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정의에 목마른 우둔한 이들의 이야기

- 기픈옹달(수유너머 R)

지난 몇 달 동안 ‘타블로’라는 이름이 세간을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타블로의 학력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은 점점 판을 키워가더니 ‘타진요(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라는 카페의 회원이 20만 명을 돌파하는 데 이르렀습니다. ‘타진요’에서 떨어져나간 일부 회원들이 만든 ‘상진세(상식이 진리인 세상)’라는 또 다른 카페에서는 성적표 위조로 타블로를 경찰에 고발하기까지 했습니다.

여러 화제를 낳았던 이 사건은 경찰의 수사 결과 발표로 새 국면에 접어들었습니다. 이제는 오히려 문제의 발단이 되었던 ‘왓비컴스’라는 네티즌부터, 타블로를 공격했던 이른바 ‘타진요’ 회원들이 역풍을 맞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들을 열등감에 사로잡혀 한 연예인의 삶을 파괴해 버린 정신이상자들 쯤으로 몰아세우고 있습니다.

사건이 대충 정리될 것처럼 보이니 너도 나도 말을 보테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난 월요일(18일)에는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MB가 나서 타블로의 안위를 물었다고 합니다. 젊은 친구가 얼마나 힘들었겠느냐면서. 그러면서 MB는 악플러들로 선의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답니다. 일부 사설에서는 타블로의 말을 인용해서 이 사건을 ‘못 믿는 것이 아닌 안 믿는’ 사람들이 벌인 병적인 집단행동이라고 손가락질 합니다. 게다가 ‘안 믿는 사람’들의 목록에 4대강 반대자나 천안함 사건에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까지 묶어내는 웃지 못 할 일까지 벌어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편집증적인 정신병자들의 병리적 행태쯤으로 치부해버리는 데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그들이 내걸었던 말은 정의를 욕망하는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타블로에게 ‘진실’을 묻는, 상식이 ‘진리’인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을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열광하는 사람들에 포개어 놓아도 전혀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MB가 말하는 공정사회를 옆에 두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타블로를 까는 이른바 ‘타까’들 가운데 철없는 초딩 대신 30대 고학벌이 많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들은 타블로의 학력문제를 밝히는 것이 곧 사회정의를 이루는 일이라고 믿었습니다. 20만의 타진요 회원이나 <정의란 무엇인가>를 구입한 수십만의 사람들은 결국 동일한 욕망의 자식인 셈입니다.

이 욕망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타까들의 현주소를 통해 유추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경찰이 타블로의 학력을 확인하자 타까들은 매우 난처한 상황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사회 정의를 두고 타블로가 아닌 경찰과 싸워야 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몇 달 동안 타블로와 치열한 싸움을 벌였던 이들은 고작 며칠 만에 꼬리를 내리고 말았습니다. 이들에게 정의란 경찰로 대표되는 공권력에 의해 규정되고 유지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정의란 대의는 이제 아무런 힘을 갖지 못합니다.

경찰이 등장하기 전까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던 여러 질문은 이제 쓸모가 없어졌습니다. ‘진리’와 ‘진실’에 대해서는 이제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우수죽순처럼 등장한 타진요의 아류들, ‘이진요(MB 혹은 이청용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나 ‘노진요(노홍철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와 같은 패러디 ‘진요’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이제는 진실을 물어야할 때가 아닌 웃고 즐겨야 할 때입니다.

타진요 사건이야 웃고 지나가면 끝이겠지만 정의에 대한 욕망은 아직 현재 진행형입니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몇 달째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 꺼지지 않는 욕망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미안하지만 여기에 찬물을 끼얹어보고자 합니다. 그래서 이번 37호 동시대반시대는 ‘대한민국, 정의에 환장하다’라는 제목을 붙여보았습니다. <넌 애국시민을 원하니 난 야만인을 기다린다>(고병권), <슈퍼마켓과 정의 : 누가 정의를 말하는가>(만세), <정의란 무엇이며 무엇이 아닌가>(최진석), <이명박 대통령께서는 하필 이익이라는 말씀을 하십니까>(신현기) 이렇게 총 네 편의 글을 준비했습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정의를 둘러싼 담론의 새로운 지형도를 그려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혹시라도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어볼 생각을 갖고 계신 분이라면 더욱 꼼꼼히 정독 하시기를 권합니다. (책값이 굳었다며 위클리에게 고마워하실 겁니다. 분명!)

아울러 지난 13주 동안 연재되었던 <혁명과 정치의 사유>가 35호 바흐친을 끝으로 연재종료 되었다는 점을 알려드립니다. 23호부터 랑시에르, 푸코, 바디우, 지젝, 들뢰즈 등 굵직한 사상가들을 다루었습니다. 글은 계속해서 남아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언제든 찾아오셔서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현재 <혁명과 정치의 사유>를 이어 학술면을 채울 새로운 연재 기획을 준비중입니다. 준비가 완료되는 대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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