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봄(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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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년 12월 31일 밤, 비비는 송년의 밤을 맞이했다. 비비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는 비비 아닌 다른 비혼 친구들도 살고 있다. 당일에는 자체적으로 토론해야 할 몇 가지 안건이 있었다. 오늘 같은 날은 외롭다며 문호를 개방하라는 한 친구의 말에 ‘너는 외로워라’ 막말을 하고 난 뒤 찔린 마음을 주워 담아 여기저기 저녁식사를 함께 하자는 문자를 돌렸다.
  • 외국인이 말했다. 자신의 나라에서 크리스마스에는 친구들을 만나지 않고 무조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고. 연말이나 명절 때마다 가족이 없는 외국인들은 TV에 나와서 장기 자랑을 한다. 가족이 없는 비혼은 외국인도 아닌데 외계인 같은 느낌이 난다. 2003년 비혼 모임을 시작하면서 나는 어떻게 연말과 명절을 보내고 어떻게 나이를 먹었을까.
  • 한 달에 두 번 쓰기로 약속한 날은 원고를 보내고 돌아서면 와 있었다. 위클리 수유너머에 원고를 쓰기로 결정했을 때는 이 맘 저 맘 오만 마음 가지들을 붙들고 그래도 써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 마감일에 받는 담당자의 전화는 반가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과 멋쩍은 마음들이 뒤섞여서 웃음만 나온다.
  • “내가 할게.” 우리가 이구동성 하는 말이다. 전 직장에서 각자 베테랑급으로 일했던 우리는 제 나름대로 ‘열심’을 빼면 시체였다. 어지간한 ‘열심’으로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다.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성향,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태도, 몸에 밴 성실함, 그것이 우리가 가진 미덕이자 자부였다.
  • 오늘의 요리는 햄이 들어간 김치찌개. J가 좋아한다. 채식을 하는 K는 본인은 하나도 먹고 싶지 않으니까 괜찮다고 말한다. 나는 안 괜찮다. K가 없을 때를 골라서 먹는 것도 썩 괜찮은 것은 아니지만 얼마 전 채식을 풀고 고기를 잘 먹는 J가 있어서 조금 괜찮다. 공간에서 함께 먹는 점심시간, 한 식탁에서 같이 밥을 먹는데 K는 먹지 않는 음식을 나는 맛있다며 먹는 행동이 멋쩍은 것인지, 아니면 무엇이든 K도 함께 맛있게 먹었으면 하는 바람인 것인지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그 상황이 나에겐 썩 유쾌하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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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 사랑도, 우정도, 결혼도, 공동체도 돈 때문에 헤어지는 경우가 많잖아요? A : 그렇군요. 돈 아니어도 헤어질 일은 많죠. 돈은 있어도 문제, 없어도 문제인데 그 ‘많거나 적은 돈’ 때문이라기보다는 많을 때는 어떻게, 적을 때는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그 운용의 주체가 헤어짐을 맞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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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는 몰랐다. 우리가 모임을 시작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 ‘위클리 수유너머’에 글을 쓰게 될 줄을 말이다. 2003년 2월 28일이었다. K는 사람을 보는 안목이 있었다. 당시 전주에 살면서 결혼하지 않은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 직장 여성 일곱 명을 모았다. 결혼을 꿈꾸는 친구도 있었고, 연애 중인 친구도 있었고,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친구도 있었다. 나처럼 결혼이 삶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