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03월

Releases

  • 편집자 in Weekly 2010-03-31
    | 편집자의 말 | 노근리라고 쓰고 대추리라고 읽는다 _ 은유 | 동시대반시대 | 소식 _ 현민
    검찰청 호송버스 타러가던 날 _ 날맹
    새로운 시작을 위해 _ 영상: Idaq
    총 안 쏘면 감옥 가는 세상 _ 동욱
    < 방문자>, 병역 거부자에게 구원받은 386운동권 _ 박정수 | 수유칼럼 | 새롭게 질문하기 _ 최정은 | 매이데이 | 호모 루덴스 _ 매이 아빠 | 여강만필 …
  • 안나푸르나에서 트래킹을 하는 동안에는 매일 묵는 곳이 바뀐다. 로지에 도착하자마자 짐도 풀기 전에 식사부터 주문한다. 시간이 제법 걸리니까. 밥이 나오는 동안 샤워를 하면 말끔하련만 그게 쉽지 않다. 추워서 옷을 벗으려면 결심이 필요한 데다 따뜻한 물로 샤워하려면 나무 두 그루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다. 개중에는 낮에 비축해둔 태양열로 물을 데우는 곳도 있다. 상쾌함과 자연보호 그리고 추위를 두고 타협을 벌인 결과 샤워는 사흘에 한 번 꼴이다. ...
  • 노근리라고 쓰고 대추리라고 읽는다

     

    <작은연못> 시사회 날. 친구 따라 극장 갔다. 일전에 얼핏 들었다. 노근리 사건에 관한 영화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대추리 사건을 다룬 작품으로 알고 갔다. 친구가 그랬을 리 없다. 내 머릿속 편집기 소행이다. ‘노근리’를 ‘대추리’로 접수한 것이다. 극장 안. 무대인사 차 올라온 제작자가 말했다.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에 맞춰 영화를 개봉하게 됐습니다.” 그 순간 왜곡됐던 기억이 재빠르게 돌아왔다. “아! …

  • 2010년은 쇼팽(Frederic Chopin: 1810-1849)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래서 쇼팽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쇼팽 컬렉션 CD가 발매되고 기념 음악회가 열린다. 그리고 KBS클래식FM(93.1㎒)에서는 탄생일인 2월 22일 오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5시까지 기존 편성을 대신해 약 20시간 동안 쇼팽의 전곡을 방송하는 특집 '아이 러브 쇼팽(I love Chopin!)'을 마련했다. ...
  • 담담 in 백수 건강법 2010-03-31
    이번에는 호흡하는 법에 대해서 알아보자. 동의보감 신형(身形), 정(精) 다음편이 무슨 편인지 아시는가? 그렇다. 기(氣)다. 기란 무엇인가? 음.. 뭐랄까.. 기는 뭐라 정의하기 힘든 무언가다. 그게 말이여, 당나귀여? (추노 방화백 목소리로 해야 하는데. 전달이 될라나..ㅡㅡ;) 하여튼, 기는 설명하기 힘든 무언가다. 기를 서양어로 번역할 때, 흔히 에너지(energy), 공기(air), 숨결(breath), 에테르(ether), 물질적 힘(material force), 살아있는 힘(vital force) 등등으로 번역들을 한다. ...
  • 장찢고 하이킥을 연재하던 현민은 지난 3월 12일 영등포 구치소에 수감되었습니다. 아래 영상은 그날 아침 현민과 그의 친구들의 만남을 짧게 기록한 것입니다.
  • 양평군 지평면 곡수리에는 두 자녀를 두고 조각을 업으로 평범하게 살아가는 조각가가 있습니다.하지만 면면을 살펴보면 그렇게 평범하지는 않는거 같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을 인도로 가 명상과 공동체생활,히피로 떠돌며 자유로운 영혼을 갈구하며 살았고 인도로 여행온 일본인 부인과의 운명적만남, 다시돌아온 한국에서 작업을 하겠다고 자리잡은곳이 여주산골짜기에 컨테이너박스. ...
  • 매이 낳고 얼마 안 있어 아내가 해 준 얘기가 있다. 지금은 대학생이 된 아내의 조카가 지금의 매이보다 조금 더 어렸을 때 일이란다. 만두를 먹다가 속이 너무 매워 뱉어 버렸는데, 옆에 있던 어른들이 “다음부터, 얘, 앙꼬는 빼고 줘라”고 했다. 그 이후 그 조카는 모든 음식의 ‘앙꼬’는 먹지 않겠다고 했다. 호빵의 앙꼬는 물론, 김밥의 앙꼬도, 호두과자의 앙꼬도 달걀의 앙꼬도, 참외의 앙꼬도 ...
  • 김융희 in 여강만필 2010-03-31
    몸의 불편으로 며칠을 꼼짝없이 엎치락거리며 지냈다. 의사는 크게 우려할 중병이 아니라지만, 견디기엔 고통이 너무 크다. 거동이 불편하다보니, 먹고, 만나도 보고, 걷기도 하고, 여러 하고 싶은 것들이 많다.
  • 장사익의 노래 은 모성의 지극함을 보여준다. 꽃구경 가자는 말에 입이 헤벌어져서 아들 등에 업힌 노모는, 숲속 깊숙한 곳에 들어서자 꽃구경이 그냥 꽃구경이 아님을 직감한다. 노모는 순간 너무 놀라 말을 잃고 눈조차 감아버린다. 하지만 곧 정신을 추스르고 아들을 위해 솔잎을 따서 길에 뿌린다. 헨젤과 그레텔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빵조각을 뿌렸듯이, 노모는 아들의 귀환을 염려하며 솔잎을 뿌린다. ...
  • 얼마 전 세상을 놀라게 한 부산 여중생 납치 살해 사건이 있었다. 이제 막 중학생이 된 소녀에게 일어난 끔직한 사건, 물론 김길태는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이 사건 직후 성폭력과 관련한 수많은 논쟁이 이어졌고, 급기야는 성폭력과 성매매의 연관성에 대한 기사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3월 11일자 중앙일보 사설에는 우리 사회는 남자들의 성욕에 지나치게 관대하다면서, ‘홍등가가 여염집 규수의 정조를 지킨다’ 는 엣 말을 떠올리며, 가난하고 소외된 젊고 늙은 남자들이 적당한 가격에 성욕을 해결할 곳이 없어졌다고 개탄했다. ...
  • 총 안 쏘면 감옥 가는 세상

    현민형이 병역거부 선언을 했다. 예정대로라면 입대를 해야 하는 날, 그는 홍대 근처의 조그만 카페를 빌려 입대 대신 몇 명의 기자들과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들을 불러놓고 자신의 결심을 털어놨다. 얼마 전까지도 각종 차별과 배제에 반대하며 운동권에 몸 담아왔고, 더 좋은 삶을 만들어 보려고 공부도 열심히 하던 사람이었다. 열 장이나 되는 병역거부 선언서를 낭독하면서 그는 눈시울이 …

  • 은유 in 올드걸의 시집 2010-03-31
    다친줄도 모르다가 피를 보면 이내 울어버리는 아이처럼, 난 3월 하순부터 달력을 힐끔거리면서 나를 연민했다. 3월 24일은 딸이 태어난 날이고, 28일은 아들이 태어난 날이다. 해마다 3월이 되면, 날씨도 마음도 뼛속도 스산해진다. 배위로 트럭 3대가 지나가는 것 같던 아득한 통증의 부활. 한 명이 3대씩, 총 6대가 올해도 몸 위를 덜컹거리며 지나갔다. 거기에다 새학기 스트레스가 더해졌다. ...
  • 검찰청 호송버스 타러가던 날

    한국에서 병역거부 운동이 갓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 당시 활동가들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가이드북”이라는 것을 만든 적이 있습니다. 병역거부에 대한 개념도 제대로 없던 시절, 병역거부를 고민하며 찾아오는 사람들을 상담하다보니 필요성이 제기되어서 만들게 된 소책자였습니다. 그 가이드북 안에는 입영영장이 나온 뒤 병역거부를 하고 나서의 일련의 사법절차들, 감옥에서의 생활에 관한 소개가 나와 있었습니다.

    이 가이드북이 쓰인 것도 벌써 …

  • (2005)는 으로 흥행배우 반열에 오른 강지환의 스크린 데뷰작이자, 같은 해 파키스탄 이주노동자와 촛불소녀의 사랑이라는 센세이셔널한 소재의 영화 로 이름을 알린 신동일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신동일 감독은 에 이어 두번째 작품 (2006)로 평단의 주목을 받으며 ‘사회파 감독’이라는 칭호가 얻게 되었는데, ...
  • 며칠 전 버스를 타고 가는데, 라디오에서 낯익은 가수의 노래 가사가 가슴 깊이 여운을 남긴다. 어린 시절에는 내 나이 서른 이후를 상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는 서른도 까마득한, 마흔 줄에 들어선 나이라는 게 실감이 안 날 때가 많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멋있는 연예인을 보고 좋아하다가, 어느 순간 나보다 한참 어린 나이라는 걸 알았을 때 느끼는 소스라침도 요즘 자주 나타나는 증상 중의 하나이다. ...
  • 만화를 그리는 일은 내게 무엇일까? 그건 분명 행복한 일이다. 밤을 꼬박 새워 그림을 그리고 나면 이전보다 커진 나를 느낀다. 나의 상상력이 지면 위에서 생명을 얻는 것을 볼 때의 환희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하지만, 마감시간에 쫒길 때는 피를 뽑히는 기분이다. 그보다 더한 고통은 나보다 몇 수 위의 작가들, 감탄을 금할 수 없는 작품들을 보면서 밀려오는 열등감과 싸우는 일이다. ...
  • "좋아하는 만화"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은 원고 청탁을 받을 당시에는 꿈에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 글을 쓰면서야 나는 나의 만화읽기가 하나의 '길티 플레져'였음을 깨닫고 있다. 연구자로서의, 좌파로서의, 혹은 꼬뮨주의자로서의 공적인 내 모습이 너무나 피곤하고 견디기 괴로울 때, 나는 집 앞 만화방(그 이름도 찬연한 STARBOOKS였었다.)로 달려가 목이 뻣뻣해지고 눈이 아플 때까지 만화를 읽곤 했었다. ...
  • 편집자 in 편집실에서 2010-03-24
    만화, 만만치 않습니다

    “9호는 쉬어가는 느낌으로 만화 어때?” 편집회의에서 무심코 내뱉은 말, 바로 나온 답변이 “만화가 그렇게 만만해?”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는 속웃음이 나왔습니다. 오래 전 아내에게 들었던 말이거든요. 만화 보는 일을 업으로 삼은 지금은 말할 것도 없고, 처음 사귀던 때에도-그러고 보니 거의 20년이 되어가는 군요- 아내는 만화에 빠져 있었습니다. 만화방은 아내가 저를 기다리는 장소였거나, 만나서 함께 찾아가는 장소였지요.

    연인의 손에 …

  • 편집자 in Weekly 2010-03-24
    | 편집자의 말 | 만화, 만만치 않습니다 _ 고병권 | 동시대반시대 | 이 만화를 보라!
    < 심야식당>,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은 _ 안티고네
    < 기생수>, 타자와 더불어 살기 _ 담담
    < 충사>, 부정적 현실을 살아가는 긍정의 힘! _ 죠스
    <2001 Space Fantasia, 우주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_ 기픈옹달
    < 꼴>, 생긴대로 산다? 아니 사는대로 생긴다 _ 담담
    길티한 것에 대한 예찬 – 만화방, …
  • 고대 동양의 우주관은 흔히 ‘상관적 사유(corelative thought)’라는 말로 정의되곤한다. 인간-국가-우주가 하나의 상관성으로 이어져있다는 말이다. 하늘이 둥글고 땅이 네모난 것을 닮아 사람의 머리는 둥글고 발이 네모나다는 것. 이것이 천원지방(天圓地方)의 논리이며, 하늘에 사계절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사지가 있는 것, 하늘에 오행이 있듯이, 사람에게 오장이 있다는 것이다. ...
  • 초속 30만 km, 1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도는 빛의 속도로도 저 별에 닿으려면 수십 년이 걸린다고 한다. 수십 년 뒤 우주 저편 어느 별에서 반짝이는 후레시 불빛을 발견하더라도 그 소년은 이미 지구에서는 중장년이 되어 있어있겠지. 바꿔 말하면 하늘에서 보는 모든 별들의 모습은 수십 광년, 혹은 수억 광년을 달려온 수십, 수억 년 전 과거 모습이라는 말이다. ...
  • 만화 속 벌레는 생명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존재한다. 그 종류가 무수하며 쉽게 눈에 보이지 않는 벌레들은 인간에게 두려운 존재이다. 어떤 벌레와 언제 어떻게 마주치게 될지, 또 그로 인해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화 속 인간들은 벌레와의 만남으로 인해 때로는 목숨을 잃고, 때로는 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간다. ...
  • 기생수? 워낙 유명한 만화라서 알만한 사람들 알만한 만화이긴 하지만 처음 제목을 듣는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할만 하다. 생수 이름인가? ㅡㅡ;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감이 왔겠지만 기생충할 때의 기생처럼 기생하는 동물이라서 기생수(寄生獸)이다. 이와아키 히토시(Iwaaki Hitoshi)의 작품으로 그림체가 보기에 따라서는 워낙 엉성해서(^^) 처음 보는 사람은 쉽게 손이 안가는 만화책이긴 하지만 한 번 빠져들면 몰입감이 장난 아니다. ...
  • ‘해 뜨면 일어나고, 해 지면 자고, 하루 세끼 집 밥을 먹는다.’ 이게 바로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인 아빠의 인생 철학이었다. 수능 시험을 치고 서울 신림동에 사는 언니의 자취방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 나는 고등학교 내내 아침밥을 먹고 다닌 거의 유일한 아이였다. 아빠가 오래 보관이 되는 마른 반찬을 싫어하셨던 터라, 엄마는 매 끼니마다 한 두개의 반찬을 새로 하셨다. ...
  • 편집자 in 매이데이 2010-03-24
    요즘, 매이는 자기 몸의 생산물을 과시하는 데 열심이다. 콧물이 나오면 꼭 나를 불러 “콧물!” 하며 입으로 들어가기 일보직전의 콧물을 가리킨다. 이건 약과다. 시시종종 콧구멍을 후벼 파 딱딱한 코딱지나 말랑말랑한 코덩어리를 꺼내 들이민다. 그러면서 “엄마, 이거 봐. 엄마를 위해 준비했어.” 한다. 받기만 하라는 게 아니라, 먹으란다. 얼굴을 찌푸리며 사양해도 극구 권한다. 안 먹겠다고 하면, “매이가 먹는다” 라면서. ...
  • 담담 in 백수 건강법 2010-03-24
    이번에는 수명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다. 생명연장의 꿈은 비단 메치니코프만의 꿈만은 아닐 것이다. 불로장생의 약을 구하겠다고 혈안이 되어있는 진시황들이 주변에 넘쳐나고 있으니 말이다. 인간은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죽으면 혼백(魂魄)이 남는다고 할 때 양(陽)인 혼(魂)은 하늘로, 음(陰)인 백(魄)은 땅으로 돌아간다. 즉,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혼이 날아가고 ...
  • 김융희 in 여강만필 2010-03-24
    설이 지나고 우수도 넘겼으니 멀지 않아 봄이 오겠다. 유난스러운 혹한에 봄 소식이 더욱 간절하다. 귀성객들의 나들이로 전국의 고속도로는 전쟁터 같다. 이같은 교통 상황을 매스컴은 계속 생중계이다. 별난 혹한에 폭설도 잦은 올 겨울의 기후 탓인가.
  • 눈앞에 둔 사물과 머릿속 생각 사이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다. 큰 생각은 때로 거대한 광경을 요구한다. 깎여져 내려가는 절벽을 마주하노라면 품위 없다고 느껴지는 근심이 있다. 반면 어떤 착상들은 그 광경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자연의 웅장함은 산란한 마음을 차분하게 덮어준다. 압도적인 규모는 뇌를 포화시켜 소소한 것들을 걷어낸다. ...
  • 편집자 in 씨네꼼 2010-03-24
    최근 개봉한 는 흡혈귀 SF영화의 외양을 띄고 있지만, 내용상 노골적인 반자본주의 정치영화이다. 의 흡혈귀, 냉혈한, 피에 굶주린 자들, 자신이 아닌 외부를 착취해야만 생존이 유지되는 존재는 다름아닌 ‘자본주의’에 대한 유비이다. 19세기 고딕소설를 영화화한 최초의 뱀파이어 영화 (1922) 이후 뱀파이어는 전통적인 악마의 이미지를 표상하였다. ...
  • 빵을 굽는 것은 전혀 우아하지도 않고, 설거지도 엄청 나오는 노가다에 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빵을 자신이 넣고 싶은 재료들을 넣어 직접 구워 먹는다는 일은 아주 멋진 일이지요. 구운 빵을 나누어 먹을 사람들이 있다면 더욱 좋습니다. 아무래도 나에게 홈베이킹은 무리다, 싶으신 분들에게는 세 빵집 말고 다른 빵집들에 가 보실 것을 권합니다. ...
  • 은유 in 올드걸의 시집 2010-03-24
    삼사십대 남녀 다섯이 인사동에서 모였다. 전시를 끝낸 지인의 뒤풀이 자리다. 조곤조곤 수다 떨며 와인 한잔 마시는데 마흔 지난 남자가 물었다. “내 나이에 사랑을 하는 게 좋은 거야 안 하는 게 좋은 거야.” 여자들이 개구리합창처럼 답했다. “당근 하는 게 좋지.” 능력 있음 해보라는 식이었다. 남자는 이내 도리질이다. 희생이 너무 커서 싫단다. ...
  • 글의 졸박함이란 무엇일까? 본디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 혹은 그 대상과 사건에서 이야기해야 하는 바를 가장 적절하고 절실하게 표현하는 것이지 않을까. 말하자면 글에 있어서의 골기(骨氣)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교함에만 머문다면, 뼈대를 이루고 그것을 살아 생동하게 하는 요소들이 지나쳐서, 그 본래의 졸박함 대신 화려한 미사여구로 살만 찌는 것이다. ...
  • 그때 아주 잠깐 그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 낙원이라는 게 뭘까? 낙원이든, 유토피아든, 파라다이스든, 에덴동산이든 결국 이 세상에 없는 곳을 지칭하는 거잖아. 아무런 고통이 없이 안락하고 즐겁게 살 수 있는 곳은 결국 저 세상에나 있다는 것. 그러기에 우린 끊임없이 갈 수 없는 그 곳을 동경하는 것일 테고. 어찌 보면 낙원이란 지금-여기에서 실패한 자들이 꾸는 몽상일지도 몰라. ...
  • 남녀공학인 학교로 옮겼다. 처음 발령받은 학교를 제외하면 남학교에서만 8년 동안 생활했다. 그런 나에게 여학생반 수업을 준비하는 시간은 긴장감을 주었다. 첫 시간은 책과 인연을 맺어주기 위한 수업을 준비했다. 먼저 책 제목, 저자, 출판사 이름이 적힌 제비를 만들었다. 같은 제비가 두 개씩 있어서 이를 뽑은 친구는 짝이 된다. 제비를 준비하는 동안 아이들 표정이 떠올라 마음이 설렜다. ...
  • 편집자 in 수유칼럼 2010-03-24
    사재기란 교보문고, 예스24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들기 위해 자기 출판사가 펴낸 책을, 자기 돈을 들여, 되사들이는 행위를 가리킨다. 많은 서점 중에 하필이면 왜 교보와 예스24냐고?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서 이들 서점은 서점 중의 서점, 서점의 왕으로서 출판사와 서점들 위에 군림한다. 이 두 서점의 종합 베스트셀러가 되면 그 책은 졸지에 VIB(Very Important Book)가 되고 ...
  • [nggallery id=2]…

  • 글은 졸함으로써 나아가며 도는 졸함으로써 이루어지나니, 하나의 ‘졸(拙)’자에 무한한 의미가 있다. 도원에서 개가 짖고, 상전에서 닭이 운다 함은 그 얼마나 순박한가! 차가운 못에 달이 비치고, 고목에서 까마귀 운다 함은 공교롭기는 하나 그 가운데 문득 쓸쓸한 기상이 있음을 느낀다. 몇 년 전 화서각의 첫 수업발표회를 준비하던 때의 일이다. ...
  • 편집자 in Weekly 2010-03-17
    | 편집자의 말 | 사랑하려거든 독사처럼 _ 고병권 | 동시대반시대 | 나에게 투창이 되어 날아온 문장: 규호 / 근영 / 유일환 / 최윤영 / 죠스
    스승이 필요없는 자와 스스로가 스승인 자 _권용선
    루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록 _최정옥
    사상의 원점 _윤여일
    사진으로 만나는 루쉰 _사진: 윤여일 | 수유칼럼 | 삼성은 무엇을 독점하고 있는가 _ 정정훈 | 매이데이 | 아빠, 달려! 이랴 …
  • 사랑하려거든 독사처럼

     

    지난 주 김예슬씨가 아주 상징적인(!) 대학인 고려대학교 경영대에서 ‘자발적 퇴교’를 선언했습니다. 그걸 본 순간, 스스로 ‘부스러기’를 자처하며 ‘덩어리’와의 싸움을 준비하던 70년대의 ‘전태일’이 떠올랐답니다. 물론 전태일은 조금 달랐죠. 분노와 슬픔, 어쩌면 희망까지를 끼얹어 그는 제 몸에 불을 놓았어요. 하지만 김예슬은 그런 것들을 발끝에 담아 적에게 거침없는 하이킥을 날렸다고나 할까요. 아무런 애원이나 호소, 청원이 담겨 있지 않은, 말 그대로 행동의 …

  • 안티구아는 걷기 좋은 도시다. 오래 걷자니 발의 피로보다는 배의 허기가 먼저 찾아왔다. 마침 한국음식점을 발견해서 더 그렇게 느꼈는지 모르겠다. 얼마만의 한국음식인지. 메뉴를 물을 것도 없었다. 김치찌개를 시켰다.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닦으며 밥을 먹어보고 싶었다. 그렇게 허기를 달래니 이제 힘이 붙어 잠시 도시 바깥으로 나가고 싶어졌다. ...
  • 아마도 요즘 독서계 최고의 화제는 단연 김용철 변호사의 는 책일 것이다. 이 책의 내용도 내용이겠지만, 이 책이 주요 언론에 전혀 광고되지 못하고 있는 저간의 사정으로도 는 충분한 화제꺼리가 되었다. 단지 조선, 중앙, 동아와 같은 보수적 매체뿐 만이 아니라 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와 같은 진보적 매체들도 이 책의 광고는 실지 않았다. ...
  • 우리가 일상에서나 작업에서 많은 재료로 사용하고 알고 있는 ‘쇠’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관심이있거나 아는사람들은 별로 없을거란 생각이듭니다. 2007년 촬영차 양구에 갔다가 시인 최종상씨를 만나 철을 만들고 그 철로 백제검을 복원하는 장인이 존재한다는, 그것도 가까운 사이인것을 듣게되었을때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만나뵙기를 간청했고 ...
  • 담담 in 백수 건강법 2010-03-17
    현대인들의 환상중의 하나. 무언가 몸에 좋은 것, 희귀한 것, 비싼 것을 먹어야 정력이 강화될 것이라는 환상. 그래서 개구리며, 지렁이며 몸에 좋다는건 어떻게든 챙겨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그러나 정은 어떻게 채울것이냐 라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있는 정을 보호할 것인가로 생각을 바꿔야 한다. 어떻게 벌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지킬 것인가의 문제랄까? ...
  • 몇 년 전 아주 좋은 동시 한 편을 만났다. 권영상 시인의라는 동시다. 처음 읽었을 때는 나도 모르게 ‘하하하!’ 소리 내어 웃었고, 두 번째 읽었을 때는 어눌한 강아지가 안쓰러워 눈을 조금 흘겼던 것 같다. 그러고도 몇 번을 더 읽었다. 눈으로 볼 때보다 입으로 종알종알 거릴 때 훨씬 더 감칠맛이 나서, 읽고 또 읽었다. ...
  • 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라는 작은 제목이 붙어 있는 이 책은 미국의 작은 도시의 유일한 지역 도서관 관장인 한 여성이 자신이 직접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쓴 책이다. 어느 추운 겨울날 이 도서관 반납함에서 추위와 굶주림에 떨고 있는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발견된다. 그리고 저자는 이 고양이를 도서관에서 키우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이 마을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다. ...
  • 화장품을 살 때에 제품에 ‘피부과 테스트 완료’라는 말이 붙으면 조금 비싸더라도 그것을 택한다. 왠지 부작용이 덜 할 것 같고 더 신경을 많이 쓴 듯해서 신뢰가 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완료’이전에 그 화장품의 개발 과정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진다. 어떤 테스트를 어떻게, 누가, 누구에게 한 것일까? 화장품에는 독성 화학물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
  • 편집자 in 매이데이 2010-03-17
    정신분석이 흥미로운 건 신체에 대한 새로운 감각은 준다는 점이다. 정신분석은 사지와 오장육부가 기능적으로 통합된 유기체와는 전혀 다른 신체를 제시한다. 프로이트는 입, 항문, 성기, 눈, 귀, 피부점막 등 신체의 부분 기관들이 (성적)감각과 (성적)용법에 따라 타인의 신체 기관이나 사물들과 결합되고 분해되는 기계적 신체 이미지를 보여준다. ...
  • 김융희 in 여강만필 2010-03-17
    늦가을인데 벌써 냉이가 무리져 쑥쑥 잘 자랐습니다. 두어 달이나 빠른 하늘의 봄, 천기를 받고 자란 냉이입니다. 성급한 놈은 벌써 꽃대를 세우고, 햇빛이 든 곳에선 붉은 색 음지에선 진초록으로 잘 자랐습니다.
  • 삶이나 혁명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흔히 혁명하면 대단히 장엄한 모습을 떠올린다. 지리멸렬한 현실과는 다른 고귀하고 위엄 있는 세계 말이다. 하지만 이런 이상적인 혁명 세계는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균열을 일으킨다. 혁명은 생각보다 쉽지 않으며, 숱한 실패와 좌절을 겪어야 하고, 또한 투쟁하는 동안에도 먹고사는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
  • 은유 in 올드걸의 시집 2010-03-17
    맥도날드 2층. 평일 1시. 방과 후 친구엄마들을 따라 온 아이를 데리러 왔다. 200여석이 엄마들로 꽉 찼다. 테이블마다 삼삼오오 머리를 맞대고 앉았다. 식은 커피와 감자튀김 앞에 두고 열띤 대화가 오간다. 우리반 엄마들도 마찬가지다. 개학후 일주일 지났건만, 2학년 1반부터 6반까지 각반 담임의 행적과 신상명세와 성향 그리고 교문 밖의 뜨고 지는 학원 현황까지 시시콜콜 공유되고 있었다. ...
  • 4년 전쯤, 과방에서 후배 한 명과 함께 밥을 먹고 있었는데 후배가 넌지시 나에게 물었다. '형, 심청이는 왜 인당수에 몸을 던졌을까요?' 그때 나는 '심청이? 왜 공양미 삼백 석 가지고 지아비 눈 뜨게 하려고 그런 거잖아.' 라고 답을 했다. 그러자 후배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아무래도 자기가 살기 싫으니까 뛰어 내렸던 거 같은데.' 라고 나의 대답에 대꾸했다. ...
  • 요즘에는 청년이 유행어다. 입을 열면 청년, 입을 닫아도 청년이다. 하지만 청년이라고 해도 일률적으로 다룰 수는 없다. 깨어 있는 자도 있고, 자고 있는 자도 있으며, 혼수상태에 있는 자, 엎드려 있는 자, 놀고 있는 자와 그 밖에 여러 가지가 있다. 물론 전진을 지향하는 자도 있다. 전진을 지향하는 청년들의 대부분은 지도자를 찾고 있다. 그러나 나는 감히 말하고자 한다―절대로 찾지 못할 것이라고. ...
  • 풍상에 시달린 영혼은 사납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의 영혼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와 같은 영혼을 사랑한다. 형태도 색도 없이 생생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듯한 사나움에 나는 입을 맞추고 싶다. 가엾는 이름난 정원에 진귀한 꽃과 풀이 만발하고, 두 뺨이 발그레한 숙녀는 뜬 세상 아랑곳없이 이리 저리 거니는데, 외마디 학 울음소리에 흰구름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 “생각컨대, 나 자신은 아직까지도 간결함이 치밀어 저절로 말로 되어 나온다는 식의 인간이 아니다. 그러나 그 무렵 내 적막의 슬픔을 잊을 수 없는 탓이어서인지 때로는 뜻하지 않은 납함이 입에서 나올 때가 있는데, 그나마라도 적막 가운데를 돌진하는 용사로 하여금 그가 안심하고 앞장서 달릴 수 있도록 다소의 위안이라도 줄 수 있었으면 한다.” ...
  • 다케우치 요시미의 <루쉰>은 이미 루쉰 연구자들에게 고전으로 읽히지만, 이 작품이 그저 연구서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루쉰>을 읽으면 여러 곳에서 비약이 눈에 띄는데, 짙은 정서가 그런 비약마저 머금고 하나의 전체상을 구현하고 있다. 그 속에서 루쉰의 다양한 면모는 ‘문학가 루쉰’으로 응결된다. ‘문학가 루쉰’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하지만 다케우치가 루쉰의 사상적 장소를 ‘문학’에서 찾을 때 ‘문학’은 이미 그 의미가 바뀌고 있다. ...
  • 우리나라에서 번역되어 팔리고 있는 중국현대문학 작품 가운데 90% 이상이 루쉰(魯迅)의 작품이다(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수치가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 말은 “루쉰”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면 웬만큼 팔린다는 얘기다. 그래서 그럴까, 루쉰의 대표작인 을 타이틀로 달고 나온 책들을 서점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이나 를 내걸고 ...
  • 편집자 in 씨네꼼 2010-03-17
    ‘88만원 세대의 삶’,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 최근의 한국독립영화에서 이 두 가지 삶의 모습은 빈번하게, 그리고 꾸준히 등장한다. 당연한 일이다. 동시대적 삶을 호흡하고 그 속에서 창작의 동력을 얻는 것이 ‘독립영화’의 존재 이유라면, 그 두 가지 삶의 모습은 피할 수도, 피해서도 안 되는 문제일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그 두 삶의 모습은 더 이상 ‘예외적 개인’이 감당해야 할 특별한 문제가 아니다. ...
  • 1909년 일본에서 귀국한 루쉰은 항주와 절강에 있는 두 사범학교에서 생리학과 화학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었다. 이듬해 고향인 소흥부 중학교의 교사로 취임했다가 중화민국정부가 수립되던 해 산회초급사범학교의 교장으로 취임했다. 1912년부터 17년까지 잠시 공백이 있었지만 교육부 직원으로 일하다가 1920년부터 베이징대와 베이징여자고등학범학교에 출강했고 ...
  • 편집자 in Weekly 2010-03-10
    | 편집자의 말 | 아이가 되기 위한 인문학 _ 고병권 | 동시대반시대 | ‘여기’ 있어도 되나요? _ 류시성
    전선인터뷰 – 파랑새공부방 성태숙선생님 _ 은유
    아이들의 인문학 프로그램: 길벗토요서당 / 도토리 서당 / 보리학교 | 수유칼럼 | 중증장애인의 삶은 MB의 하수구에서 질퍽거린다 _ 박경석 | 매이데이 | 내 사랑, 젖꼭지 _ 매이 아빠 | 여강만필 | 열차 길 상경기 _ 김융희…
  • 9천원. 누군가는 하루 술값도 되지 않는 돈이라 가볍게 여길지 모르겠지만, 노동시장에서 원천적으로 배제 당하고 있는 중증장애인에게는 피 같은 돈이다. 그 돈이면 하루 1시간 이상 중증장애인이 활동보조를 받을 수 있는 비용이다. 그런데 MB는 중증장애인을 책임지겠다고 하면서 중증장애인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 바로 앞에서 코를 베어가 버렸다. ...
  • ‘부동심(不動心)’에 관해 돌에 새긴 이야기를 마감해야 하는 날부터 그만 며칠 앓아눕고 말았다. 물 한모금도 마실 수 없고 말도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나날은 정말 무기력하기 짝이 없었다. 물론 화장실 정도는 오갈 수 있었지만, 계획된 일정 모두를 아이들의 입을 통해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죽을병이 아니란 것을 뻔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고통스런 시간을 잘 견디기만 하면 ...
  • 편집자의 말 – 아이가 되기 위한 인문학

    3년 전 즈음, 어느 어린이 독서캠프에 초대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철학 강연을 해달라는 거였는데요. 제목이 ‘철학이란 무엇인가’였습니다.  아마도 세상의 여러 물음 중에 제일 무서운 게 ‘…란 무엇인가’ 아닌가 싶어요. 요즘 제 딸이 글자, 특히 받침 없는 글자를 조금씩 읽는데요. 어제는 책상에 있던 플라톤의 <정치가>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을 보더니, 두 글자가 똑같다고 ‘정치’를 가리킵니다. 아직 …

  • 양주시 어둔리에 3개의 축사를 개조해 보금자리를 틀고 15년을 넘게 살면서 여러 가지 난관을 극복하며 터를 만들고 주변 구역을 관리하는(?) 본인을, 남들에게 소개 할때면 ‘어둔리 이장’이란 호칭을 즐겨 사용하는 조각가 이민수 님은 오랬동안 미술판에서 작품과 얼굴은 봐왔지만 워낙 점잖고 말수가 없는편이라 교류가 별로 없었습니다. ...
  • 서현의 <눈물바다>는 표지부터 상큼하다. 앞표지에 있는, 두 눈에 눈물을 머금고 있는 아이 얼굴이 뒷면으로 가면 싹 바뀐다. 활짝 개어있다. 표지만으로도 눈물의 힘을 느끼게 한다. 어려서부터 만화를 좋아했다더니, 작가의 재치와 유머도 돋보인다. 상상력도 남달라, 첫 페이지부터 독자를 휘어잡는다. 시험 보는 교실 안. 아이들은 제각각이다. ...
  • 김융희 in 여강만필 2010-03-10
    나는 기차를 타고 전철을 타며 서울을 다닌다. 칠십 킬로가 채 안된 거리인데도 두어 시간이 더 걸린다. 이처럼 먼 길을 오가는 나의 서울 나들이에 대한 남들의 동정어린 말도 듣고 측은지심의 눈총을 맛보기도 한다. 아무렇치도 않는데 말이다. 나에게는 결코 아니올시다.
  • 많은 여행서는 이렇게 권유한다. “떠나라! 일상에서는 맛볼 수 없는 꿈과 자유가 있을지니.” 하지만 그저 이국적이라면 외국의 장소는 일상의 감각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차라리 내게 ‘마음의 장소’는 여행에서 일상을 만나고, 일상에 여행의 숨결이 입혀지도록 이끄는 곳이다. 나는 멕시코시티에 오면 띠앙기스를 기다린다. 띠앙기스는 아무 때나 찾아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
  • 은유 in 올드걸의 시집 2010-03-10
    가난한 사람은 많지만 밥 굶는 사람은 없다고들 한다. 그래도 그들을 생각하면 심히 걱정스러웠다. 시인들과 시민단체 활동가들. 시집은 정말 안 팔리는 책이다. 책값도 헐하다. 활동가들도 박봉으로 어떻게 3~4인 가족이 먹고 살까. 몇 년 전부터 이 문제에 관심이 갔다. 기회가 될 때마다 직간접적으로 알아보았다. 대체로 그들은 혼자 사는 경우가 많았다. ...
  • 담담 in 백수 건강법 2010-03-10
    잠이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현대인들은 잠은 죄악이라고 생각한다. 잠을 오래 잔 날이면 ‘아 이 쓰레기 같은 인간, 오늘 또 잠을 많이 자버렸군’ 죄책감에 시달린다. 1분 1초까지도 쪼개서 허투루 보내지 말아야 하는 이 시간에, 고작 잠이나 자면서 허송세월하다니. 그 시간에 자기개발을 해도 살아남기 모자를 판에. 내가 고등학교 수험시절때 사당오락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
  • 지난 겨울방학, 풍경 아이들과 서울여행을 떠나 ‘수유너머 남산’에서 하루를 묵었다. 그날 고병권 선생님은 풍경 아이들에게 연구소 공간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선생님의 이야기 속에서 그곳은 더 이상 낡은 건물이 아니었다. 수유너머에 계신 분들의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소중한 공간이었다. 나에게도 이런 공간이 있다. 지금은 없어진 곳. 예전 근무했던 학교 건물이 몇 년 전에 사라졌다. ...
  • 달팽이 공방에서는 일 년에 네 번 워크샵을 엽니다. 우리밀로 빵과 과자를 만드는 제비꽃 빵집 워크샵과 천연 비누와 화장품, 그리고 대안 생리대를 만드는 작은 달팽이 공방(작달공)워크샵이 있습니다. 워크샵에서는 단지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관련된 책들을 함께 읽고 짧은 글을 쓰며 우리의 삶을 둘러싼 문제들에 대한 생각을 함께 나눔으로써 ...
  • “처음 왔을 때 엄청났죠. 말이 공부방이지 골목을 막아서 천막 치고 주방으로 쓰고 있었어요. 애들은 시커멓고. 첫날에 5분 정도 앉아 있다가 급한 볼일 있다며 도망치듯 나왔어요.(웃음) 다음 날부터 근무했는데, 제가 아이들에게 처음으로 한 말이 이랬대요. 너희들 정말 안 되겠구나!” 구로동 일대에 철거가 한참이었다. 어수선한 틈에 아이들은 방치됐다. 어느 날 집에 가보면 아이만 두고 가족이 다 이사를 가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아이들은 자주 싸웠다. 거칠었다. ...
  • 배움이란 소박한 것이다. ‘학學’이라는 글자가 만들어진 배경만 봐도 알 수 있다. 학學은 원래 집을 짓는 일에서 유래했다. ‘짚이나 억새 등으로 덮은 초가지붕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새끼줄로 묶는’ 일을 상형한 게 학學이다. 지붕宀 위에서 새끼줄爻을 묶는 두 손의 모양을 보고 글자를 만든 것이다. ‘뚜껑 있는 집’에 살려면 누구나 해야 하는 일이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의미가 학學에 담겨 있는 셈이다. 그래 까막눈도 할 수 있는 게 배움이어야 한다.
  • 도토리(道土里) 서당은 고전 속에서 우리의 삶의 길(道)을 찾는 친구들이 토(土)요일에 모여 공부하는 마을(里)이란 뜻이다. 서당은 초등학생, 중학생, 학부모들 할 것 없이 함께 모여 고전을 공부하는 만남의 場을 마련하였다. 기본적으로는 고전강독, 산책, 점심 먹기, 시 감상, 독서 토론 시간으로 나뉘지만 모두 고전을 입으로 암송하고 손으로 쓰면서 몸에 새겨 넣는 활동이다. 앎과 몸이 일치할 때 공부가 내 몸 안에서 울려 퍼지고 다른 이들과도 공명할 수 있다.
  • 보리학교는 청소년과 함께 인문학을 공부하는 ‘학교’입니다. 연구자가 즐겁게 공부한 것을 청소년과 나누는 소박한 장입니다. 웃고 떠들고 가끔(!) 진지해지고 글을 써보고. 그 와중에 인문학이 슬그머니 끼어듭니다. 인문학은 어렵고 힘든 ‘학문’이 아닙니다. 잘 먹고 잘 살자는 고민에서 출발한 ‘공부’입니다. 많이 배워야 할 수 있는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공부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공부엔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잘 먹고 잘 살 ‘자기 …

  • “매이꺼야” “아냐, 엄마꺼야” “아냐, 젖꼭지 매이꺼야”, “이게 어째서 매이꺼야?” 오늘도 목욕 중인 매이와 아내 사이에 젖꼭지 분쟁이 벌어졌다. 처음에는 음심 가득한 눈으로 엄마의 젖가슴을 찝쩍거리면서 시작됐다. 아내가 무시하자, 콧소리를 섞어서 “엄마 한 번만” 한다. 아내가 피곤한가 보다. “안 돼! 아까도 많이 먹었잖아” 호락호락 젖을 주지 않자 매이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
  •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 암송하는 즐거움

    고전(古典)은 수 천 년 나이를 먹은 우리들의 친구이자 스승이다. 시(詩)는 풍부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된 세상을 보는 또 다른 눈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스승의 지혜를 우리들의 목소리로 지금 여기로 불러 오는 것이 바로 ‘암송’이다. 소리로 그 의미를 되새김질 하는 것은 옆의 친구에게,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수 천 겹의 지혜의 지층을 펼쳐 보여 …

  • 는 이러한 남녀의 정서적 차이가 담겨있는 로맨틱 실연극이다. 그 이름도 평범한 ‘톰’이라는 남자가 ‘썸머’라는 여자에게 반해 300일간의 행복한 연애를 즐기다가 일방적인 이별통보를 받고 200일 가량 폐인생활을 겪다가, 정신줄 챙기고나서 ‘오텀’이라는 여자와 새 연애에 돌입한다는, 흡사 ‘곤충의 한살이’ 같은 생태스토리를 식 시간뒤섞기 편집으로 ...
  • 편집자 in Weekly 2010-03-03
    | 편집실에서 | 김연아 삼종세트를 보고 _ 은유 | 수유칼럼 | 밥하면서 배우는 삶의 이야기들… _ 최정은 | 매이데이 | 우리 동네 _ 매이 아빠 | 영장찢고 하이킥 | 임시 휴재의 변 _ 현민 | 돌에 새긴 이야기 | ‘심신득청(心神得淸)’, 한가한 때에 해야 할 것 _ 고윤숙 | 달팽이 공방 | 발 빠른 달팽이의 음악 이야기 _ 발 빠른 달팽이…
  • 편집자 in 씨네꼼 2010-03-03
    “미친 소 먹고 죽기 싫어요.”라고 거리로 나온 2008년의 ‘촛불 소녀’들은 이성과 의지로 무장한 운동가들이 아니었다. 그녀들은 자신의 ‘몸의 감각’으로 해로운 것에 대한 원초적인 거부감을 드러낸 것이다. 이를 ‘히스테리적 반응’이라 매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들의 ‘히스테리(자궁)’는 진실을 폭로하는 입이자, 권력자의 죄를 가리키는 손가락이 되었다. ...
  • 편집자 in 수유칼럼 2010-03-03
    우리 공동체는 함께 밥을 먹는다. 뿐만 아니라 돌아가며 밥을 해야만 한다. 그 날은 내가 식사당번이라 주방에서 분주히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혼자서 30여 명이 넘는 분량을 하는 것이 보통 큰 일이 아닌지라, 미경쌤이 와서 도와주었다. 메뉴는 육개장과 생선구이, 멸치꽈리고추볶음과 오징어무침 그리고 김치였다. 미경쌤이 생선을 양면 팬에 굽는데 중간에 자꾸만 양면 팬을 열고 생선을 뒤집어서 생선살이 조금씩 부서졌다. ...
  • 편집자 in 편집실에서 2010-03-03

     

    홍대 앞에서 친구랑 떡볶이 먹다가 김연아 선수 금메달이 확정되는 장면을 봤다. 가슴이 방망이질 해대는 통에 간신히 견뎠다. 연아가 울음을 터뜨릴 땐 뭉클했다. 덩달아 손끝으로 눈물을 찍어냈다. 난 그녀를 잘 몰랐다. 수십 개의 CF를 찍고 시대의 아이콘이자 희망의 등불로 이름을 날리는 동안, 그런가보다, 예쁘고 장하다고 생각했다. 입때껏 경기모습을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무한도전도 일박이일도 무릎팍도사도 지붕킥도 그런 것처럼, 그저 …

  • 담담 in 백수 건강법 2010-03-03
    자, 그동안 워밍업들을 했으니,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공부에 들어가자. 공부라면 일단 치를 떠는 이들 있을게다. 하지만 걱정들 마시라.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이거 진리다. 공부만큼 쉬운게 어디있나? 재수없다고?ㅋ. 물론, 내가 말하고자 하는 공부가 영어단어 더 외우고, 수학 공식 하나 더 외우는 그런 공부는 아니다. ...
  • 한가로운 것은 겨를이 생겨 여유가 있는 것이다. ‘겨를’은 어떤 일을 하다가 생각 따위를 다른 데로 돌릴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는 것이다. 이러한 ‘겨를’은 어찌하다 우연히 주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사용 의미와는 달리 한가함은 남는 시간이 아니다. 엄밀히 말해서 그러한 수동적 의미에서조차도 우리에게는 그러한 시간은 절대로 주어지지 않는다. ...
  • 은유 in 올드걸의 시집 2010-03-03
    창밖은 오월인데 너는 미적분을 풀고 있다는 시구처럼, 창밖엔 겨울비가 내리는데 나는 겨울잠을 잤다. 까맣고 촉촉한 겨울밤 공기에 휩싸여 화양연화ost 라도 들었어야하는데,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겨울비도 아닌데 아깝다. 으슬으슬 춥고 몸이 땅으로 꺼져 최대한 웅크리고 있다가 잠이 들었다. 그간 애들 방학하고부터는 매일 아침 10시에 일어났는데 오늘은 눈뜨니 8시. 어제 빨리 자 일찍 일어난 줄 알았다. ...
  • 일상의 무게에 그리고 가픈 호흡에 여행의 기억은 점차 바래간다. 먼저 여행지가 그 고유한 빛깔을 잃고, 나중에는 여정의 줄거리가 사라진다. 그 망각은 여행하는 동안에도 예감할 수 있다. 그래서 훗날 회상하려고 그 장소를 사진으로 남긴다. 하지만 어떤 장소는, 가끔씩 어떤 장소는 사진 대신 마음에 남는다. 일상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그 장소의 편린은 감각의 밑바닥에 남아있다. ...
  • 배고픈 꼬마 참새와 허기진 떠돌이 사내. 바닥에 떨어진 빵 한 조각은 그들에겐 꼭 필요한 먹을거리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빵은 떠돌이 사내의 배를 채우기엔 형편없이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떠돌이 사내는 빵을 똑같은 크기로 나눕니다. 인간과 조류, 덩치 큰 짐승과 작은 새라는 분별은 그에겐 중요치 않습니다. 내가 먼저 집었으니, 내 것이라는 욕심이 비집고 들어설 틈이 없습니다. ...
  • “그런데, 아이 키우기에는 위험하지 않을까?” 매이 낳고 얼마 안 돼 집에 놀러온 아내 친구의 말이었다. 동네 자랑을 한참 하던 아내의 말끝에 나온 대꾸에 “글쎄요”, 하고 넘어갔지만, 똑 부러지게 반박해 줄 걸 그랬다. 용산구 후암동 종점 옆의 지금 집으로 이사온 건 임신 7개월 무렵이었다. 출산 예정일이 다가오면서 아내 옆에 있어야 할 일이 많을 것 같고 ...
  • 일하는 발 빠른 달팽이의 주된 업무는 최신 유행곡을 바이엘(초급 수준의 피아노 교재) 과정의 아이들이 제 흥에 겨워 칠 수 있게 아~주 아~주 쉽게 편곡을 하는 일이다. 매일 매일 발표되는 신곡들 중에서 초딩들이 좋아하는 곡을 골라내서는 외울 정도로 수십 번을 반복해서 듣는다. 어느 정도 곡이 귀와 입에 착착 감기면, 곡의 느낌을 파악해서 반복되는 부분이나 너무 어려운 랩이 들어간 부분은 삭제해서 곡을 적당한 길이로 조절한다. ...