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친애하는 〇〇〇 님

- 혼다 히로코(本多裕子)

정성스런 메일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답장을 드립니다.

계속 걱정을 끼치고 있군요.

이쪽 상황을 속히 메일로 알려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매일매일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언제나 따뜻한 우정을 전하고 있는데, 사려 깊지 못한 행위를 이해해 주세요.

후쿠시마 원전은 이웃나라를 전혀 배려하지 않고 일을 저질렀습니다.

귀국으로부터, 중국으로부터, 러시아로부터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아놓고도, 무단으로 오염수를 바다로 흘리거나 시시각각 측정한 상황을 전하지 않거나, 몹쓸 짓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사과한다는 정도를 벗어나 있는 사태에 가슴이 아프도록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귀국에서 “일 년 후에는 반경 50km 내에서 사람이 살 수 없게 된다”라는 보도에 다시 마음이 괴로워집니다.

실재로 그런지 어떤지는 저도 모릅니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일본의 매스컴은 이미 유해무익하겠죠.

어디가 끝인지, 앞 일이 무엇인지를 전혀 알 수 없는, 그저 하늘에 기도하며 현장에서는 분투하는 것이 지금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진도 그치지 않으니, 해외에서 사람들이 오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제가 사는 곳에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까지는 200km가 떨어져 있습니다.

그 사이에 토카이 무라 원전이 있습니다.

이제 와서야 이 원전이 1960년 안보투쟁 전후의 무렵에 건설되기 시작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참치 어선단이 비키니 환초에서 미국의 수폭 실험에서 나온 방사능을 뒤집어쓰고 나서, 일본에서는 핵실험을 반대하는 기운이 고조되었습니다. 1954년 토호쿠의 태평양 연안은 1960년 5월 칠레 지진의 해일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런 상황이었는데 토카이무라, 후쿠시마에서 건설되는 원자로에 반대하는 소리는 어째서 커지지 않았는지, 안보조약체결에 반대하는 목소리와 합쳐지지 않았는지, 아버지께 물어보고 싶어졌습니다.

체르노빌을 떠올립니다.

당시 제 딸은 세 살이었습니다.

일본에서도 큰 소란이 났습니다.

밖에서 놀지 마라! 모래에 손대지 마라! 비에 젖지 마라!

좋은 계절인데도 실내에서 가만히 보낸 일을 떠올립니다.

러시아(소련)를 향한 비난이 만연했습니다.

거리가 저만큼 떨어졌는데도 일본은 패닉이었습니다.

지금 귀국에서의 걱정은 거기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러시아의 뉴스에서는 검지기를 가리고, 중국과 타이완에서는 물자 입국을 거부하고, 게다가 유럽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25년 전 우리가 한 일과 같습니다.

히로시마에서, 나가사키에서 “원폭은 허락하지 않는다”고 계속 빌어온 것인지, 적어도 그렇게 빌어온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행동을 해왔는지, 그것을 생각하면 규탄할 수도 피난할 수도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웅크려 앉을 뿐입니다.

무력감을 곱씹을 뿐입니다.

바로 자기 자리에서 구원의 손을 뻗쳐 주신 따뜻한 이웃 분들에게 무력함을 사죄할 뿐입니다.

일찍이 있었던 역사에서 이제야말로 응할 때인데.

미안합니다.

이러한 일본에 이렇게 아끼지 않고 힘을 써주는 당신의 강한 의지와 진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2011년 5월 4일 혼다 히로코(本多裕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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