깨닫자, 순식간에 바닷물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늘 잔뜩 헤엄치고 있었던 물고기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이것은 뭔가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임에 틀림없어” 바다에 이변이 일어날 것이라고 느낀 다이버는 일을 중단하고 육지로 올라왔다. 거대한 쓰나미가 산리쿠 해안을 덮쳤던 것은, 그 직후였다. 그날 쓰나미에 습격당해 간신히 목숨을 건진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피를 흘리는 바다” 이야기를 했다. 자신들의 흰색 와이셔츠가 빨갛게 물들어 있는 것을 깨달은 그들은, 자신들이 상처를 입은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파도를 뒤집어 쓰는 바람에 젖은 와이셔츠를 손으로 잡자, 이상하게도 붉은 색 (물)이 떨어졌다고 한다.

<최후의 장소>

 나는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그날 내 고향에서 대지가 흔들리고, 바다가 피를 흘리고,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는 것. 어쩐지 미신처럼 들리지 않는가?
이곳은 바다가 피를 흘린 (최후의 장소)라고 생각한다. 근대로부터 멀리 동떨어진 장소. 사람들은 “육지의 외딴 섬”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쓰나미가 덮친 산리쿠 해안 지역은 긴 역사 동안 심각한 자연재해에 반복해서 직면해 왔다. 우리들은 언제부터인가 자연을 완전히 정복했다는 착각을 해왔음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산리쿠에 사는 사람들에게 자연의 위협은 현재형이었다. 따라서 이곳은 근대가 버리고 간 <최후의 장소>일 것이다.
대지진이 일어나고 거대한 쓰나미가 마을거리를 삼켜버렸다. 그리고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했다. 현기증이 날 것 같은 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방사능 오염 속에서, 지금부터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는 정신을 잃을 것 같은 절망의 시작 속에서, 모두가 너무나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시작의 장소>

3.11은 지금부터 일어날 거대한 사건의 극히 작은 실마리일 뿐일지도 모른다. 자연은 우리들에게 무언가 “눈치채”게 해주려는 것은 아닐까? 미리 말해두지만 나에게는 영감(霊感)같은 건 없고, 예언도 할 줄 모른다. 그렇지만 바다에 흘려 보내지는 오염된 물, 방사능이 쏟아지는 대지… 이 정도까지의 불행을 그대로 둔 채, 인류는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우리들은 다시는 미래에 대한 책임을 방기해서는 안 된다. 근대문명 투성이인 우리들은 무언가 정말 중요한 것을 방치해 버렸던 것이 아닐까? 우리들은 자연을 정복할 수 있는 덕도 없으며 원자력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지력도 없다.
친구가 현재 방사능으로 오염된 후쿠시마에서 마치 절규하듯이 보내온 메일을 여기에 적고 싶다.
“부흥 따위는 불가능합니다. 우리들은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게 아니라, 움싹(蘖)이 되어서 ‘재생’해야만 합니다. 부흥을 모토로 삼아 원래의 바보 같은 세계로 되돌아가는 것은, 그 어떤 의미도 지닐 수 없습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