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이란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진 두 사람의 대화와 같습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두 사람이 대화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느 한 사람은 자신의 언어를 버리고 상대의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각자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서로 자기 말만 하는 상황이 벌어질 테니까요. 따라서 소통이란 자신의 지반을 떠나 상대의 영역으로 들어갈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소통의 기본 조건입니다.
벌써 151호입니다. 2010년 위클리 수유너머가 시작한 이래로 3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네요. 이 기간 동안 위클리에는 나름의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저는 가끔 상단 메뉴에 있는 지난호 보기를 통해서, 혹은 좌측 하단 메뉴에 있는 지난 코너 보기를 통해서 위클리에 어떠한 흐름들이 있었는지 살펴보곤 합니다.
‘사회적 기업’ 정책만큼 우리 편인지 저들 편인지 헷갈리는 정책도 없을지 싶다. 속칭 진보라고 불리는 이들은 한결 같이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치유할 주요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동시에 시민사회를 돈으로 포섭해서 상업화 시킨다는 명확한 한계를 이유로 강하게 반대하는 입장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주 위클리에서는 오랜만에 사상가 특집을 꾸며봤습니다. 데이비드 흄을 주제로 해서 세 편의 글을 실었는데요, 이 글들은 수유너머N의 <흄세미나>팀이 세미나를 마무리하면서 그 결과물로 나온 것들입니다. 데이비드 흄은 흔히 로크, 버클리와 더불어 경험론자이자 회의주의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그가 합리론의 보편적 진리에 대해 끝없이 회의적 사유를 진행했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
지난주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마음』을 가지고 장애인성폭력피해자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마음』이라는 소설을 통해 그분들이 자신의 ‘마음’과 마주하기를 바라면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죠. 『마음』은 외부 세계와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고 평생을 죽은 것처럼 지내는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칸트는 ‘무관심한 관심’으로 미를 판단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무관심한 관심? 모순된 표현처럼 보이는 이 개념의 의미는 이러합니다. 무관심한 관심에서 ‘무관심’이란 감각적 욕구나 도덕적 욕구에 대한 무관심입니다. 즉, ‘배불리 먹고 싶다, 부를 소유하고 싶다, 자기체면 유지하고 싶다, 도덕적 명성을 얻고 싶다’와 같은 것들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거죠. 반면, 무관심한 관심에서 ‘관심’은 감각적 욕구나 도덕적 욕구에서
저는 어려서부터 강아지도 고양이도 안 좋아했습니다. 물론 갓 태어난 새끼들은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귀엽긴 합니다. 그렇지만 쓰다듬어 준다든지 안아준다든지 하는 건 잘 못하겠습니다. 눈으로만 봅니다. 새끼들도 이런데, 커다란 아이들은? 가까이 오면 피합니다. 길가다 마주치면 최대한 티 않나 게 멀리 피해서 갑니다. 물론 어렸을 땐 그들이 조금 무섭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무섭지는 않습니다. 무서워서 피한다
8월 16일 카페커몬즈가 수유너머N에 방문했습니다. ‘비노동과 생존의 정치’라는 주제로 워크샵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도 이 자리에서 ‘공동성은 어떻게 형성되는가’라는 짧은 글을 발표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은 개인이 집단에 합일이 되는 것이 아니라면, 각각의 개인들은 어떻게 공동성을 형성할 수 있는가, 였습니다. 우리가 무엇에 의지하지 않는, 무엇에 의해 규정될 수 없는 것으로써 공동체를
지난 주 예비군 훈련을 다녀왔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지루하고 소모적이기 짝이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무기력하게 이리저리 훈련장 순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뜩 잊고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폭약 냄새에 관한 기억입니다.
지난 메이데이 총파업은 정말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거리를 멈추고, 도시로 나가자!”라는 슬로건 아래 이질적인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각자의 목소리를 마음껏 내고, 또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는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누구는 거기서 수백 명에게서 수만 명 이상의 힘을 보았다고 했고, 누구는 기존의 감각과 사고를 전환케 하는 새로운 힘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무언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질 때 사람들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5월 1일 400여명의 청년들이 총파업을 선언하며 거리로 나왔을 때, 이들과 마주한 사람들의 얼굴이 그랬다. 비정규직, 백수, 알바생, 장애인, 대학생, 예술가, 성소수자, 생태운동가 등이 모여 총파업을 한다? 사람들은 노동조합이 아닌 이들이 총파업을 한다는 사실에 벙쩌했고, 무언가 하나로 환원되지 않는 이들이 모였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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