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홀로코스트와 위안부 할머니들의 불편한 만남

- Beilang(동아시아사상사연구자, 뉴욕이타카)

뉴욕 시 인근에 있는 ‘쿠퍼버그 홀로코스트센터’ 서양의 비극을 대표하는 홀로코스트와 아시아의 비극을 상징하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만났다. ‘센터’에서 ‘위안부 추모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에서 영감을 얻은 예술가들과 할머니 자신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으며 조만간 할머니들의 몇 분을 초청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만남은 소중하다. 고통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만남은 더더욱 그렇다. 만남은 연대와 치유의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번의 만남은 미국에서 일본의 만행을 고발하고 일본이 책임을 인정하도록 미국이 압력을 가하도록 오랫동안 노력했던 ‘한인유권자센터’(KAVC)가 몇해에 걸친 노력 끝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http://kavc.org/xe/7398 참조), 이들은 이미 2007년 일본의 치열한 반대로비를 뚫고 미 하원을 설득해 ‘위안부 관련 대 일본 결의안’(House Resolution 121)을 채택하는 과정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이로 인해 네덜란드, 캐나다, 유럽의회 그리고 영국 등 다른 나라들도 유사한 결의안을 채택했고 위안부 문제가 한일 사이의 문제를 넘어 국제적 인권관련 이슈로 만드는데 적지 않은 공을 세웠다.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1019 참조)

뉴욕 홀로코스트센터에 전시되고 있는 위안부를 주제로 한 그림 (http://kavc.org/xe/7398)

뉴욕 홀로코스트센터에 전시되고 있는 위안부를 주제로 한 그림 (http://kavc.org/xe/7398)

전쟁범죄의 책임을 놓고 일본의 행태를 오랫동안 봐온 이들에겐 일본과 끝없이 이어지는 무망한 싸움을 벌이기보다는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영향력을 이용해 압력을 가하는 방법은 현명한 전략으로 다가올 수 있다. (일본 대사관 앞 ‘수요집회’가 도대체 얼마동안 이어지는 지고 있는 지를 생각해보자.) 그런데 강자를 이용해 다른 강자를 치는 이 以覇制覇식 접근은 이슈가 윤리적 문제일 때는 패권의 차이가 도덕성의 우열로 변해버리는 이상한 게임이 되고 만다. 다시 말해 패권국가 미국을 한국과 일본이라는 피해자와 가해자로서의 당사자 밖에 위치시키고 나아가 정당성과 도덕성을 지닌 판관의 위치로까지 밀어 올리게 된다. 이는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문제의 소지가 너무 많다. ‘전쟁 성노예’를 동원해 악행을 저지른 것은 물론 일본이지만 일본이 합당한 사과나 보상을 회피하게 된 것은 미국이 대표한 연합군과 미국의 전후 행태와 깊은 관련이 있다.

연구자들에 의해 비교적 상세히 밝혀진 바에 의하면 미국은 위안부의 존재와 성격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관련자들을 전범 재판에서 제외하는 결정을 한다. 그 상세한 내막을 알 수는 없지만 피해자가 백인이 아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혹은 네덜란드인 위안부의 경우는 예외적으로 가해자들을 전범재판으로 처벌함으로서 더욱 신빙성을 더한다. 다시 말해 미국은 일본을 전후 냉전체제에 대응하는 동아시아의 거점으로 삼기로 하고 일본의 전쟁범죄를 상당부분 용인하고 그들의 전쟁범죄는 너그럽게 용서된다. (물론 그것이 백인들을 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해서) 전범 수괴인 천황이 처형되지 않은 것부터 생체 실험으로 악명 높은 731부대의 존재 묵인과 관련자 불처벌,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조약, 독도 문제까지 미국은 가해자 일본 편에 서거나 애매한 중립적 태도를 취함으로써 후에 이 문제들이 불거질 소지를 만들었고 역으로 일본이 자신들의 과거에 대해 사과할 기회와 동기를 박탈했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큰형님 미국은 모른 척하고 한국의 굼바리 정권은 요구를 해오기는커녕 먼저 머리 조아리고 돈 좀 달라고 애걸하는데 일본이 왜 나서서 고해성사를 하겠나? (피로서 일본에 맹세했던 타카키 마사오가 한일협정에서 배상 청구권을 포기하고 대신에 일본 형님들로부터 검은 뒷돈을 챙겨 깡패정권의 텃밭 공화당을 만든 것은 다 아는 얘기다.) 깡패정권 물러나고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사람들이 들고 일어났는데 일본 입장에선 자신들의 돈 다 받아먹고 굽실거리며 이제껏 아무 소리 없다가 몇 십년이 지난 이제 와서 왜 난리인가하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리고 특히 “군 위안부” 문제에 관해 거론하자면 미국은 절대 ‘판관’의 위치에 설 수 없다. 미군은 2차 대전 직후 “위안소”와 유사한 시설을 유럽과 일본에서 운영했으며 한국에서도 타카키 마사오 시절 대미합중국 군인들의 건강을 염려하시어 국가가 실제 ‘포주’가 되어 성병검사도 하고 치료해준 “깨끗한” 한국여성들을 “제공받은” 버젓한 역사적 사실은 어디로 갔나?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군이 주둔한 도처에서 비슷한 일들이 벌어졌지만 이에 대한 미국정부 차원에서 단 한 번의 공식적 사죄, 아니 그 이전에 사건에 대한 제대로 된 인정이라도 있었던가? 2007년 ‘결의안’ 어디에도 미국과의 연관을 암시하는 단 한마디의 말도 없다. 이런 미국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을 들어주고 도덕적 우위를 바탕으로 다른 나라에 무얼 요구한다고?

젊은 시절 사진을 들고 있는 80세의 전직 기지촌 성매매 여성. “당시는 딸라를 벌어들이는 애국자” 소리도 들었지만 “지금 돌이켜 보니 내 몸은 내 것이 아니라 국가의 것, 미군의 것이었던 것 같다”는 회한을 남긴다. (http://www.nytimes.com/2009/01/08/world/asia/08korea.html?pagewanted=all)

젊은 시절 사진을 들고 있는 80세의 전직 기지촌 성매매 여성. “당시는 딸라를 벌어들이는 애국자” 소리도 들었지만 “지금 돌이켜 보니 내 몸은 내 것이 아니라 국가의 것, 미군의 것이었던 것 같다”는 회한을 남긴다. (http://www.nytimes.com/2009/01/08/world/asia/08korea.html?pagewanted=all)

역사의 고통을 간접적으로나마 공유한 교민들이 왜 나서서 미국을 그런 지위로 격상시키는가? 명분이 정당하다고 해서 미국의 영향력을 이용하기 위해 미국의 역사망각을 일깨우기는커녕 그들을 고매한 판관의 위치에 올려놓고 도와 달라고 애걸하여 그들의 역사적 망상을 유지 내지 강화시키는 것이 바른 태도일까? 여기에는 한국계 미국인들의 정체성의 정치가 작동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소수인으로서의 정체성 형성에 어려움을 겪는 교포들 가운데 비교적 “성공적인” 계층이 미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소수자인 유태인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보한 방식을 알게 모르게 모방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미국을 공정한 판관의 위치로 격상시켜 미국의 도덕성을 부각시키고 기득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홀로코스트라는 비극과 연계를 맺어 우리도 유태인과 같은 ‘역사적 피해자’라는 정체성을 형성해 활용하자는 것이다.

<Dachau>라는 제목의 유태계 유고슬라비아 조각가(Glid Nandor)의 1968년 작품. ‘다카우’는 독일에서 맨 처음 유태인 수용소가 들어선 곳이다. (http://fcit.coedu.usf.edu/Holocaust/GALLFR2/DACB03.htm)

라는 제목의 유태계 유고슬라비아 조각가(Glid Nandor)의 1968년 작품. ‘다카우’는 독일에서 맨 처음 유태인 수용소가 들어선 곳이다. (http://fcit.coedu.usf.edu/Holocaust/GALLFR2/DACB03.htm)

그런데 역사의 피해자 의식을 정체성의 기반으로 삼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는 심히 의심스럽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역설은 개인 차원뿐만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도 일어나곤 한다. 이스라엘을 보라. 그 끔찍한 홀로코스트를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삼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만행은 도를 더해갔고 피해자의식은 자신들의 만행을 정당화시켜주는 방패막이가 되어 왔다. 정당한 비판에 대해서조차 ‘반유태주의’라고 공격하는 그들을 보면 피해자 정체성 정치의 어둠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유태인들도 홀로코스트를 처음부터 자신들의 정체성의 기반으로 삼았던 것은 아니다. 도리어 전혀 저항하지도 못하고 비참하게 몰살당한 것에 대한 수치심이 강했고 묻어두려 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런데 이스라엘 건국이후 주변국의 반발이 심해지고 정신적 구심점이 필요해지자 덮어두었던 과거의 비극을 끄집어내어 자신들 정체성의 핵으로 삼게 되었던 것이다. 미국은 세계를 향한 이 정체성 정치의 주무대가 되었고. 이 새로운 정체성이 형성되고 강화되는 과정과 그들이 중동에서 새로운 비극을 양산하는 과정은 정확히 일치한다.

소수자로 사는 이들이 갖는 다수자가 되려는 욕망은 이해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러나 그 욕망은 무조건적으로 긍정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소수자가 다수자가 되지 못해 안달하는 순간 다수자가 만든 억압적인 틀을 긍정해버리고 그들의 게임을 하는 존재, 다수자를 위해 존재하는 단지 잠정적인 존재가 되어 자신들의 현재성은 부인되고, 소수자는 결국 자신의 존재마저 부인하는 유령이 되고 마는 것이다. 나아가 다수자가 되려함은 다수자가 행해온 패악질과 그 패악질을 양산하는 구조에 대한 암묵적 긍정이기도 하며 이는 소수자가 벗어나고자 하는 자신에 대한 억압을 긍정하는 것이며 이는 또 다른 자기부정의 발현이다. 소수자들이 온갖 차별과 억압해 반대하다가도 자신들이 다수자가 되면 같은 차별과 억압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억압에 반대한다고 생각하지만 반대한 것은 실은 그 억압 때문에 느낀 ‘나’의 수치와 고통일 뿐, 억압 자체는 긍정했으니까.

미국이 어떤 나라인가? 원주민 대량학살과 노예제라는 씻기 어려운 ‘원죄’위에 전 세계에서 온갖 전쟁과 학살, 암살, 쿠데타, 고문을 자행하며 자신의 패권을 이어온 나라가 아니던가? 한편으론 이 악행들을 암묵적으로 긍정하거나 나아가 칭송하며 동시에 그들에게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역사적 정의를 바로 세워달라고 애걸하는 것은 심각한 도착증세가 아닐까? 미국은 어차피 이런 악행위에 세워진 “악의 꽃”이고 너무도 오래 마약 같은 그 꽃의 향기에 취해 살아오며 그것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구축한 황망한 나라이기에 쉽사리 그 악행들을 인정하기는커녕 인지하지도 못하고 있다. 세계사를 선도해온 선의 세력으로 자부해온 자신들의 존재기반 자체를 뒤흔드는 일이기에. (남들은 쉽사리 비난하며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인정하는 것에는 한없이 더딘 그들의 행태는 우리가 피해 당사자인 한국전쟁 중 민간인 폭격과 노근리 사건같은 민간인 학살, 그리고 최근의 고엽제 사태 등등을 보아도 명확하다.) 미국에서 그걸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세력은 소수자들이다. 이점에서 미국에서의 소수자는 양심세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미국내 한인의 위상을 높이는 데 많은 공헌을 했고 이번 전시를 하는데 큰 힘을 보탠 한인유권자센터 김동석 소장의 다음과 같은 발언은 심히 불편하다.

“미국은 다른 나라 간의 분쟁에 대해 철저히 국익이라는 잣대를 들이댄다. 핏대를 올리면서 역사적 진실이나 정의를 주장하는 아마추어들에게 눈길을 줄 정치인은 워싱턴에 없다. 전략적 접근이 아니면 소수가 이길 수 있는 방도가 없다.”

‘소수’는 ‘다수’와 협잡할 수밖에 없다는 것인가? 그래서인지 그에게 미국은 ‘워싱턴’과 ‘워싱턴 정치인’들과 동의어인 것 같다. 그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미국의 “국익”이라는 말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를. 온갖 전쟁 뒤에, 고문과 학살 뒤에, 그 빌어먹을 “국익”이 들먹여진다. 엄한 사람들을 폭격해 죽이고 가두고 고문해야 유지되는 국익이라면 도대체 그 국익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렇게 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나라는 도대체 어떻게 되먹은 나라인지? 이런 것들을 먼저 물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그걸 그냥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며 그걸 문제시하는 사람들은 “역사적 진실이나 정의를 주장하는 아마추어” 운운한다. 참 솔직하다. 그런데 참 뻔뻔하고 무식하다. 노골적으로 미국 주류의 편에서 서서 주류의 눈으로 세상을 보며 문제를 해결하려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렇게 명예 백인, 아시아의 유태인 시늉하며 스스로와 다른 소수자들을 비하하고 부정하는 소수자 운동은 누굴 위한 운동인가? 그건 어떤 구호를 내거는가와 무관하게 궁극적으로 다수자 되기 운동이며 다수자의 횡포를 대물림하는 운동이다.

미국에 희망이 있다면 그건 소수자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소수자, 약자라고 자동적으로 도덕성을 획득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피해자 의식이 위험할 수 있듯이 소수자 의식 또한 끊임없이 되물어져야 할 것이다. 밖을 향한 날카로운 비판 뒤에는 스스로에게 그 비판을 들이대어 ‘내’가 ‘우리’가 그 비판을 견딜 수 있는 지를 가늠해볼 필요가 있다. 포주가 되어 가장 힘없는 국민들을 외국군대에 팔아먹으며 “딸라”를 챙긴 정권과 그 하수인들, 그리고 그 정권이 그리워 몸부림치는 얼빠진 인간들. 그리고 그 이전 한국전쟁 중에도 “위안부”가 있었다는 것(http://suyunomo.jinbo.net/?p=4603)은 정신 차리고 살지 않으면 강자약자, 너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 약육강식의 얼빠진 삶을 살게 된다는 경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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