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01월

Releases

  • 손은 때로 그 사람의 또 다른 얼굴과 인생을 축약해 보여주는 의미로서의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5년 전 통영에서 90세에 개인전을 준비하시는 전혁림 선생님 작업실을 방문해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온통 주변이 물감투성이인 곳에서 먹고 자는 시간만 빼놓고 붓을 놓지 않고 작업에 열중하는 老화가를 보면서 그 열정과 투혼이 보면서도 믿기질 않았습니다. ...
  • 은유 in 올드걸의 시집 2010-01-20
    15층 부엌 창문을 통해 내려다보이는 단지 풍경이 아름답다. 오층짜리 아파트 자주색 지붕이며 놀이터며 주차장 자동차며 동산의 소나무, 그리고 건너편 용왕산까지 하얀 눈 수북하다. 근하신년 연하장에서나 보았던 비현실적인 그림이다. 지붕에 눈을 태운 163번 버스도 토마스기차처럼 느릿느릿 지나간다. 우리 아파트 옥상에도 눈이 덮여있겠지. ...
  • 편집자 in 씨네꼼 2010-01-20
    암에 걸린 엄마와 마지막을 지키는 딸의 이야기를 그린 <애자>는 서사만으로 보면 참 매력이 없는 영화이다. 암에 걸린 환자가 젊은 것도 아니요, 선남선녀의 애틋한 사랑이 나오는 것도 아니니, 불치병 신파 치고도 감상 포인트가 없어 보인다고 할까? 어쩌면 상업영화로 개봉관에 걸리는 것은 고사하고, TV 베스트극장용으로도 만들어지기 어려웠을 것 같은 밋밋한 이야기가 아닌가? ...
  • 고등학교 2학년 네 개 반의 문학 수업을 맡고 있다. 수업하기가 유독 힘든 반이 있다. 이 반 수업시간이면 막막한 느낌이 들었다. 무기력하게 앉아 있는 아이들, 어떤 활동을 해도 반응이 없었다. 교실이라는 광장에 몸을 내맡긴 것 같지만 개인마다 자기만의 방 속에 스스로를 가둬버린 느낌이었다. 더 이상 표정의 변화도 없이 밀납된 채로 ...
  • 일처리가 더뎌져 약속시간에 늦을 듯하다. 서둘러 지하철을 탔다. 갈아탈 부평역까지는 얼마를 더 가야 한다. 책을 폈다. <조선 지식인의 서가를 탐하>. 요모조모 생각하며 그제부터 들고 있다. 주머니에서 연필을 꺼내 줄을 치고, 메모도 했다. 그래, 서산대사는 명종의 어머니 문정왕후의 후원을 받은 보우가 등장하여 실시했던 승과(僧科)에서 수석 합격했었지. ...
  • 담담 in 백수 건강법 2010-01-20
    건강정보들이 넘쳐난다. 컴퓨터 모니터 어느 블로그에서, TV 아침프로에서, 누구누구의 입소문에서 이렇게 이렇게 하면 좋다라는 식의 정보들. 그러나 한 번 보고 그 순간에는 ‘아. 그렇군’ 정도에서 멈춰 버린다. 한 번 듣고는 자신의 삶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들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는 건강에 대한 관심이 부족해서만은 아니다. 오히려 건강, 웰빙에 대한 관심은 ...
  • 달팽이 공방에서 띄우는 첫 소식인 만큼, 먼저 달팽이 공방이 어떤 곳인지 짧게 소개할게요. 한 일 년 전쯤인가 지금의 수유너머 남산 카페에서 긴 겨울 바느질이라도 하며 보내자고 몇몇 사람들과 바느질 동아리를 시작했었죠. 바늘 쌈지, 블라우스, 덧신, 기저귀 가방, 이불보, 대안 생리대등 각자 만들고 싶은 걸 만들며 카페 한자리를 차지하고 조금은 수다스러운 시간을 보냈었습니다. ...
  • 편집자 in 매이데이 2010-01-20
    너 이름은 ‘매이데이’, 컨셉은 정신분석적 관점으로 쓰는 육아 일기, 어때? 글쎄, 워낙 ‘모범적인’(?) 아이라 색다른 얘기가 없을 것 같은데. 왜, 재미있을 거 같은 데, ‘매이데이’, 써봐! 이렇게 해서 위클리 수유너머의 사람과 사물의 이야기의 한 코너를 매이 이야기로 채우기로 했다. 순전히 이름 때문이다. 확 땡기는 이름 찾기가 어디 쉬운가? ‘매이데이’, ‘매이의 날(들)’. ...
  • 삶의 절실한 문제에 직면했을 때, 스승의 가르침이나 친구의 조언을 통해 그 해답을 구하고자 한다. 또는 평소 애독하는 책을 다시 펼쳐 먼 옛날의 친구에게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실패에 직면한 어떤 이들은 이 모든 행위들의 무용함을 주장하기도 한다. 책을 많이 읽어도, 강의를 많이 들어도 자신의 삶에는 변화가 없다고. 그러나 글과 말을 탓하기 보다는 ...
  • 편집자 in 수유칼럼 2010-01-20
    전에 일본의 시인이자 혁명가, 사상가인 타니가와 간(谷川雁)은 자신이 활동하던 큐슈(九州)를 ‘도마뱀의 머리’라고 지칭하면서 혼슈(本州)포함한 일본의 북부지역, 다시 말해 도쿄를 비롯해 일본의 중심이라고 간주되던 지역을 ‘도마뱀의 꼬리’라고 지칭한 적이 있다. 촌구석의 지방인 큐슈가 새로운 일본 역사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의미에서 그랬던 것일 게다. ...
  • 헌정문집 는 ‘작가선언 6·9’의 두 번째 책이다. 지난해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급작스런 죽음을 접한 후 우리는 한동안 충격의 시간을 견뎌야 했다. 그 충격의 정체와 기원이 정확히 무엇이었는가는 기억나지 않는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총체적으로 상실된 시대를 살아야 하는 황량함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고, ...
  • ‘용산역’이 ‘용산참사역’으로 변한지 1년이 흘렀다. 삶을 통째로 빼앗긴 그들은 삶이 와해된 바로 그 자리에서 억척스럽게 살아냈다. 시커먼 연기 머금은 남일당 건물은 분향소로, 고 이상림씨가 운영하던 레아호프는 커피향 그윽한 카페이자 갤러리와 미디어센터가 들어선 복합문화공간으로, 고 양회성씨 가게였던 삼호복집은 유가족 살림집으로, ...
  • 편집자 in Weekly 2010-01-20
    | 기획: 동시대반시대 | 메트로폴리틱스 – 서울을 어떻게 재개발할 것인가 _ 고병권
    전선인터뷰 – 박도영 설치미술가 _ 은유
    문인300명, 우리시대 슬픈 자화상 그리다 _ 고봉준 | 수유칼럼 | 왜구들의 ‘동아시아’를 위해 _ 이진경 | 매이데이 | 탄생의 신비 _ 매이 아빠 | 돌에 새긴 이야기 | 독락(獨樂) _ 고윤숙 | 달팽이 공방 | 신년계획을 세우며 _ 졸린 달팽이 | 백수 …
  •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년 전, ‘대테러전쟁’에 투입되는 경찰 특공대가, 더 이상 밀려 올라갈 곳도 없는 철거민의 망루를 공격했다. 농성이 시작된 지 겨우 25시간 만이었다. 강력한 폭발과 거대한 화염. 누군가 ‘여기 사람이 있다’고 외쳤지만 거기 있던 ‘사람’은 결국 ‘숯’이 되고 말았다. 지난 9일, 그러니까 철거민들이 망루에서 타 죽은 지 꼭 355일이 되던 날, 장례식이 엄수되었다. ...
  • 네 사람이 구부정하게 서 있다. 머리모양과 차림새가 비슷하다. 서로 모르는 사이는 아니지 싶다. 서 있는 곳은 경작지로도 보이고 뒤로 흐릿하게 나무 형상이 있는 걸 보아 어느 들판인지도 모르겠다. 그림자를 보니 대낮이다. 사진을 찍은 사람은 정오 무렵에 이들을 만나거나 불러낸 모양이다. 둘의 시선은 카메라를 향하고, 둘은 카메라의 시선을 피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