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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뉴욕 주지사 넬슨 록펠러 —재벌 존 록펠러의 손자이다—가 마약사범을 가혹하게 처벌하는 “록펠러 마약법”을 통과시킨 것을 기점으로 1980년대에 들어서며 ’법과 질서‘라는 구호아래 주기적으로 등장하는 ”범죄와의 전쟁“, 특히 레이건 때 이루어진 ”마약과의 전쟁“은 흑인들을 향한 선전포고와 다름이 없었다. 판결에 있어서 판사의 재량을 인정하지 않고 의무적으로 형량을 강요하는 규정(manda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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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국가의 등장 그리고 전개와 괘를 같이 하는 경찰은 군대와 함께 근대국가에서 폭력을 담당하는 2대 조직의 하나이다. 군대가 외부의 적으로부터의 자국민 보호 내지 외적의 섬멸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외부를 향해 폭력을 행사한다면 경찰은 내부의 치안을 담당하고 범죄 예방과 처벌 등을 목표로 하는, 비슷한 듯하면서도 상당히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기관이다. 군대의 폭력이 외부의 적을 향한 노골적인 성격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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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때문에 매일 근 백 명의 사람들이 죽어가도 수정헌법 제 2조에 명시된 총기소유의 권리는 제 1조에 규정된 민주주의의 근본원리인 언론과 종교, 출판의 자유와 동급의 취급을 받는다. 수정헌법의 처음 10개 조항은 ‘권리장전’으로 불리며 건국 초기에 일괄 수정된 것으로 최초 <헌법>의 일부처럼 인식되기에 다른 수정헌법 조항들보다 그 권위가 더 높다. 하위법으로 총기 소유에 부분적 제약을 가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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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국가’는 전근대적 질서의 표상인 왕의 목을 자르는 상징적 ‘부친살해’를 감행하며 탄생하였다. 그렇게 국가는 구성원들의 무한한 희생을 요구하는 궁극적 ‘절대 공동체’로 등장하였다. 그러나 길어야 몇 세기를 넘지 못하는 근대국가의 오래지 않는 기원은 근대국가의 절대성을 위협하는 근거가 된다. 절대성이란 시간을 초월하는 것이기에. 근대국가가 여전히 신화적 힘에 의존해 자신을 신비화하고 그 유구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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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에 어김없이 들어서는 군사기지는 건설 첫 단계 정지작업에서부터 해당지역을 밀어버리며 그 지역 주민들의 삶과 공동체의 물리적 기반을 완전히 파괴시켜 버린다. 그리고 부대가 들어서면 훈련과 포격 등으로 인한 엄청난 소음과 위험 그리고 재산피해, 중금속과 독극물, 발암물질, 나아가 심하면 핵폐기물로 만든 열화우라늄탄 등에서 나오는 방사능에 의한 심각한 오염은 물론 매매춘과 성폭행 등의 범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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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힘을 얘기할 때 흔히 ‘소프트 파워’와 ‘하드 파워’로 나눠 얘기한다. 우리 표현으로 文과 武에 해당하는 이런 구분에서 군사력은 후자를 대변한다. 군사력은 흔히 땅과 연결된 육군의 이미지로 연상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도 해양을 지배한 세력이 제국주의 국가가 되어 세계를 지배해온 것을 봐도 바다를 지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그리고 해군은 직접적인 군사적 지배의 중추적 역할은 물론 자국의 상선보호 그리고 군사적 위협의 수단으로 이용되며 경제적 지배도 뒷받침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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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미국은 근대국가의 외형과 시스템을 갖췄지만 중세적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나라 같다는 생각을 한다. 아직도 진화론보다 천국과 지옥의 존재 그리고 성모 마리아의 처녀잉태를 믿는 나라, 정교한 정치체제를 가지고 있지만 제대로 된 진보정당 하나 없는 나라, 전국민보험 같은 기본 사회보장 정책도 가지고 있지 못한 세계 최강대국. 미국을 좀 아는 사람들은 왜 미국은 외형과는 달리 왜 이렇게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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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은 아니었지만 존 뉴튼(John Newton 1725-1807)의 신앙과 삶에 대한 자신의 회고와 후세의 전기적 서술 그리고 신학적 해석은 서구역사가 노예제를 어떻게 단절된 과거의 일부로 ‘정상화’하여 결국 그것을 다루는 것을 회피하는 지를 잘 보여준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애창되는 곡의 하나로 민권운동과 반전운동에서도 널리 불렸고 한국에서도 “나같은 죄인 살리신”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널리 불리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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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들은 가축처럼 “사육”되다가 매매되었고 성적 대상물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호기심 어린 시선의 대상, 구경거리로 전락하기도 했다. 19세기는 진화론의 등장과 함께 근대적 의미의 동물원, 박물관들이 생겨나고 박람회(엑스포)가 유행하기 시작하며 많은 것들이 당시의 지식체계에 따라 분류되고 또 스펙터클의 대상이 되는데 검은 피부의 불행한 영혼들도 백인들의 성적, 과학적, 이국적 호기심의 대상이 되어 이 분류와 전시의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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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칭과 같은 날 폭력이던 생체실험이나 단종과 같은 과학의 이름을 빈 폭력이던 이런 행위들이 큰 저항 없이 행해져 온 배경에는 ‘노예제’라는 미국의 원죄의 하나가 자리하고 있다. (또 하나의 원죄는 원주민 대규모 학살인데 참 원죄가 둘씩이나 되는 나라가 미국이다.) 노예제라는 폭력에 기초한 비인간적 제도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원초적 경제기반이었을 뿐만 아니라 패권주의와 인종차별주의 등 미국이 안팎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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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생학은 20세기 초의 세계적 조류였고 1907년에서 30년대 초까지 미국 각주에서 단종법이 시행되던 시기는 전 세계적으로 단종법이 널리 채택되던 시기이기도 하다. 20년대 말 캐나다, 덴마크, 스위스 그리고 30년대에는 독일, 스웨덴, 핀란드 그리고 아일랜드 등 다수의 국가가 단종법을 제정하여 70년대까지 유지한다. 이런 세계적 추세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사실은 미국이 나중에 유태인 대량학살로 이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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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에서 다룬 ‘생체실험’이 사회적 약자-고아, 빈민, 수감자, 신체정신 질환자, 그리고 다른 인종을 과학적 실험의 대상물로 삼는 근대적 폭력의 실천 양상이라면 ‘우생학’(Eugenics)은 이런 인간의 ‘우월성’과 ‘열등성’을 유전적으로 규정하고 우월한 인간을 증가시키고 열등한 인간을 고립, 도태 나아가 제거함으로써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체계적 지식으로서의 유전학은 단종과 생체실험 그리고 극단적으로는 대량학살과 같은 약자에 대한 폭력을 합리화하는 과학적 근거이기도 하다. 나치의 우생학에 입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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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유키) 일본에서도 공동체운동은 많이 있어왔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시골에 들어가 공동체를 만드는 방식이며, 연구활동을 새로운 삶의 방식과 결합시킨 예는 전무하다. 그런 점에서 ‘수유너머’는 상당히 인상적이다. 한국에서의 코뮨 운동의 역사와 지금 진행되고 있는 운동에 대해 좀 더 얘기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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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6일 추장의 뉴욕대학(NYU) 동아시아 학과 초정 강연이 있었다. 일전 <래디컬 필로소피>(Radical Philosophy) 주최의 동명 학회에서 마주친 미국 일본학의 원로 하루투니안(Harry Harootunian, NYU, 콜럼비아 대) 교수가 추장에게 ‘수유너머’에 대한 소개를 해달라는 청을 했었고 유키코 하나와(Yukiko Hanawa) 교수가 정식으로 초청하여 이루어진 세미나 형식의 강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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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칼럼에서 다룬 린칭이 힘의 과시를 위한 적나라한 “중세적” 폭력의 스펙터클이었다면 인간의 몸을 실험의 대상으로 삼은 생체실험은 지극히 정교한 “근대적” 폭력이다. 린칭이 특정 그룹의 사람들-사회의 다수자인 백인집단-이 소수자에게 극단적 물리적 고통을 가하고 생명을 앗아감으로써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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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뉴욕을 방문한 일군의 일본 운동가들로부터 후쿠시마 원전 파괴로 인해 빚어진 비극에 일본인들이 어떻게 대응하며 살고 있는지를 듣고 같이 얘기를 나눠볼 기회가 있었다. 일본출신 뉴욕 운동가 사부 코소(Sabu Kohso)와 유코 토노히라의 주선으로 이루어진 이번의 방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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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을 만들지 않는 빛은 없다. 빛은 밝게 비춤과 동시에 그 밝음을 드러내는 어둠도 만들어 낸다. ‘역사의 빛’도 마찬가지다. ‘근대’는 빛으로 다가왔다. 근대를 대표하는 ‘계몽(啓蒙 enlightment)’이란 말은 ‘밝음을 여는 것’(啓明)이었고 빛의 은유는 자신의 어둠을 과거의 어둠으로 감추고 (중세 ‘암흑’시대!) 자신을 빛으로 그리고 자신의 빛으로 형상화된 역사의 모습을 역사의 총체로 강요하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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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시 인근에 있는 ‘쿠퍼버그 홀로코스트센터’ 서양의 비극을 대표하는 홀로코스트와 아시아의 비극을 상징하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만났다. ‘센터’에서 ‘위안부 추모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에서 영감을 얻은 예술가들과 할머니 자신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으며 조만간 할머니들의 몇 분을 초청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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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나라”로 인식되고 “지상낙원”에 근접한 나라로 여겨지던 북유럽의 노르웨이에서 한 백인 기독교도가 일으킨 참혹한 대량학살은 많은 이들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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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의 ‘고공투쟁’이 무려 200일을 넘어섰다. 시작은 대책 없는 싸움이었다. 그의 뜻을 잇는다는 ‘김주익’이 그가 김진숙에 앞서 같은 싸움을 짧지 않은 기간(129일) 해왔음에도, 그리고 그의 비극적 죽음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그와 저 세상 길을 같이한 ‘박창수’ 그리고 ‘곽재규’가 최근까지 낯선 이름이었다는데서 그 싸움의 대책없음과 그 대책없는 싸움을 기꺼이 이어받은 김진숙의 결기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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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며불며 매달리던 첫사랑을 뒤로 하고 수배중인 친구로부터 독재의 개 노릇 잘하라는 악담을 들으며 정말 개처럼 끌려간 군대에서 마주하게 된 것은 사납고 거친 한 무리의 ‘군바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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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5월이 저물었다. 5.16 그리고 5.18. 5월이 일깨우는 과거사 가운데 19년을 사이에 두고 대척점에 서서 한국 근대사를 뒤집어 놓은 두 사건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악몽처럼 또다시 우리의 집단 무의식에서 호출되어 우리의 의식 속에서 되뇌어진다. 이 고통스런 되새김질은 우리에게 ‘민주주의’란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법’이란 무엇인가라는 사회정치적 질문과 다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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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9/11과는 얽힌 기억이 적지 않다. 대만에서 친구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방문했을 때 그들과 같이 쌍둥이 건물에 오르기도 했고, 사건이 발발했을 당시에는 뉴욕시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살며 근처 대학에 적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십년 전 일이라고 개인적 기억이 좀 있다고 해서 그것을 ‘추억한다’는 것은 이 비극을 섣부른 낭만화하는 것으로 들릴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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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은 우리 시대의 화두이다. 한 사회를 가르는 온갖 장벽들--계급, 학력, 지역, 성별 등을 넘어서 이만큼 두루 공감대를 이루는 의제도 드믈 것 같다.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살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생명 개체 일반의 본능적, 보편적 욕구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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