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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묻는다” – 고추장의 뉴욕대학 강연 참관기 1

- Beilang(동아시아사상사연구자, 뉴욕이타카)

1.

12월 16일 추장(고병권)의 뉴욕대학(NYU) 동아시아 학과 초정 강연이 있었다. 일전 <래디컬 필로소피>(Radical Philosophy) 주최의 동명 학회에서 마주친 미국 일본학의 원로 하루투니안(Harry Harootunian, NYU, 콜럼비아 대) 교수가 추장에게 ‘수유너머’에 대한 소개를 해달라는 청을 했었고 유키코 하나와(Yukiko Hanawa) 교수가 정식으로 초청하여 이루어진 세미나 형식의 강연이었다. 하루투니안 외에도 미국에 랑시에르를 처음 소개했고 ‘파리코뮨’에 대한 책 등을 저술한 크리스틴 로스(Kristin Ross, NYU), <뉴욕열전>의 저자이자 뉴욕의 토박이 운동가 사부 코소(Sabu Kohso) 그리고 최근 <부채>라는 책을 써서 주목을 받고 있는 데이빗 그래버(David Graeber, 런던대), 일본전공 인류학자 탐 루서(Tom Looser, NYU), 방문교수인 나오유키 우메모리 (와세다대), 한국학 교수 헨리 임(Henry Em, NYU), 그리고 다수의 대학원생들이 참여해 세 시간이 넘도록 의미심장한 발표 그리고 진지한 질문과 답변이 이어진 인상 깊은 자리였다.

“길 위에서 묻는다-수유너머의 실험”(Inquiring On the Road: Experiment of SuyuNomo)라는 제목을 걸고 1) ‘수유너머’의 탄생 2) 민주화 운동과 해직교수 그리고 대학 밖의 연구 모임 그리고 1997년의 경제위기로 인한 신자유주의의 득세와 대학의 기업화 등을 다룬 역사적 배경, 3) 수유너머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운용되어 왔는지에 대한 소개, 그리고 4) 이후의 작은 코뮨들로의 분화 과정과 활동 등을 개괄하고, ‘제도권 대학’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면서 ‘삶’과 ‘앎’이 이어질 수 있는 새로운 삶의 형식의 문제를 ‘추방’과 ‘탈주’ 그리고 ‘사건’과 ‘현장’이라는 말을 화두로 삼아 발표가 이루어졌다. 추장은 일취월장한 깔끔하고 정확한 영어로 발표를 했고 참가자들은 모두 주의 깊게 경청하고 질문과 코멘트로 이번 발표를 풍성하게 해주었다. 질문과 답변을 중심으로 이번 발표를 재구성하고 필자의 견해를 보태어 이 강연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2.

토론자로 나선 로스 교수는 ‘수유너머’가 브레히트적인 ‘유희적 실험’이라는 요소와 민주주의의 실천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 것 같다는 말로 강연의 성격을 규정한 뒤 프랑스 전문가답게 프랑스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의 전개와 한국에서 벌어진 일들의 놀라운 유사성을 지적했고 (68운동과 미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갈등과 이어진 마오주의 운동가들에 의한 점거 등), 역사적 선례로 프랑스 혁명 당시 파리를 72일간 자치적으로 운영했던 ‘파리 코뮨’을 얘기하면서 ‘수유너머’는 성격은 다르지만 그 10년여를 이어온 그 지속성이 놀랍다는 얘기를 했다. ‘코뮨’이 어떤 고정적 실체의 이름이라기보다는 역사적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동력으로 이해하는 듯하며 ‘파리 코뮨’을 코뮨의 역사적 전형으로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어서 ‘교육적’ 측면으로 얘기를 이끌며 이런 운동이 지향하는 교육적 목적(pedagogical goals)은 대부분 ‘새로운 사회건설’ ‘새로운 정치적 주체/행위자 형성’ 등이 되기 마련인데 ‘수유너머’는 이런 운동과는 확연히 다르게 동등한 참여에 의한 실천을 앞세우고 있고, 이는 정부와 사회 등의 공적 기구와 언론의 자유, 선거권 등의 요소로 구성된 전통적 민주주의의
개념이 함축하는 ‘제도 재생산의 논리’를 벗어나 “공동의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할 수 있으며 무엇인가를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민주주의의 본 뜻에 충실한 것 같다는 평을 했다. 발표에서 한국 민주주의 세력이 자본에 충실한 신자유주의 정책의 집행자가 되었다는 역사적 배경 말고는 수유너머를 민주주의와 연결시킨 논의는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추장의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에서의 논의와 지극히 흡사한 민주주의론을 듣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말해지지 않은 정치적, 철학적 배경을 정확히 파악한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평이었다.

하루투니언 교수는 바로 이어 ‘현장’이 사건의 생생한 경험‘(lived experience)을 함축하는 현상학적 시공(時空)이자 ‘사건성으로 충만한 공간’(space for eventfulness)이며 그 안에서 ‘우리’와 ‘그들’을 가르는 경계와 구획을 넘어서는 시간과 공간의 연합인 바흐친의 ‘시-공’(chronotope)과 유사한 개념이 아닌가하는 분석을 내놓았다. ‘크로노토프’는 추장이 고심 끝에 최상의 번역어로 정했다가 논의가 추상적인 시공개념 분석으로 빠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쓰지 않은 개념이었다. 그런데 현자이라는 말을 처음 듣고 간단한 설명만으로 바로 바흐친의 개념을 집어낸 것은 핵심을 찌르는 놀라운 분석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는 더 이상의 개념분석을 시도하지 않고 간단한 언급 외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나머지 강연을 들었다.

이번 모임의 아주 흥미로운 배경의 하나는 머지않은 곳에서 삼 개월째 진행 중인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이다. 참가한 학자 가운데 그래버 교수는 무정부주의자로, 점거운동에 초기부터 깊이 관여하며 브레인 역할을 해오고 있고 이글을 쓰는 지금도 현장보고를 트위터에 올릴 정도로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코소 씨도 운동의 태동 때부터 지속적으로 관여하고 있으며 하나와 교수도 이 운동의 교육관련 조직의 핵심 멤버로 개방학교인 ‘유목민 대학’(Nomadic University)을 만들려는 시도를 하고 있기에 많은 부분에서 공명할 수 있는 지점이 있었다. (대학원생 몇몇도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것을 강연이 끝나고 알게 되었다.) 다음은 질문과 답변을 기억에 의해 거칠게 재구성한 것으로 객관적 기록이라기보다는 작성자의 주관이 많이 개입된 후기에 가깝다. (굵은 글씨체는 질문이며 발표자의 신분은 기억나는 대로 표기했다.)

*고추장 강연후기 2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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