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남(장애와 인권 발바닥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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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에 보이는 신체적인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누군가 잡았고, 그래서 이 사회의 어딘가에서 장애-비장애 교직작업이 일어났다.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지만, 최근 몇 년 간의 장애인 이야기 작업은 이런 맥락에서 진행되었다.아픔을 간직한 사람들과의 이야기 작업에 참여해본 사람은 이야기 작업이 협력적 교직작업이라는 점을 금새
  • 내 안의 역사 프로젝트는 역사를 쓰는 새로운 스타일로 역사가 쓰여졌다. 이 새로운 스타일은 <사진글 역사작업>인데, 이번에는 사진의 시각에서 이 스타일을 말해본다. 지금까지 역사서술이나 이야기작업은 말과 글 위주이거나 사진을 먼저 찍고 여기에 설명을 덧붙이는 형식으로 전개된 것이 사실이다. 글과 사진이 동시에 뭔가를 지향하면서 의식적으로 함께 역사를 쓰는 작업은 아무래도 적었던 것 같다. 이번
  • 여기에서 소개할 내러티브 프로젝트는 <내 안의 역사, 탈시설 장애인의 스토리텔링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는 2012년에 진행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작지만 거대했던 프로젝트였다. 참가한 장애인은 8명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삶을 보조해주는 ‘활동보조인’(중증장애인의 생활을 보조하는 사람으로 마치 중병을 앓는 사람을 간호하는 간병인 같은 사람
  • 사진과 글로 역사를 써내려가는 방식이야 실로 다양하겠지만, 내가 경험했고 그래서 권유하고 싶은 방식이 있다. 두 가지인데, 하나는 “아카이빙 프로젝트”이고, 또 하나는 “내러티브 프로젝트”이다. 아카이빙은 “아카이브 워크숍”에 어울리고, 내러티브는 “메므와 워크숍”에 어울린다. 도시의 근엄한 사무실에 출근할 때 입는 양복과 논밭에 일하러 나갈 때 입는 옷이 같을 수 없듯이,
  • 지난 4회에 걸쳐 2011년 스토리텔링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이제 진행경과와 의미를 말하면서 2011년 프로젝트는 정리한다. 다음 번부터는 2012년 프로젝트를 다른 시선으로 살펴볼 것이다 워크숍 진행경과 2011년 여름 인권단체 <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에서 “탈시설 장애인의 나를 찾는 여행: 나의 어메이징 스토리 워크숍”을 진행했다.
  •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에 회의를 품게 한 것이 장기간의 시설경험이었다면, 내가 어떤 느낌으로 어떤 생각으로 살아왔는지를 나눴던 동무경험(워크숍에서 어울렸던 경험)은 존엄성의 자양분이 되었다. “시설에서 나와 지금은 지역에서 살고 계신데요, 뭐가 제일 좋으세요?” 이런 물음에 공통의 대답이 돌아왔다. “자유죠. 외출하고 싶을 때 외출할 수 있다는 것, 내가 어디에
  • 우리의 신체성(身體性) 자체가 자본주의를 부정하고 있다.’ 이것은 1960-1970년대 일본의 급진적 장애인운동단체인 푸른잔디회(뇌성마비 장애인단체)가 외쳤던 구호입니다. 중증장애인들은 자본주의적 경쟁 원리가 지배적인 사회에서는 생활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며, 따라서 속성상 반자본주의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경쟁이 요구하는 속도에 따라가지 못하는 대다수 장애인은 주변부로 밀려납니다. 생산
  • 그이들은 갇힌 자들의 내러티브에 속할 때는 마치 푸코의 <말과 사물>에 등장하는 ‘멀리서보면 파리처럼 보이는 짐승’이었다. 그러나 워크숍이 진행지면서 각자만의 ‘어메이징 스토리’를 풀어내자 사태는 일변했다. ‘가까이에서 보니 자신의 운명을 개척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세상의 후미진 구석에서 홀로 고립되어 있는 줄 알았으나 그 시절에도 같이 있었던 동무가 있었으며, 그들 자신이 그 곳에서 누군가의 동무
  • “엄마가 나에게 ‘여섯 살’이란 걸 가르쳐 주던 날 엄마, 아빠와 함께 공원에 갔어요. 엄마는 먹을 걸 사온다 하셨고 아빠는 잠깐 어디엘 다니러 갔다 오신다 하셨지요. 잠깐은 수 십 번도 더 지났는데 엄마, 아빠는 오시지 않았고, 울었어요. 그리고 낯선 사람의 손에 이끌려 경찰서에 가게 되었고 경찰 아저씨의 손에 이끌려 어느 아동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어요. 우리들의 하루 일과는 6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