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호

Releases

  • Agamben
    정치란 지오르지오 아감벤(G. Agamben)에게 있어 기본적으로 삶 내지 생명과 관계된 것이다. 미셸 푸코 이래로 근대정치를 생명의 정치로 부르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아감벤의 시각에서 보자면 우리는 고대로부터 서구 정치 일반이 생명의 정치 내지 삶의 정치였다고 말할 수도 있다. 서구에서 정치란 기본적으로 권력과 삶이 마주치는 장소에서 정의되어왔기 때문이다.
  • ‘전전반측輾轉反側’이라는 말이 시경 「관저關雎」에서 나왔다. 아니 도대체 왜! 밤에 잠이 안 온다는 것일까. 하루종일 고달프게 일한 사람에게는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다. 낮에 빈둥거리고 놀기만 하니 밤에 잠이 안 오는 거 아냐? 아니면, 요즘처럼 날씨가 무더워서? 하지만 이 시에서 전전반측하는 건 백수의 직업병도 아니고 열대야 때문도 아니다. 그리움 때문이다. 어디에 있을까 나의 반쪽은? 군자는 요조숙녀를 찾아 헤맨다. 그러나 짝 만나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찾아도 만나지 못하니 밤새 잠 못 들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이 시에서 전전반측은 이렇게 짝을 만나지 못한 싱글의 고독한 몸부림이다.
  • 박경석 in 수유칼럼 2010-08-03
    시설에서 수십 년 살아왔던 뇌성마비 중증장애인이 큰맘 먹고 시설에서 탈출하려 한다.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야했던 시설이 아니라, 험난할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선택과 결정이 자유로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부푼 희망을 안고 탈출을 꿈꾸고 있었다.
  • 27sp01
    최근 아동성폭행 문제로 온 사회가 들썩 거린다. 비분강개 속에는 애들에게 성폭행을 하다니, 어쩌다 사회가 이 지경이 되었냐고 개탄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아동성폭행이 최근에 생겨난 일이거나 갑자기 늘어난 현상은 결코 아니다. 80년대 중반에 가톨릭계 여고에 다녔던 나는 30살 정도의 수녀 선생님으로부터 들었던 말씀을 똑똑히 기억한다. 수녀님은 요즘 여학생들이 성에 대해 일찍 눈을 뜨고, 음란한 말들을 입에 담는다고 개탄하면서 “세상에 국민학생 여자아이가, 공원에서 오빠들이 빤스를 벗기고 음부를 만졌다”는 ‘말을 하더라’며 “우리 학생들 중에는 그런 (발랑 까진)아이들이 없기 바란다”는 당부를 했다.
  • 이번호 동시대반시대 주제는 화학적 거세입니다. 원래 명칭(성폭력범죄자의 성충동 약물 치료에 관한 법률)을 두고도 다들 ‘화학적 거세법’이라고 부르는 것은 ‘거세’라는 단어가 주는 복합적인 느낌 때문일 것입니다. 성폭력에 응당한 ‘성적 보복’이라는 느낌도 있고, 그런 정신이상자는 ‘씨를 말려야’ 한다는 인종개선의 느낌도 있고, 사회를 위태롭게 하는 무리의 ‘기세를 꺾어놓겠다’는 위협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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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몇 달 동안 끔찍한 아동 성범죄가 계속 보도되면서 범죄자에 대한 대중의 증오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어린 여학생을 성폭행한 후 무참히 살해한다든지 겨우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을 학교 안까지 들어가 납치 성폭행을 한다든지, 연일 방송되는 엽기적 범죄 행각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세상이 도대체 어찌되려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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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에 처음으로 교육실습생을 지도했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 동안 가르쳤던 제자였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 나는 그의 담임교사였다. 그는 국어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었다.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도 따뜻함, 유쾌함을 간직하는 그를 보면서 그와 만나 함께 배움의 장을 만들어갈 아이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꿈대로 국어교육과로 진학했고 작년 내가 있는 학교로 교육 실습을 왔다. 그가 교육실습을 마치고 떠나던 날, 『행복한 인문학』(임철우 외 지음, 이매진)을 선물했는데 속표지에 위와 같이 적었다.
  • 0729-045
    지난주에 여강만필의 필자로 계시는 김융희 선생님 댁에 다녀왔습니다. 함께했던 멤버들은 병권, 은유, 단단, 꼬기, 그리고 유나, 서형으로 모두 수유너머R의 식구들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행을 갔던 것이 언제였는지... 잘 기억도 안 납니다. 별로 바쁘게 살았던 것도 아닌데 어쩌다보니 그리 돼버렸습니다. 아무튼 오랜만에 여행을 간다는 생각에, 그것도 산 좋고 물 맑다는 강원도 연천에 갈 생각을 하니 마음이 한껏 부풀었더랬죠...
  • md03
    매이아빠 in 매이데이 2010-08-03
    매이가 처음으로 차별을 경험했다. 매이를 아주 예뻐하는 매이의 사촌언니 생일이었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함께 저녁을 먹고 거기서 준 할인권을 이용하러 근처 커피숍에 갔다. 테이블 별로 할인혜택을 받으려고 두 테이블에 나눠 앉아 주문도 따로 했다. 우리 식구는 커피와 주스를 시켰고 옆 테이블의 언니네 식구는 음료수와 함께 커피 전문점에서 따로 구워 파는 빵을 주문했다. 종업원이 옆 테이블에 빵을 주고 돌아가자 매이가 왜 우리 테이블에는 빵을 안 주냐며 깜짝 놀라 소리치는 것이다. 저건 주문한 사람만 주는 거고 우리는 안 시켰다고 얘기했지만, 주문에 따라 다르게 나오는 자본주의적 생리를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매이는 계속 캐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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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를 보고 있자면 이게 정말 40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란 말인가 하고 뜨악하게 된다. 끊임없이 난무하는 폭력과 지나치리만큼 자세한 강간장면 등 각종 폭력이 종합세트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물론 순전히 폭력의 강도만을 놓고 보면 더 자극적일수록 상품가치를 높이는 오늘날에는 더 한 것도 왜 없겠느냐마는, 우리가 생각하는 도덕과 사회를 유지시키는 최소한의 기초에 무지막지한 폭력을 휘갈긴다는 점에서 보면 는 진정 폭력적이라 할 만하다...
  • 27mg01
    내가 어릴적 집뜰이 선물로 주로 하던 양초나 성냥은 이제 주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광경이 되었고 전기가 나갔을때도 필요했던 비상품목 양초에 대한 여러 가지 기능들이 있지만 무엇보다 사람들과의 소통과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을주는 초를 난 좋아한다. 가끔 여성성이 강하다고 느껴지는 난 어둠속에 초를 켜놓고 그 향과 빛에 황홀한 기분을 만끽할때도 있다. 2년전 문화살롱 공을 만드는데 계기를 만들어준 사람이 있었다.
  • 276_이웃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정신분석학은 신학적이고 가족주의적이다. 정신분석학은 세상을 ‘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사랑으로 유지되는 가족 질서로 본다. 욕망의 원초적 금지자로서의 아버지, 욕망의 원형적 대상으로서의 어머니, 아버지의 법을 내면화한 아들(남자)과 그것을 선망하는 딸(여자)로 구성된 외디푸스적 가족. 이 가족주의적 신학의 구도는 정치적으로 주권-사법적 질서로 구현된다. 아버지는 대지에 노모스(율법)를 선포하는 주권자이며, 어머니는 법에 포획된 대지의 삶이고, 아들(남자)은 법 바깥으로의 추방을 두려워하면서 법 안에 포획된 신민이며, 딸(여자)은 법의 경계에 있기에 법 안쪽을 선망하는 자유민이다...
  • 1007-003
    은유 in 동시대반시대 2010-08-01
    자기에게서 멀리 떨어질수록 자기에게로 가까이 간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자기가 속한 사회에서 벗어나야 자기 자신을 냉철하게 관찰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존재의 비밀을 확대해보면 한 사회에도 해당된다. 한국에게서 멀리 떨어질수록 한국에게로 가까이 간다. 박노자를 보면 그렇다. 그는 러시아에서 태어나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귀화 지식인이다. 한국에서 정규직 취업이 되지 않아 노르웨이로 건너가 오슬로국립대학 한국학 교수로 일한다. 대표적인 저서 『당신들의 대한민국 1, 2』는 지금까지 20여만 부가 팔려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이밖에 지난 십년 간 저술과 강연을 통해 드러난 사유의 편린을 꿰어보면 한국사회와 물샐틈없이 밀착한 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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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유 in 올드걸의 시집 2010-08-01
    나를 키운 8할은 오빠들이다. 열아홉 이후에는 늑대소굴에서 살았다. 그들을 남자로 보았을 리 만무하다. 사랑과 우정사이에서 갈등을 일으킬 여지도 없었다. 성적인 것에 무지했다. 순결이데올로기가 내면화된 줄도 모른 채였다. 당시 내게 남자란 이성理性. 다른 성별이 아니라 합리적 존재였다. 같이 있으면 말도 통하고 배우는 것도 많고 즐거웠다. 좋은 사람의 좋은 기운에 끌렸고 그들도 나를 국민여동생처럼 예뻐했다...
  • 중세 별자리와 연관시켜 몸을 사유하는 방식(왼쪽)과 해부학이 발전하면서 해부학적 시선으로 몸을 사유하는 방식(오른쪽) 몸을 사유하는 방식은 시간, 공간이라는 장소성(topos)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담담 in 백수 건강법 2010-07-27
    자, 이제 신(腎)까지 했으니 오장을 마쳤다. 헥헥. 나도 힘들다. 물론 이런 딱딱한 글을 읽는 분들은 더더욱 힘드셨을테지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호는 좀 쉬도록 하자. 절대 쓰기 귀찮아서, 노느라고 시간이 없어서 그런거 아니다!! 그래서 이번호에서는 지금까지 읽히지도 않는 글들 읽느라 고생하셨을 독자 제위들을 위해 말랑말랑, 알콩달콩 건강 다이제스트를 소개하겠다라고 하면 거짓말이고. ㅡㅡ^ 그런 것 기대하지 마시라. 하여튼, 다들 까먹고 계실테니 다시 한 번 기초 초식 하나 검토하고 넘어가자. 어찌보면 인간은 망각에 관한 한 상습범일지도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