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3호] 편집자의 말 – 만국의 가난한 이들에게

- 기픈옹달(수유너머 R)

만국의 가난한 이들에게

“혼자 살 건지, 함께 살 건지의 문제입니다.” 이번 3호 <전선인터뷰>를 위해 ‘빈집’을 찾았을 때, 아규씨가 한 말입니다. 제가 물었거든요. 당신한테는 집이 무엇이냐고. 웬 동문서답인가 싶었는데, 어쩐지 그 말이 묘하게 저를 사로잡습니다. 집만이 아니겠지요. 세탁기도 그렇고, 냉장고도 그렇고, 책상도 그렇고. 혼자 쓸 건지, 함께 쓸 건지 생각해보라는 건데요.

혼자서 오래 넓게 누리는 게 불가능한 빈자들은 결국 함께 나눠서 쓸 수밖에 없겠지요.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곳이 있습니다. 거기도 일종의 코하우징을 하는 곳인데요. “터무니없이 길고, 좁고, 어두운, 폭이 40센티가 될까 말까한 복도”를 “기차놀이라도 하듯” 일렬로 걸어가는 곳, “1센티 두께의 베니어판을 사이에 두고” 서로 숨죽여 사는 곳. 네, 바로 고시원입니다.

제게도 고시원의 추억이 있습니다. 대학 다닐 때였는데요. 당시에 월 12만원 내고 몇 개월 살았습니다. 근처엔 이름과 용도가 일치하는 고시원도 있었는데 가격이 두 배쯤 되었죠. 거기 살기 전에는 청계천과 동대문 일대의 고시원을 보고, ‘참 생각 없는 고시생도 있나보다, 저런 데서 공부가 되나.’ 그랬지요. 그런데 고시생 하나 없는 고시원에 살다보니 까닭을 금세 알게 됐어요. 고시원, 그것은 빈자들의 집단 거주지입니다.

<위클리수유너머>의 3호와 4호 주제를 ‘함께 살기’로 잡았는데요. 생각해보니 ‘고시원’이야말로 오늘날 가난한 이들의 삶을 축약해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 좁디좁은 곳에 빽빽하게 들어차 있으면서도, 가난한 이들은 철저히 고립되어 있지요. 혼자인 여럿일 뿐입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박민규의 글처럼 “소리가 나지 않는 인간”이 되지요.

‘빈집’의 실천에 주목하자는 건 이런 이유에서 입니다. 빈집은 가난한 이들이 처박혀 살지 않는 방법을 알려주니까요. 빈집 식구들은 밥상을 함께 차리고 뭔가를 도모 하느라 시끌벅적 떠들어댑니다. 제 추억 속 고시원에서는 빨간 밥통에, 얼굴을 본 적도 없는 누군가 지어놓은 밥을, 방에서 가져온 반찬 몇 개 놓고 먹습니다. 얼마나 조용하던지 젓가락 소리가 또렷이 들렸지요. 그리고는 황급히 자리를 뜹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정말 가난해지는 순간이죠.

돈과 권력으로 부자와 권력자들의 세계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가난은 돈과 권력에 시달리는 곳이면서 동시에 돈과 권력이 미칠 수 없는 한계이기도 합니다. 돈으로 살 수 없고 권력으로 명령할 수 없는 것, 그런 걸 가졌기에 역사 속 가난한 자들은 항상 도래할 세계의 주인공으로 지목되어 왔습니다. 라블레는 지배자들이 두려워했던 것의 정체, 가난한 자들의 가장 큰 자산을 너무 잘 말해주었습니다. 가난한 자들의 식욕과 웃음이죠. 함께 왁자지껄하게 먹고 큰 소리로 웃는 게 가난한 자들의 힘입니다. “혼자 살 건가, 함께 살 건가.” 물어보나마나 아닙니까. 만국의 가난한 이들이여, 고개 숙이고 혼자 밥 먹는 일은 이제 그만합시다.

이번 주제 ‘함께 살기’와 관련해서는 <전선인터뷰> ‘빈집’이야기(3호)와 <모기가 만난 사람들>의 ‘목리이야기’(2호), ‘난산리이야기’(3호), <씨네콤>의 ‘앞산展’‘빈집’을 주목해주세요. 조금씩 색깔은 다르지만 같은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아울러 4호에는 ‘일본의 홈리스 마을 운동’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많이 기대해주세요.

참 이번호부터 코너 하나가 새로 생겼습니다. ‘영장찢고 하이킥’인데요. 병역거부를 선언한 현민이 매주 한 차례 글을 기고할 예정입니다. 3월초 예정된 선고가 내려지면 현민은 말 그대로 감옥에 가는데요. 일단 편지 형태로라도 연재를 계속 하겠다는 다짐입니다. 현민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매주 올라오겠네요. 현민과 함께 하는 응원의 메시지 많이 기대합니다.

고병권(수유너머R)

응답 1개

  1. 달타냥말하길

    예전에 6개월정도 고시원에 산 기억이 있어서인지…고병권 선생님의 글이 팍팍 와닿네요.
    가난한 사람들이 함께 살면서 기를 피는 거…아 너무 멋진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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