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노르웨이와 서양 그리고 담론과 기억의 정치학

- Beilang(동아시아사상사연구자, 뉴욕이타카)

1.

“평화의 나라”로 인식되고 “지상낙원”에 근접한 나라로 여겨지던 북유럽의 노르웨이에서 한 백인 기독교도가 일으킨 참혹한 대량학살은 많은 이들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이 사건은 유럽에서 득세하고 있는 극우파의 문제를 일깨워 주었고, “테러리즘”에 대한 여러 가지 분석을 통해 지난 십년간 국제정치의 중심의제로 등장한 “테러리즘”을 좀 더 포괄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해 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2차 대전 후 최대의 참사라 일컬어지는 비극에 대한 노르웨이 사람들의 차분하고도 적절한 대응이 미국의 9-11에 대한 대응과 비교되며 새삼 미국과 유럽의 차이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사건이 분석되고 유통되는 방식은 왠지 기존의 공고한 지식정보의 생산과 순환회로를 돌고 있는 듯이 보인다. 먼저 학살에 다양한 분석의 이면에는 ‘미국 대 유럽’이라는 구도가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9-11이후 부쉬 행정부의 막가파식 대응에 미국의 진보세력이 유럽을 끌어들려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려 했고 여기에 유럽의 일부 진보세력과 국가가 여기에 호응함으로써 그런 구도는 한층 강화되었다.

개인으로는 이태리 사상가 아감벤이 2004년 미국의 새로운 입국 외국인에 대한 지문채취에 반대해 뉴욕대학에서의 강의를 취소하고 미국행을 포기하여 주목을 끌었고 (그의 르몽드지 기고 “No to Bio-Political Tatooing” 참조) 국가로는 프랑스가 미국의 대 이라크 정책을 명시적으로 비판함으로써 가장 선명하게 차별성을 드러내며 내며 유럽 진보세력의 대변자로 등장했었다. 그런데 프랑스가 누구에게 제국주의 운운하는 비판을 할 수 있는 처지인가? 자신들의 “찬란했던” 과거 식민지 지배의 역사는 차치하더라고 1960년대까지 이어진 식민지 알제리 문제는 파농과 사르트르, 그리고 푸코, 부르디외, 데리다까지 프랑스 지식인들을 짓누른 악몽 아니었던가.

“미국 예외주의”를 부르짖으며 홀로 갈 길을 가는 세계의 부랑아 미국과 유구한 역사와 오랜 공존의 경험을 공유한 유럽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인식은 어느 정도 근거가 있다. 그렇지만

국가나 국가에 기반한 지역을 단위로 한 공시적 인식은 종종 계량화된 한시적 결과만을 잠정적으로 포착할 뿐, 그런 결과를 산출해내는 움직이는 힘들을 놓치곤 한다. 그래서 국가/지역별 차이는 종종 ‘문화’라는 모호한 이름을 빈 분석 아닌 분석으로 끝나기 일쑤이며, 이런 동어반복적 합리화는 다시 한 나라/지역을 본질적으로 규정하는 분석틀로 작동한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비교’라는 연구방법이 갖는 맹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아무리 정교하다 해도 비교연구란 결국 비교 대상 사이의 ‘차이’와 ‘유사성’을 적절히 분배하고 이에 합당한 추론을 도출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는 도식성이 두드러진 접근이다. 따라서 어떤 비교 대상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또 어떻게 그 대상을 분석하느냐에 따라 결론은 달라질 수밖에 없고 그만큼 자의적인 해석에 취약하다. 노르웨이발 학살 소식의 충격은 ‘미국 대 유럽’의 비교 방정식에서 편리하게 ‘보수와 진보’의 차이를 읽어내어 정식화한 틀이 무너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학살에 대한 노르웨이사람들의 반응이 미국의 9-11에 대한 막가파식 반응과 대비되며 많이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역시 노르웨이/유럽은 미국과 달라”하는 반응을 이끌어 냈지만 만약 범인이 아랍인이었어도 똑같은 반응이 나왔을까? 도리어 이번 학살의 적절한 비교대상은 9-11이 아니라 1995년에 일어난 백인 기독교도인 티모시 맥베이(Timothy McVeigh)에 의한 오클라호마시에 연방정부 청사 폭파사건일 것이다. 9-11 이전까지 미국에서 가장 피해가 큰 테러(167명 사망, 850명 부상)였고 엄청난 충격을 준 사건이었지만 별다른 잡음 없이 신속하게 범인을 체포하여 통상적 절차대로 재판을 거쳐 사형을 집행했고 이후로 FBI가 조용히 반정부단체들에 대해 감시를 강화한 것 외에 이 사건이 미국에 별다른 부정적 여파를 미친 것은 없다. ‘(보수) 미국 대 (진보) 유럽’의 구도가 어쩌면 이런 식의 비교를 가로막고 있는 지도 모른다.  

2.

이제 우리는 유럽 곳곳에서의 극우세력의 득세와 노르웨이 학살이 보여주듯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할 것 없이 ‘유럽’ 일반 나아가 ‘서구’ 전체가 반이슬람 인종차별주의가 무시할 수 없는 세를 얻고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 명백한 사실을 잘 볼 수 없었다는 것은 단순히 현재에 대한 착시만이 아니라 역사에 대한 망각이기도 하다. 언제부터 유럽이, 서양이 인종차별이 없는 지역이 되었나? 역사 속에서 불과 얼마 전까지 돌아가며 전세계를 대상으로 땅따먹기하며 원주민들을 처음엔 노예로 이후엔 노예처럼 부리며 인종주의를 발명하여 자신들의 존재의 기반이자 철학으로 삼았던 이들이 바로 서구 아니던가? 그 기나긴 차별과 억압 그리고 증오와 폭력의 역사가 언제 봄눈 녹듯 다 사라져 버렸단 말인가?

독일 극우 국민민주당 (NPD Nationaldemokratische Partei Deutschlands)의 헷센 지역 선거 포스터. “ 헷센에서 우리가 깨끗이 치우겠습니다.” 무엇을 치우는 지는 검은 양이 무얼 뜻하는 지에 달렸다.

서구의 편리한 ‘망각의 정치학’에 정면도전한 이로는 파농의 선생이기도 했으며 ‘네그리튀드(Negritude)’의 원조 아이메 세자르(Aimé Césaire 1913–2008)가 있다. 그는 이미 반세기도 전에 통열한 비판 형식으로 서구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역사적 접근을 한 바 있는데 그가 1955년에 쓴 <식민주의에 대한 담론>(영역본 <Discourse on Colonialism>)은 “서양문명”을 역사의 한 단위로 상정하고 그 외부에 놓인 흑인/소수자의 시각으로 그 야만성과 허위성을 적나라하게 폭로하여 아프리카와 남미의 제3세계 해방운동과 미국의 민권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브레이빅의 학살에 대한 온갖 분석과 논평이 나왔지만 국가(노르웨이)나 지역(유럽)을 단위로 혹은 국제정치학적으로 분석하지 않고 역사적인 시각으로 접근한 경우는 아주 드물다. 그래서 ‘홀로코스트’의 연장선에서 이번 학살을 이해하는 요한 갈퉁(Johan Galtung)의 접근은 아주 의미심장하다. (본지 77호 <데모크라시나우> 참조) 이런 통시적 시각은 이번 학살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세자르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서구의 반응에 대해 다음과 같은 날카로운 분석을 남겼다:

홀로코스트를 백인들이 용서할 수 없는 것은 그 행위 자체로서도 아니고 그것이 인류에 대한 범죄이기 때문도 아니다. 단지 그것이 ‘백인’을 향해 행해진 범죄, 백인에 대한 모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까지는 오직 알제리의 아랍인들, 인도의 쿨리들, 그리고 아프리카의 흑인들에게만 배타적으로 시행되었던 절차들을 유럽에 적용했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홀로코스트는 서양이 자신들의 어두운 역사를 성찰하는 계기가 될 수 없었다.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 시를 쓴다는 것은 야만이다”라고 얘기했는데 서구의 어느 백인 지성이 비백인을 향한 유럽의 제국주의 패악질에 대해 그런 깊은 고뇌의 흔적을 남긴 적이 있는지 난 알지 못한다.

미국은 실은 히틀러가 자신들이 행한 원주민 대량 학살을 모방했음에도 그것을 바로 자신들의 그 죄악과 다른 역사적 죄악들(노예제, 반유태주의를 포함한 인종주의, 패권주의 등)을 덮는데 이용하여, 스스로를 ‘인류의 거악’을 제거한 선의 세력으로 부각시킴으로써 자신들이 세계사의 선한 주역이라는 싸구려 드라마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영국을 위시한 유럽은 미국과 협력해 중동 한 복판에 이스라엘을 세워줌으로써 반유태주의라는 자신들의 죄악을 아주 편리하게 중동의 무슬림들에게 떠넘겨 버렸다. 그렇게 세워진 이스라엘이 서구의 전폭적 지지아래 역사적 피해자라는 신분을 방패삼아 주변 이슬람 국가들을 위협하고 팔레스타인사람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가하며 서구의 경제적 지정학적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것은 다 아는 얘기다. 중동사람들은 자신들의 생존과 안녕에 대한 당연한 요구를 하는 순간 반유태주의자가 되어 버리는 기막힌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노르웨이 학살이 어떤 담론이 되어 어떻게 유통되는 지를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브레이빅의 학살도 용서받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좀 의아한 것은 미국과 유럽의 극우세력들은 공공연히 그의 행위에는 반대하지만 동기에는 공감한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그의 주적이 백인이 아니라 무슬림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동료 백인들을 죽인 것은 용서할 수 없지만 혐오스러운 아랍인을 배척하고자 했던 동기는 이해할 수 있다는 것 아닐까? 그리고 공개적으로 이런 견해를 표명하지는 못해도 이에 공감하는 백인들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미국과 유럽의 다른 나라는 물론 아마도 노르웨이에서마저도.

노르웨이 진보당의 2005년 선거 팸플릿에 등장한 사진. “범인은 외국인이었다”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외국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인식시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극우의 수법은 세계 공통이다.

3.

백인 기독교도의 악행을 중화시키려는 담론의 생산과 유통은 벌써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브레이빅의 피부색과 종교가 학살과 떼려야 뗄 수 없게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그가 유럽과 미국의 여러 극우세력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왔음이 명백히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주류 “보수”언론은 학살이 한 정신 나간 개인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라는 주장을 아주 강하게 펴고 있다. 그래야 테러리즘은 검은 피부와 이슬람으로 대표되는 “사악한” 세력의 독점물이 되며 그래야 자신들이 비틀어놓은 역사의 기억을 유지하여 흰둥이 기독교도들은 그런 사악한 세력에 맞서 싸우는 선한 세력으로 남을 수 있으니까.

이렇게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은근히 그의 학살을 중화시키려는 듯이 보이는 담론들도 많다.  브레이빅이 이슬람을 증오하지 않으며 도리어 존중했으며 그것이 그가 노르웨이의 무슬림들을 공격하지 않고 백인들을 공격한 아유라는 분석이 여기저기 떠돈다. 문제는 이슬람 자체가 아니라 그들이 유럽에 들어와 서양문명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것이고 그걸 지지하는 “문화적 맑시스트”와 “다문화주의자”들이 문제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학살자 브레이빅이 썼다는 1500쪽이 넘는 <유럽 독립 선언>은 비록 온갖 자료들을 동원해 근거를 갖추는 시늉을 하긴 하지만 이슬람에 대한 끝모를 비방과 악담으로 가득 차 있어 그 증오의 도가 광적인 ‘집착’ 내지는 ‘도착’ 증세로 여겨지고, 그의 기독교와 ‘서구 문명’에 대한 끝없는 예찬은 밑도 끝도 없이 이어진다. 그런데 어떻게 그가 이슬람을 존중하기까지 했으며 그의 기독교는 그저 문화적 상징일 뿐 실질적 영향은 없다는 얘기가 소위 진보언론에까지 사실처럼 떠돌아다닐까? 이런 담론의 생산유통자들 가운데는 그의 악행에 공감하는 극우세력은 물론 세자르가 지적한 서양역사 속의 추악한 죄악을 망각했거나 망각 속에 묻어두고 싶어 하는 많은 미국과 유럽의 보수는 물론 진보적 언론인, 지식인들도 있을 것이다.

많은 분석가들은 그가 미친놈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아니다. 그는 미친놈이다. 이슬람은 단 아무런 역사적 기여도, 아무런 장점도 없는 증오와 폭력의 이데올로기일 뿐이라는 식의 극단적 편향과 증오는 정상인의 판단이 아니다. 다문화주의는 반유럽 증오 이데올로기이며 다문화주의자들은 히틀러 같은 폭력적 전체주의자, 파시스트이며, 자신이 속한 북유럽/게르만족(Nordic/German tribes)은 그런 위험한 이데올로기와 세력에 의해 박해받아 멸종의 위기에 처한 인종이라는 주장을 정상인의 판단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슬람 제국주의(!)’에 의해 유럽은 이슬람의 식민지가 되고 있으며 유럽인들은 노예로 전락하고 있다는 소리를 해대는 놈이 미친놈 아니면 누가 미친놈인가? 14세기에 사라진 ‘템플 기사단’을 범유럽 군사조직으로 재건해 다시 십자군 전쟁을 벌이겠다는 놈이 미친 놈 아니면 누가 미친놈인가? (그는 이미 이 기사단의 핵심멤버들을 구성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기사단’ 유니폼과 기타 장식 의상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함께 옷 사이즈 차트까지 만들어 놓았다. 이베이에서 구입할 수 있다는 친절한 안내와 함께!)

그러나 동시에 그는 미친놈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기 위해 미국 유럽 할 것 없이 비틀린 그러나 그리 낯설지 않은 기존의 극우담론과 널리 알려진 극우인물들, 그리고 뒤틀린 그러나 표준화된 역사적 기억을 마구잡이로 동원하고 있다. 그의 정신 나간 기독교적 역사 상상력은 미국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담론과 몸을 뒤섞고 있으며 그의 끝모를 이슬람 혐오와 공포증은 유럽과 미국의 극우 인종차별주의 담론의 쓰레기 더미위에서 뒹굴고 있다. ‘서양’이란 이름아래 여러 세기에 걸쳐 세계적으로 행해진 어마어마한 폭력과 야만에 대한 일고의 성찰도 보이지 않는 이 대책없는 서구 자폐증에는 학계에서 백인우월주의에 기반을 둔 증오의 담론에 그럴듯한 논리와 학술적 아우라를 부여해온 헌팅튼(Samuel Huntington), 퍼거슨(Niall Ferguson), 후쿠야마(Francis Fukuyama)같은 저명한 학자들의 기여가 작지 않음을 명심해야 한다. (실제로 브레이빅은 <선언>에서 이 셋을 모두 인용하고 있다.)

그의 “미친” 짓은 이 모든 집합의 하나의 극점이며 병든 주류의 병리현상을 증후적으로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다시 말해 그의 행동은 돌발적, 예외적, 일회성 광기로 인한 것이 결코 아니라 증오와 배제를 조장하는 서양문명의 정수인 ‘흰둥이 기독교’ 담론들과 이에 상응하는 역사적 기억들, 그리고 이를 정당화하는 학계의 담론들에 의해 정당화/정상화된 ‘담론적 실천’의 연장이자 구체적 발현이다. 여기서 다시 우리는 세자르의 반세기도 넘은 서양문명 비판이 여전히 유효함을 확인한다.

자신이 만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문명은 타락한 문명이다.
자신의 가장 심각한 문제에 눈감는 문명은 병든 문명이다.
자신의 원리를 기만과 책략을 위해 동원하는 문명은 죽어가는 문명이다.

4.

우리의 특별한 관심을 끈 부분은 브레이빅이 일본과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과 대만을 한 묶음으로 해서 단일문화를 유지하는 까닭에 세계에서 가장 평화로운 나라들이라고 언급한 부분인데 과거 제국주의 주니어 파트너에 대한 예우인지 일본의 경우는 좀 다르게 취급하고 있다. ‘템플라 기사단’ 유니폼 크기 차트에는 친절하게도 유럽, 미국과 함께 일본의 차트를 싣고 있어 기사단에 일본인도 참가하라는 암시를 한다. 외국인 유입을 금지할 때 일어날 유럽과 일본의 인구감소를 걱정하며 장기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란 얘기도 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과 유럽 극우 사이에는 좀 특별한 연관이 있는 것 같다. 프랑스의 극우정당 국민 전선(National Front)의 창설자 장 마리 르펭(Jean-Marie Le Pen)과 영국의 아담 워커(Adam Walker)같은 유럽의 극우인사 100여명이 작년 제이차대전 종전 65주년을 맞아 일본 극우단체 잇수이카이(一水会)의 초정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하고 일본 극우인사들이 주관한 민족주의에 대한 학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프랑스와 영국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 포르투갈, 스페인, 헝가리, 루마니아 그리고 벨기에의 극우인사들이 동행했는데 브레이빅도 이때 동행해 같이 야스쿠니를 방문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얘기를 지인으로부터 들었다. (세계의 극우분자들이여, 단결하라!)

2010년 유럽의 극우인사들과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하고 있는 르펭. 왼쪽은 프랑스의 극우당 국민전선(National Front) 소속이며 유럽의회 의원이기도 한 브루노 골니쉬(Bruno Gollnisch). 르펭은 전범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자 “전범 얘기를 하자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한 이들도 전범 아닌가?”라고 답변했다 한다. (http://www.youtube.com/watch?v=sJogGLewS8Y)

브레이빅이 한중일을 얘기하는 방식은 1980년대 미국 학계와 정치적 보수들의 관심을 끌었던 동아시아 유교담론을 빼닮았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중국계 학자 뚜웨이밍(Tu Weiming) 등은 유교 재해석을 통해 공동체를 중시하는 유교적 가치를 근대적 발전에 부합하면서도 서구의 병폐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제시한다. 서양에 대한 동양의 반격으로 이해된 이 새로운 담론은 적극적으로 동아시아의 가치, 즉 유교의 보편적 가치와 동아시아 역사에 내재한 ‘근대성’을 발견하려 했다.

뚜웨이밍은 막스 베버를 명시적으로 비판하며 동아시아의 경제적 부흥으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의 역사적 연관성을 설파한 그가 틀렸다는 것이 입증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개신교 윤리를 유교적 윤리로 대치함으로써 서양을 극복하고 동양의 존재이유를 역사적으로 공인받고자 했던 그의 문제의식은 실은 문화적 가치(종교)를 자본주의 발생과 발전의 핵으로 삼는 베버의 문제의식을 그대로 답습한 것으로, 자신의 주장처럼 유교의 ‘창조적 변용’(creative transformation)이 아니라 내면화한 서구의 문제의식을 동양에 투사했을 뿐이며 유교담론에 대한 서구의 평가가 시들해지면서 낙동강 오리알이 되고 말았다.

미국 보수가 가지고 있던 배타적 백인 공동체로서의 미국이란 이미지에 부합하게에 조금 써먹다 폐기처분한 이 담론을 브레이빅이 뒤늦게 반복하는 것은 미국 보수가 그랬듯이 타자에 대한 승인도, 다름과 차이의 인정도 아닌 서양의 나르시즘일 뿐이며 자신들의 욕망을 투영하지 않고는 타자를 타자로 볼 수 없는 그들의 한계를 고스란히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5.

‘브레이빅’은 우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다. 그의 극단적 이슬람 혐오증와 공포증은 수구들의 “빨갱이” 타령과 너무도 흡사하고, 기사단 제복과 총기로 무장한 전투복장의 제복 패션쇼로 상징되는 그의 폭력성은 걸핏하면 화려하게 훈장단 군복에 라이방 쓰고 설쳐대며 여차하면 가스통 들고 폭파하겠다고 달려드는 전직 군바리들의 군복 패션쇼와 너무도 유사하다.

이들 수구의 증오와 폭력은 다른 타자를 향하고 있으며 한국 교회의 이슬람 혐오는 미국의 기독교 그리고 유럽의 극우세력을 능가하면 능가했지 덜하진 않을 것 같다. 여기에 더해 앞서 얘기한 헌팅튼, 퍼거슨, 후쿠야마 등의 백인우월주의자들을 추종하며 그들의 담론을 퍼뜨리는 학자와 언론인들 역시 적지 않다.

한국은 이미 살벌한 담론전쟁 한복판에 있으며 넘쳐나는 증오와 폭력의 담론은 한 발짝만 더 내디디면 바로 실천이 되는 단계에 도달한 듯하다. 한국이 미국이나 노르웨이처럼 총기소유가 자유롭고 유럽처럼 다수의 무슬림 이주노동자들이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흔히 진보적이라고 여기는 미국산 ‘多-문화주의’는 실은 기존질서를 크게 흔들지 않으며 세계화의 흐름에 따라, 또 자국의 필요에 의해 유입되는 외국인 인구를 큰 충돌 없이 유지시키려는 지극히 현실적이며 보수적인 정책으로 이미 그 안에 ‘多者’의 범위와 허용한계를 설정하는 상위의 ‘一者’가, ‘多문화’ 상위의 ‘單문화’가 이미 설정되어 있다. (이 점에서 세계화와 민족주의는 상보적이다.) 그런데 서로 총질은 하지 말고 살자는 이런 기초적인 공존원리조차 총질을 당할 정도로 담론과 기억을 둘러싼 싸움에서 진보는 전세계적에서 열세에 놓여있다.

한국의 진보세력도 ‘서구’에서 근대의 이상-혹은 그에 근접하는 실체-를 발견해야 한다는 강박아래 ‘보수적 미국 대 진보적 유럽’ 프레임 속에서 우리를 구원해줄 무엇이 거기에 있을 거라는 기대를 품고 (북)유럽만 바라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 이 점에서 홍세화 선생의 ‘똘레랑스’ 예찬은 그 분의 진정성과 예찬이 갖는 긍정적 역할에도 불구하고 불편하다. 관용을 ‘베푸는 자’(상위의 一者)와 그 ‘베품을 당하는 자’(하위의 多者) 사이의 관계는 위계적이며 이 위계적  체제에 도전하기보다 유지하려는 다문화주의 윤리를 미래의 비전으로 삼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떠도는 담론의 조각들과 역사기억의 파편들이 그저 무시해도 좋은 사소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을 실질적으로 구성하는 필수적 요소라는 것을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뒤틀린 기억과 쓰레기 증오담론 위에서 노르웨이 학살과 같은 “악의 꽃”은 화려하게 피어난다. 공생과 평화의 담론 벽돌을 착실히 쌓아가지 않으면, 적절한 역사의 기억을 되살려 내어 담론적 실천을 지속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우리 삶은 쓰레기더미에 휩싸여 또 다른 악의 꽃들의 만개를 속절없이 지켜보게 될 것이다. 역사를 망각하고 ‘진보’의 아우라에 손쉽게 편승해온 노르웨이를 포함한 유럽이 얼마나 진보의 정신에 투철한 삶과 정치를 꾸려 왔는지 스스로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고 그것은 우리에게도 그대로 되물어지는 질문이다.

응답 2개

  1. 미친건 글쓴이당신도말하길

    과대망상에 피해망상까지. 게다가 거기서 수꼴로 이어지는 비약까지?

    글쓴이 제정신인가?

    글 중반부터 브레이브빅 어쩌고 할때부터 글이 격해지더니

    끝은 이렇게 맺는 구먼.

  2. 고추장말하길

    엄청난 논문이군요! 브레이빅을 둘러싼 다양한 쟁점들, 선생님 덕분에 여러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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